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서론(구약신학의 정의, 역사, 방법론)①

예림의집 2014. 9. 1. 21:49

 서론(구약신학의 정의, 역사, 방법론)

 

1. 구약신학이란?(문제제기)

*정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Christoph Barth)

*질문들:

①구약과 신약의 관계

-어거스틴 “신약은 구약 안에 내제되어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 전개되어 있다.”

-신약과 구약의 긴밀한 관계

-신약에 나타나는 어떤 것들만을 구약에서 연구할 때 참된 연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②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관계

-누구나 구약 신학을 연구하면 구약신학이 될까?

-최근까지 구약을 연구한 유대인 학자들이 없었다.

-유대교라는 종교가 체계화된 신학을 연구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드라쉬, 탈무드 등.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난 구약 신학자들은 미국의 신학적 풍토속에서 구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많다.

③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의 관계(차이)

-삼위일체를 연구함에 구약만을 인용하여 연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구약신학인가?

*몇가지 견해들

-G. von Rad(게르하르트 폰 라트): 예언들의 모음집, 구약에는 사도들과 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의 모음집, 구약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존재한다. 구약은 반드시 신약에서 성취가 되어야 한다.

-Eichrodt(아이히로트): 언약이 구약성경의 중심, 구약의 본문은 강력한 목적지향적 움직임이 있다. 그것이 신약 그리스도에 의해서 끝난다. 기독교로부터 분리된 유대교는 손발이 잘려나간 몸집이다. 유대인이 유대인 입장에서 구약을 연구하면 구약신학이 아니다.

-John H. Hayes(존 히스): 위의 두 사람의 견해는 반 유대주의적 편향을 가진 것이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히브리 성서의 합법적인 계승자로 보아야 한다. 한 어머니의 두 딸. 유대인들은 구약이 유대교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봄.

*두 개의 의견 중에서 무엇이 옳은가, 유대인이 유대인의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관점에서 구약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2. 구약 해석의 역사

*쿰란 공동체: 신학적 해석

*신약: 신학적 해석

-공통점: 구약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비추어서 해석을 함, 구약은 자신들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봄

구약에 계시된 신비한 진리가 지도자들에게 계시가 되었다. 의의 교사, 예수 그리스도

-차이점: 메시아의 도래, 이방인에 대한 태도

*교부들: 알레고리와 모형론에 지나치게 의존

-구약이 신학의 규범이 되고 원천이 된다고 인정을 했지만 신약의 관점과는 조금씩 달라짐.

-바나바서의 나타나있는 알레고리의 예(아브라함의 전쟁 318명=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중세: 4중 의미에 의한 해석

①문자적 & 역사적, 만나: 하늘에서 내리신 음식

②알레고리적 혹은 신학적, 떡과 포도주

③도덕적 혹은 교훈적, 성령의 내주하시는 성령이 공급하시는 영적인 양식

④신비적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의 축복

*종교개혁자들: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평가.

-역사적, 문법적, 문자적 해석방법

-니콜라우스 데 리라(14C): 알레고리에 반발해서 문자적, 역사적 의미야말로 참된 의미이다. 루터에 영향

-존 위클리프: 중세시대에는 교황과 교회가 성경 위에 있었다. 성경의 권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 루터에 영향

-루터: 기독론적 해석,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알레고리적 경향

-칼빈: 구약을 지나치게 기독교화 “모든 성경이 오직 한가지의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명료성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진리가 신약에 있다면 반드시 구약에도 있다.

-아직 그들이 구약신학을 쓰기에는 독립성, 고유성을 덜 보았다.

-종교개혁때 까지는 구약신학을 쓸 수 없었고, 발전이 없었다.

 

3. 구약 신학의 태동

*Johann Philipp Gabler(필립 가블러): “성경신학이 별개의 학문 분과가 되어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

-합리주의자

-문자적, 역사적 해석의 중요성을 발견하기 시작함

-성경신학과 교의신학 학문 분과의 분리를 요구(1787)

-성격상 교리신학은 규범적이교, 교육적이고 체계회된 진리이고, 성경신학은 성격상 역사적이고 서술적인 것이다.

-우리가 볼 때는 성경신학도 규범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구약 안에서 어떤 조직신학적 관점들을 논의를 하는 것은 조직신학이고 성경신학은 역사적인 관점을 기술하는 것, 즉, 구약 성경의 저자가 무엇을 그 당시의 정황 속에서 말했고 당시의 독자들이 무엇을 읽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성경신학 수행 원칙

①역사적이고 문법적인 해석원칙들에 따라서 성경의 각각의 구절을 따로 연구해야 한다.

②성경의 각각의 구절들을 서로 비교해서 차이점·유사점을 가려내야 한다.

③자료들을 왜곡하거나 차이들을 말살함이 없이 일반적인 사상들을 체계화 혹은 정식화해야 한다.

- 이후의 구약성경신학 분야는 50여년간 합리주의자들의 독무대

- 최초의 구약신학 저서: Bauer(1796), 조직신학적 성경신학, 합리주의적, 조직신학적 성경신학을 썼다(신론, 인간론, 기독론).

*최초의 보수주의 구약학자: Hengsenberg(헹센베르크)

-개혁주의 전통에서 양육, 본 대학, 바젤의 선교사 학교

-민주주의를 배격함. 헌법에 의한 통치를 반대, 노예제도를 찬성함. 남북전쟁 시 링컨을 반대하고 남부군을 지지함.

-구약의 기독론(1828-35)

-빌헤름 3세의 후원을 받게 됨

-특징: 신약/구약을 거의 구별 않음, 구약 예언들에 대해 영적인 해석

-하베르니크(헹스텐베르크의 제자), 호프만(구원사학파의 창시자)

*결국 합리주의적인 신학이 지배함

 

4. 구약 신학의 죽음과 부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이스라엘 역사 서설(1878)

-구약 선지자들이 율법 이전에 활동했다고 주장. 선지자들이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이 선포하고 나서 그것이 체계화 되어서 종교가 된 것이 이스라엘 종교였고, 그것을 표현한 것이 오경의 율법이라고 주장

-오경의 율법은 나중에 나타난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적인 역사철학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사람.

-구약의 종교는 자연종교로부터 성장한 것이라고 봄(고대 근동의 농경축제 반영)

-오경에 있는 신학은 이스라엘의 후대의 신앙을 이전 시대에 투영한 것

-구약 신학의 병사

①벨하우젠의 저작은 구약의 신학들의 다양성 강조, 통일성 해체

②이전 학문 풍토에 대한 반발(결론적으로 동일한 오류에 빠짐)

-알레고리적인 신학 풍토에 반발함으로 인해서 구약신학이 병사함

③신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결여

-역사에 대한 관심들이 중시됨.

 

*구약 신학의 부활: 1차 대전 후에 구약에 대한 새로운 관심

①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1919)

-원자폭탄의 투하와 같았다. 신학학계에 혼합되어 있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을 불리해 내는 효과를 가진 화학 성분의 투여와 같았다.

-신학적인 접근방법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②신학에 대한 관심 환기

-역사 자체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관심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키켈).

③나치체제 하의 반유대주의 운동에 대한 반발

-인종차별주의, 독일 민족주의로 인하여 구약성경은 멸종의 대상으로 보았다. 구약도 죽었고, 유대인도 죽었음으로 구약신학도 할 필요가 없다.

-새롭게 태어나는 이성(계몽)이 보았을 때, 구약에 나타난 종교는 씨일 뿐이지 고유한 가치가 없다. 후진 것, 말살.

 

*구약 신학의 부활을 알리는 두 저작(1933)

①Ernst Sellin(에르스트 젤린): 종교사에 근거한 구약신학

-구약의 역사는 신약에서 귀결이 된다는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구약신학을 기술해야 한다.

-지나치게 신약 위주의 구약 이해

-이것이 다가 아니다. 역사적인 관점들이 선임되어야 한다.

②Walter Eichrodt(왈터 아히로트): 구약 성경 신학

-언약이란 관점에서 구약 전체가 체계화 될 수 있다.

-20C에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노만 갓월드)

-방대한 분량과 깊은 통찰이라는 견지에서 구약신학 분야에서 출현한 가장 위대한 유래없는 역작(덴탄)

-언약 개념의 중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