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태에 관하여>
중간태란?
태(Voice)란, 동사(동작)와 그 주어 또는 목적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법 범주를 말한다. 헬라어의 동사체계는 능동태와 수동태에 더하여 중간태(Middle Voice)란 것을 가진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능동태에 있어서 동사(동작)의 주체는 주어이다. 반면, 수동태는 주어가 동사의 동작을 받는 것을 말한다(즉, 동작의 작인[agent]은 주어가 아닌 제3자이다). 중간태에 있어서 주어는 동사(동작)의 작인이다[이점에 있어서는 능동태와 같다]. 그러나 동시에, 주어는 동사의 동작이 일으킨 결과에 영향을 받거나[마치 수동태처럼], 혹은 적어도 주어 자신과 동사의 동작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음을 나타낸다. 동사의 동작이 일으킨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함은 곧 주어의 행위가 주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점에서 재귀태(reflexive voice)라고도 한다. 또한 주어 자신과 동사의 동작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함은 즉, 자기에 대한 동작 또는 자기를 위한 동작, 자기의 소유물과 관계가 있는 것, 자기의 감각, 감정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헬라어에선 특히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동사가 중간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영어에선 중간태라는 것이 본래 없으나 다음과 같은 문장은 중간태의 재귀적 표현과 유사하다 볼 수 있겠다: This book sells well.
헬라어에서 중간태 동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는(즉, 주어가 동사의 동작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문제: 재귀적으로? 자기를 위한 동작으로? ..등) 중간태란 어형 자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동사의 개념이나 문맥에 달려있다. 또한 헬라어의 현재시제에선 중간태와 수동태의 어형이 동일하므로, 그것이 중간태인지 혹 수동태인지의 여부는 역시 문맥을 통해 결정한다 (그러나 메이첸 교재에선 주로 수동태의 경우만을 취급한다).
중간태의 해석패턴
중간태에 있어서 주어가 동사의 동작에 어떤 방식으로 연루되는가 하는 것은 문맥을 통해 추론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중간태 동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수동태가 아닌) 중간태로서의 lu,omai 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개의 해석을 낳는다: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해 파괴하고 있다”, “나 자신이 (직접) 파괴하고 있다” 등. 일반적인 해석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재귀적 용법의 중간태 (reflexive middle) : 동사의 동작이 주어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진다. 마27:5 “kai. avpelqw.n avph,gxatoÅ” (그는 가서 스스로를 목매달았다) 여기서 재귀대명사 ‘스스로를(e`auto,n)’ 은 등장하지 않지만 중간태 동사임을 보고 이런식의 해석을 도출시킬 수 있다. 고전6:11(“you washed yourselves”), 고후11:14(“Satan disguises himself”)도 참조하라. 신약에서 중간태가 이렇듯 엄격하게 재귀적 용법으로 쓰인 예는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재귀적인 의미는 중간태보다는 주로 능동태와 재귀대명사의 결합으로써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17:19 “I sanctify myself [evgw. a`gia,zw evmauto,n].”
강조용법의 중간태 (intensive middle) : 중간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선 동작의 결과에 주어가 참여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단지 주어 자신이 동작의 작인(agent)임을 강조하는 식으로 해석된다. 히9:12 “he himself secured eternal redemption.” 여기에선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 자신께서 구속을 달성시키셨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himself”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선 ‘auvto,j’를 사용하면 된다.
상호적 용법의 중간태 (reciprocal middle) : 복수주어의 경우에 상호적인 동작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 요9:22 “The Jews were agreeing with one another.(..하기로 서로 결의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상호대명사(avllh,louj)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
※코이네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간태 동사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문체적 화려함보다는 좀더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당시의 실용주의적 사고 때문인 것 같다. 중간태를 사용하는 대신에 능동태와 더불어 auvto,j나 재귀대명사 혹은 상호대명사 등을 사용하면 더 분명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동사 (Deponent Verbs)
헬라어의 동사들 중 중간태 혹은 수동태 형태만 지닌채 능동태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아니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동사들을 deponent verb라고 한다[사전을 찾았을 때 기본형이 중간태 어형으로 소개됨]. Deponent란 라틴어 depono에서 유래된 것으로 “I lay aside.(치워놓다)”의 의미를 지난다. 즉, 능동태가 쓰여야 할 곳에서 능동태가 중간태에 의해 대체된다는 의미이다. e;rcomai(가다)는 중간태의 어형을 하고 있으나 그 의미는 능동이다. 그러나 어떤 Deponent 동사들에선 주어 자신이 강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선 true middle이라 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Deponent로 알고 있는 동사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중간태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동사들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범주화 되어진다.
Reciprocity(상호관계를 필요로 하는 동사들): 이러한 동사들은 그 자체개념에 있어서 상호관계성을 띠고 있기에, 적어도 주어 이외의 또다른 타인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즉, 주어의 행위가 일으킨 결과는 일방적이지 않으며 관계성을 띤다. 예) de,comai (“I welcome”), lutro,omai (“I redeem”), cari,zomai (“I forgive”), iva,omai (“I heel”), ma,comai (“I fight”), yeu,domai (“I lie”), avspa,zomai (“I greet”), avpokri,nomai (“I answer”)
Reflexivity (재귀적인 성격을 띠는 동사들): 이러한 동사들은 그 행위개념이 주어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예) tuflo,omai (“I am conceited”), evpendu,omai (“I put on”), mime,omai (“I imitate”), evgkrateu,omai (“I abstain”)
Self-involvement(주어자신의 개입): 이러한 동사들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행위들 즉, 주어 자신의 사고(思考)나 감정 등의 경험들을 나타낸다. 예) e;rcomai (“I go”), dialogi,zomai (“I ponder”), h`ge,omai (“I consider”), ovrgi,zomai (“I am angry”), bou,lomai (“I wish”)
※ 어떠한 동사들은 중간태에서 (능동태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예) a;rcw (“I rule”), a;rcomai(“I begin”). 이러한 동사들은 극히 드물다.
참고한 문헌: A dictionary of English Linguistics (시사영어사)
Learn to Read New Testament Greek (D.A.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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