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4 타락과 희망
* 사탄과 뱀
BC 200년경 지혜문학에서 처음으로 나타남.
Þ 3장의 뱀의 유혹의 핵심은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가장 큰 범죄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잊고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다.
Þ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의 큰 두 가지가 갈린다(삼상 2:30; 말 1:6 등)
(1) 하나님 경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2) 하나님 멸시: 인간이 하나님에게 가지는 가장 악한 태도이다.
3:1-5
뱀의 질문(1절)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실과를 먹되”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뱀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묻는다.
- 히브리어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지만 약간의 변화를 통해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와의 대답(2-3절)
하나님의 말씀을 원래보다 가혹한 것으로 만듬.
(1)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하와는 각종을 생략함으로써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신 것을 축소해서 말한다.
(2)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했지만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더욱 가혹한 것으로 만든다.
(3)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에서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씀을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말 앞에 놓음으로써 죽음이 만지기만 해도 오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금지 명령은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뱀의 대답(4-5절)
(1) 죽지 않음(하나님의 말씀 전면 부정)
(2) “눈이 밝아짐” è 결과 7절: 눈이 밝아짐 + 앎
하나님처럼 되지는 않고, 벌거벗음을 깨달음(ó 2:25)
(3) “하나님처럼 됨”(하나님께서 선악과 금지하신 동기를 불순하게 만듦)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구분선은 결코 지워질 수 없음
3:6-7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먹기에 좋고”)
- 이 표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조의 승인 문구와 히브리어상으로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이 구절이 2:9의 평행 구절과 어순이 차이가 나는 이유임: 아래 원어 해설 Box 참조).
- 여자는 뱀의 말처럼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양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창세기 저자는 묘사하고 있다.
원어해설
2:9의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콜 에츠 네흐마드 붸토브 르마아칼, lkaml bwjw harml dmxn #[-lk)란 표현은 3:6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란 표현과 상당히 비슷함(토브 하에츠 르마아칼 붸키 타아봐 후 라에나임 붸네흐마드 하에츠 르하쉬킬, lykvhl #[h dmxnw ~yny[l awh-hwat ykw lkaml #[h bwj) (밑줄 부분들).
2:9와 3:6의 유사성을 볼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는 표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감각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하나님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자신의 판단을 맡긴 상태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누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판단을 떠난 마음가짐으로 독자적인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이 죄인 것이다.
7-8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 및 행동
(1) 눈이 밝아졌다(원어: “열리다”[파카흐, xqp])
(2)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앎(2:25)
(3)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듦
(4) 하나님을 피해 숨음
* 무화과 나무 잎 치마
- “치마”는 사실은 히브리어로는 “허리띠”(하고라, hrwgx)를 가리킨다. 내가 번역하고 있는 성경에서는 원문을 잘 살려서 “허리가리개”라고 하고 싶다.
- 무화과 잎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가장 큰 잎사귀 중에 속한다. 그러나 이 것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자가 “허리가리개”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러한 부족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 듯 하다.
- “허리가리개”는 아담과 하와의 비참한 상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 이 “허리가리개”는 하나님이 지어 입히시는 “가죽옷”(카트노트 오르, twntk rw[) (창 3:21)과 큰 대비를 이룬다. 가죽옷은 다리까지 내려가는 긴 옷을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가릴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넉넉히 가리신다.
- 허리가리개와 가죽옷의 대비는 인간의 무기력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을 대비시킨다.
-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살아갈 뿐이다.
3:9-13
죄의 순서: 뱀ð여자ð남자
심문의 순서: 남자ð여자ð뱀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9절)
-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위치를 몰라서 묻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됨.
참고: 4:9-10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으냐?”라고 묻고 나서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심.
이 질문은 단지 상대방을 책망하기 위한 서두일 뿐.
- 아담은 자신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 이 질문에 이은 심문에 아담은 하와를, 하와는 뱀을 잘못의 원인으로 들먹인다.
- 이 장면과 하나님의 심판의 장면에서 우리는 1장의 모든 것이 심히 좋았던 창조세계, 모든 것이 질서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 완전히 와해되는 것을 보게 된다.
14-19절 하나님의 심판
Þ 뱀(14-15절):
(1) 배로 기어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음
“뱀이 배로 다니고”: 뱀이 저주 받기 전에는 발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는 탈굼 요나단과 요세푸스 등에 나타난다.
(2) 여자의 후손(“씨”, 제라, [r:z<)과 원수가 되게 하며,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원시복음: 최초의 구속사적 약속)
Þ 여자(16절)
(1)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함. 수고해야 자식을 낳음
(2) 남편을 원하고,남편은 다스림
원어해설
- 하나님께서 임신에 고통(잇짜본, !AbC'[i)을 크게 더하심/수고(에쩨브, bc,[,)하고 자식을 낳음.
원어해설
-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B")-lv'm.yI aWhßw> %teêq'WvåT. ‘%veyai-la,w>
- 이 구절은 통상적으로 여자는 남자를 항상 해바라기처럼 사모해야 하고,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으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몇 가지 있다(Schnittjer, Torah Story, 51).
(1) 이 구절은 4:7의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는 문구와 동일하다. 이 문구는 죄와 가인간의 투쟁을 가리킨다. 죄가 가인을 덮치려고 항상 노리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 4:7의 경우를 따르면 이 구절은 아내와 남편간의 주도권 싸움을 그리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 hq'WvT.란 단어가 희귀한 단어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리를 펼 수는 없다(이 두 곳 외에 오직 아가서 7:10). 만약 4:7과의 연관성이 있다면 이 것은 죄의 결과로 인간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것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2) 남자가 받은 심판과의 비교가 도움이 될 수 있다.
- 남자는 자신이 만들어지는데 사용된 재료인 흙과 영원한 투쟁을 하도록 심판 받았다.
- 여자 역시 자신이 만들어지는데 사용된 재료, 즉 남자와 영원한 투쟁을 하도록 심판 받았다.
Þ 아담(17-19절)
(1) 땅이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음(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
(2) 평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음(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음)
(3) 흙(아파르, rp'[')이니 흙으로 돌아감
원어해설
17절 “종신토록 수고(잇짜본, !AbC'[i)하여야”
- 이 표현은 위의 하와의 임신과 관련한 심판에서 사용된 단어와 동일하다.
- 하와가 수고로 자식을 임신하고 출산해야 한다면 아담은 수고로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 위의 “영원한 투쟁”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수고와 고통의 문제 역시 아담과 하와는 상응점을 갖고 있다.
18절 가시덤불과 엉겅퀴
- 이 것들은 인간의 노력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 선지서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면 땅이 풍성한 소출을 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으면 땅이 탄식하며 인간의 삶을 척박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이런 점에서 땅은 인간 영성의 바로미터이다.
-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러한 땅의 저주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인간의 노력을 방해하는 땅이 아니라 인간이 노력하지 않은 것까지 주는 땅이다(신 6:10-11). 그 땅은 마치 에덴 동산처럼 모든 것이 풍부한 땅이다(신 8:7-10).
아담 범죄의 결과 | 그리스도의 해결 |
* 죄 : 롬 5:12, 14, 17 * 죽음 : 창 2:17, 5:5 * 고통 : 창 3:16 * 자연계 훼손 : 창 3:17, 18 * 수고와 땀 : 창 3:18, 19 | * 의 : 롬 5:16, 18 * 생명 : 롬 5:17, 18 * 평안 : 요 20:19 * 만물을 새롭게 하심 : 계 21:5 * 안식 : 마 11:29, 29 |
3:20-21
-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 즉 “생명”이라 이름짓는다. 죽음을 선고받고 그 죽음의 성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하와”란 이름은 희망의 촛불과 같다.
- 가죽옷은 하나님의 배려를 보여준다.
- 웨넘(Wenham)은 가죽옷이 인간의 죄와 심판을 기억나게 하는 물건이라는 지적을 한다. 이 것도 타당한 말이다.
22-24절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
Þ 추방의 이유는 “생명나무를 따먹고 영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
- 생명나무의 길은 계 2:7; 22:2; 14에서 열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Þ 에덴 동산을 지키는 그룹들은 성막을 지키는 그룹들과 연결된다.
(1) 법궤 위의 시은좌를 그룹이 지킨다(출 25:18-22).
(2) 성막 덮개 중 가장 안 쪽의 덮개에 그룹이 새겨져 있다(출 26:1).
(3) 지성소 휘장에 그룹이 새겨져 있다(출 26:31).
3장에서의 하나님의 은혜[3]
- 선악과를 먹은 자는 “정녕 죽으리라”(2:17)고 하셨지만 바로 죽이지 않으신 점.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시간을 주심으로 집행유예의 은혜를 보이신다”[4]
- 궁극적인 해결책 주신 점(3:15)-원시복음
- 하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건 하나님이 지으신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아내를 “산 자의 어미”라고 부를 수 있게 놔두신다.
- 가죽옷을 입혀 아담과 하와가 깨달은 벌거벗음을 덮어주신다(3:21).
- 창 3장에 보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닫혀 있다. 그러나 계 2:7을 보면 인간의 집행유예의 기간의 승리를 통해 결국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계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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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3장의 정리
* 창 2-3장의 신학적 핵심은 “선악과”의 개념이다.
- 창 1장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을 가르쳤다. 그 핵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절대적인 순종이 있다.
- 창 2장의 선악과의 핵심은 바로 이 순종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사람에게 한 가지 제약.
à 그가 하나님은 아니라는 표시.
- 창 3장의 시험의 핵심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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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의 해설
4:1-15
4장의 난제들
(1) 가인의 제사가 안 받아들여지고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여진 이유
(2) 가인이 무서워한 사람들은 누구?
(3) 그의 아내는 어디에서?
(4) 가인의 표의 성격은?
- 이 문제들의 답은 다 주어지지는 못한다. 서론적으로 앞에서 시간 문제와 관련하여 설명한 바대로.
1-2절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음
가인: 농사하는 자
아벨: 양치는 자
3-7절 제사와 살인
가인의 제사의 문제
가인의 제사의 문제는 가끔 주장하는 대로 피가 없는 제사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 것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레위기 2장에는 “소제”가 나온다. 소제는 곡식의 고운 가루를 무교병으로 만들어 거기에 유향과 소금과 기름을 부어 만든다.
그러므로 가인의 제사에서 문제는 제사의 종류가 아니다.
가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
(1) 하나님이 농부들보다 목자들을 선호하심
- 이 견해는 타당성을 인정하기 힘들다.
(2) 동물 희생제사가 식물 희생제사보다 더 잘 열납된다.
보통 아벨이 “피있는 제사”를 드려서 열납되었다는 식의 설교
ð레위기서 2장은 분명히 “소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3) 하나님의 동기를 알 수 없다. 즉 창세기의 뒷 부분들처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다. 이 뒷 부분들에서도 하나님은 형보다 아우들을 선호하신다.
(4) 히브리서 11:4의 영향: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Calvin등)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 어떤 이유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5) 가장 다수의 견해: 예배에 대한 태도가 제물의 질을 결정
가인은 “땅의 소산 중 일부”
아벨은 양 떼 가운데 최상의 것: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희생 제물은 온전하고 흠 없는 것들만 드려야 함(레 1:3; 22:20-22등).
Þ 위와 같은 식의 논의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지만 문맥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야 한다.
- 우선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이유에 대해서 그가 동물 제사, 즉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후대의 제사법이 기초해서 가인의 제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후대의 율법에 따르면 창세기의 족장들은 근친상간의 죄를 저질렀다(레 18:6-18; 20:17-21 참조).
(2) 레위기 2장에 보면 곡식의 제사인 소제 역시 정당한 제사이다.
(3) 레위기 5:11-13은 아주 가난한 사람의 속죄제로 곡식 제사가 허용된다.
(4) 위의 해석대로 하면 가인은 자신의 직업 때문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이 된다. 하나님은 직업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Þ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1) 가인은 제물의 선택에 있어서 선별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반면에 아벨은 사려 깊은 선별의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첫 새끼”, “기름” 등의 단어는 아벨의 선별 과정을 반영해주는 듯 하다.
(2) “첫”이란 단어의 히브리어는 또한 “가장 좋은”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기름”이란 히브리어 역시 “최고의 것”이란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창 45:18 참조). (영어의 first란 단어가 “처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최고”란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3) 가인의 제사드릴 때의 태도나 마음가짐이 문제가 있을 수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는 가인에게 7절에서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제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제사를 드리는 자의 마음이다(시 40:6-8; 50:9-15, 22-23; 51:16-17).
(4) 히브리서 11:4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위의 사항들을 종합해 볼 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잠언 15:8; 21:3, 27; 전 5:1등은 “더 나은 제사”란 하나님 앞에서 나은 사람 혹은 마음의 준비가 더 잘 된 사람이 드리는 제사임을 보여준다. 아벨의 제사는 더 나은 사람이 드린 제사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5)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이 오경에 많이 나온다. 출 13:2; 레 27:26; 신 26:10등은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참고, 시 50:10-12)임을 밝히고 있고, 하나님의 소유물에 대한 상징적인 인정으로 “처음 난 것”을 드리라고 되어 있다. 이런 후대의 율법을 아벨에게 직접 적용하기는 곤란하지만 여전히 이런 율법의 말씀들은 아벨이 “첫 새끼”를 드릴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는지를 보여줄 수는 있다. 이것은 마치 첫 월급 받은 자녀가 그 월급 전부 혹은 빨간 내복을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 결론적으로 본문은 왜 가인의 제사는 거부되고 아벨의 제사만 드려졌는지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인 이야기와 아담 하와 이야기의 유사점
à 범죄 후에 하나님이 지으신 이야기가 비슷(송제근, 오경의 구약의 언약 신학: 69)
“네가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아담 3:9; 가인 4:9)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아담 3:13; 가안 4:10)
Þ 가인과 아담에 대한 심판의 비교
아담(3:17-18) | 가인(4:11-12) |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1) 아담의 경우는 땅이 그로 인해 저주를 받는다. 가인의 경우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2) 아담의 경우는 수고해야 땅으로부터 소산을 얻는다. 가인의 경우는 수고해도 땅이 소산을 주지 않는다. (제사 전에는 땅의 소산을 얻어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는 점과 대조)
(3) 아담은 땅에서 산다(3:23 참고). 가인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산다.
4:12 “땅이 다시는 그 효력(x;Ko)을 내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ð “효력”이란 단어는 원래는 “힘,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이 문맥에서는 땅의 “소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즉 땅이 네게 그 소산물을 산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ð 앞에서 아담은 직접 저주를 받지는 않았다. 단지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으로써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을 수 있었다.
ð 가인의 심판은 이보다 더 강화되었다. 우선 그 자신이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땅이 아예 그 소산을 그에게 내지 않는다. 이 것은 중대한 발전이다.
4:14의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이 만나는 자는 누구? 아담, 하와, 가인, 아벨 말고 다른 누가 더 있었나? 이 문제는 오랫동안 주석가들을 어렵게 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인과 아벨이 이 4장에 있는 사건을 벌릴 때 즈음에는 훨씬 더 많은 자식들을 낳았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항상 상세하게 완벽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5:3-4를 보라. 만약 이 족보만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우리는 아담이 오직 “셋”만을 낳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담은 이미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담이 이 세 아들만 낳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3장에서 4장으로의 전진
ð 가인은 자기 아버지 아담보다 더 심한 죄인의 모습을 띤다.
(1) 아담의 죄는 수동적인 반면에 가인은 적극적으로 자기 동생을 살해한다.
(2) 가인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충고를 무시한다.
(3) 가인은 자신이 받은 형벌에 대해 불평한다.
(4) 가인의 죄는 라멕의 살인 및 폭력에의 욕구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가인의 계보
16절: 가인 역시 자기 부모첢 여호와 앞을 떠난다.
17-22절: 가인è에녹è이랏è므후야엘è므드사엘è라멕è야발,유발,두발가인,나아마(총 7대)
* 가인의 계보는 라멕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4:23-24
창상à 죽임; 상함à 죽임
라멕의 죄는 동해복수법(lex talionis)을 훨씬 상회한다.
출 21:25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상하게 한 것=창상(페짜, [c;p,) 때린 것=상함(합부라, hr'WBh;)
성경 저자는 분명히 동해복수법과의 비교를 통해서 라멕의 폭력에의 욕망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듯 하다.
참고
동해복수법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보복의 원리이다.
라멕은 상하게 한 것과 때린 것 모두에 대해서 동해복수법적인 원리를 무시하고 상대방을 죽여버렸다.
이런 면에서 라멕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의 인간의 타락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4-5장)
이 두 개의 계보에 대한 비교는 송제근, 오경의 구약의 언약 신학: 70-71 참고하여 보충할 것
ð 가인의 계보는 라멕의 노래로 절정에 이른다. 반면 셋의 계보는 그 시작 전에 셋의 아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로 시작함으로써 대비를 보인다.
ð 5:1-2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즉 아담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다시 언급한다. 3절은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셋이라고 이름한 것을 보여준다. 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이 과연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긍정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 하다. 분명히 이 5장의 계보는 4장의 가인의 계보와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ð 가인의 계보와 달리 셋의 계보는 나이에 대한 언급이 반복된다.
ð 가인의 계보는 어둡다면 셋의 계보는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 인물들을 담고 있다.
(1) 에녹: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자다.
(2) 노아는 그 이름 자체가 안위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음 장에서 밝혀질 것처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다(6:8-9).
셋의 계보의 의의
ð 우선 이 계보는 5:1-2의 하나님의 창조와 복을 언급함으로써 이들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 세대는 오래 살면서 자녀를 낳아 세대를 이어간다.
ð 히스펀(Gispen)은 이들이 이렇게 장수하면서 번성하지만 또한 그들중 아무도 천 년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천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루 저녁에 불과할 뿐이다(시 90:4).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보여주는 것이 또한 이 계보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ð 결론: 만약 위의 분석이 옳다면 이 계보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1) 우선 가인의 계보와 대비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계통이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준다.
(2) 그러나 결국 이 계보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물론 노아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희망의 색깔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두 계보의 비교 사항들의 정리
Þ 라멕을 통해 보여진 인간의 악의 극치에 대한 대안이 주어진다.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주신다.
Þ 아벨의 대리자인 셋이 에노스를 낳음으로써 이 희망은 지속된다.
Þ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는 말씀은 희망을 극대화시킨다.
가인 계보 라멕: 절망의 극치
셋 계보 에노스: 희망의 극치
창 5장 아담의 계보
1-3절: 아담의 계보가 셋을 통해 흘러감
Þ 셋은 아담의 “모양”(드무트, twmd)과 “형상”(쩰렘, ~lc)을 가진 존재
- 구약성경 전체에서 창 1:26과 더불어 “모양”과 “형상”이 함께 사용된 유일한 본문이다.
- 아담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셋을 통해 이어진다.
3-32절: 아담의 계보
| 출산 나이 | 아들 이름 | 여생 | 사건 | 사망 |
아담 | 130세 | 셋 | 800년 | 자녀들을 낳음 | 930세 |
셋 | 105세 | 에노스 | 807년 | 상동 | 912세 |
에노스 | 90세 | 게난 | 815년 | 상동 | 905세 |
게난 | 70세 | 마할랄렐 | 840년 | 상동 | 910세 |
마할할렐 | 65세 | 야렛 | 830년 | 상동 | 895세 |
야렛 | 162세 | 에녹 | 800년 | 상동 | 962세 |
에녹 | 65세 | 므두셀라 | 300년 | 하나님과 동행 자녀들을 낳음 | 365세 하나님이 데려가심 |
므두셀라 | 187세 | 라멕 | 782년 | 자녀들을 낳음 | 969세 |
라멕 | 182세 | 노아 | 595년 | 자녀들을 낳음 | 777세 |
노아 | 500세 | 셈, 함, 야벳 | 홍수시 600세 (창 7:6) 홍수후 350년 (창 9:28) |
| 950세(창 9:29)
|
Þ 구약의 족보들 속에서 보통 제 7대와 제 10대는 중요하다.
(1) 제 7대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데려가신다. 그는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은 첫 사람이자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다(히 11:5).
참고:
(1) 구약에서 죽음을 보지 않은 것은 에녹과 엘리야 뿐이다
(2) 구약에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왕상 17장),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 4:32-37), 엘리사의 뼈에 접촉해서 부활한 사람들(왕하 13:20-21) 뿐이다.
(2) 제 10대의 노아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역시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다.
창 6:1-8 인류의 타락의 증가
Þ 이 본문은 극히 어렵다. 그러나 그 핵심은 분명하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 전부를 멸절시키는 최후의 수단을 쓰실 수 밖에 없을 만큼 타락했다.
원어해설
네피림: 느필림, ~ylipin>. 이 이름의 뜻은 “떨어진 자들” 혹은 “타락한 자들”이다.
Þ 5-7절: 타락의 상황과 결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아짜브[bc[]의 히트파엘형)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Þ 타락의 상황(5절)
(1)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
(2)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였다.
Þ 타락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6-7절).
(1)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고 근심하셨다.
(2) 사람과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고 작정하셨다.
하나님을 근심케 함(아짜브, bc[)과 사람의 운명
아짜브(bc[)란 단어는 앞의 하와의 아담의 심판에 사용된 “수고”란 단어와 동일어근이다. 심판으로 인해 인간이 수고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인간들이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이다.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의 근심
사 63: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아짜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시 78:40-41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아짜브) 함이 몇 번인가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Þ 8절 희망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중요패턴: 인간의 타락이나 죄è심판è희망의 여지
창세기 3-11장의 이야기들의 패턴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지만 그 심판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희망이 남겨져 있다.
(1) 창 3장: 원시복음, 가죽옷.
(2) 창 4장: 가인의 표
(3) 창 6:1-8: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음
6-11장의 구조
6-9 노아 홍수
6:1-8 죄악의 관영과 노아의 의로움
6:9-22 방주 건설
7 홍수
8:1-19 홍수로부터의 회복
8:20-9:17 노아와 하나님의 언약
9:18-29 노아의 후손들에 대한 축복과 저주 및 노아의 죽음
10 노아의 족보
10:1 서론
10:2-5 야벳의 아들들
10:6-20 함의 아들들
10:21-31 셋의 아들들
10:32 결론
11:1-9 바벨탑 사건
11:10-26 셈의 족보(아브라함의 등장)
11:27-32 데라의 족보(아브라함 및 아브라함 cycle에 등장하는 주요인
물 모두 등장)
창 6-9 노아 홍수
이 단락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해서 홍수 이후 다시 하나님의 새로운 지상명령(8:17/9:1)으로 되돌아감
“하나님의 아들들”???
하옇튼 홍수의 이유는 6:5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인간의 죄악이 홍수의 이유
노아가 구원받는 이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
홍수 이야기의 구조(B. W. Anderson, JBL 97 [1978]:38; G. J. Wenham, Genesis, 156)
서론(6:9-10)
1. 피조계 내의 강포(6:11-12)
2.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 세상을 멸망시키고자 함(6:13-22)
3. 두 번째 말씀: “방주로 들어가라”(7:1-10)
4. 홍수의 시작(7:11-16)
5. 홍수가 창일함(7:17-24)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심(8:1a)
6. 홍수가 가라앉음(8:1-5)
7. 땅이 마름(8:6-14)
8. 세 번째 말씀: “방주에서 나오고”(8:15-19)
9. 하나님이 세상을 지키고자 하심(8:20-22) (네 번째 말씀?)
10. 네 번째 말씀: 언약(9:1-17)
결론(9:18-19)
참고: “기억하다”(자카르, rkz)
Þ 노아 홍수의 날짜들
본문 | 홍수의 상태 | 사건 | 날짜(년/월/일) |
7:4, 10 |
| 7일 전 홍수 예고 | (600/2/10) |
7:11, 13 | 홍수 상승: 150일간 | 홍수 시작, 노아와 가족 방주 들어감 | 600/2/17 |
7:12 | 비가 40일간 지속됨 | (600/3/27) | |
8:4 | 150일에 걸쳐 지속된 홍수 후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무름 | 600/7/17 | |
8:5 | 홍수 감소: 150일간 | 산 봉우리가 보임 | 600/10/1 |
8:7 | 까마귀 보냄(40일 후) | (600/11/10) | |
8:8 | 비둘기 보냄 | (600/11/17) | |
8:10 | 비둘기 다시 보냄 | (600/11/24) | |
8:12 | 비둘기 세 번째 보냄 | (600/12/1) | |
8:3 | 물이 완전히 줄어듬 (두 번째 150일 기간) | (600/12/17) | |
8:13 | 땅 건조: 70일 | 노아가 방주의 문을 엶 | 601/1/1 |
8:14-19 | 땅이 마름, 노아 방주 떠남 | 601/2/27 | |
방주 체류 기간: 총 370일 (괄호 안의 날짜는 확실한 추정이 가능한 경우들) |
핵심사항들
1. R. Rendtorff, "'Covenant' as a Structuring Concept in Genesis and Exodus." JBL 108 (1989): 385-393.
- 노아 홍수가 보여주는 구원: “때문에”의 구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구원.
- 6:5의 홍수 심판의 이유와 8:21의 홍수 심판의 영원한 취소의 이유가 동일
6:5: 홍수 심판의 이유 | 8:21: 홍수 심판 영원한 취소의 이유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
-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절할 수 밖에 없다. 그 마음의 계획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허락하신다.
- Rendtorff는 이런 패턴이 출애굽기 32-34장의 황금 송아지 사건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출 32:9 | 출 34:9 |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내가…그들을 진멸하고 |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
2. creation - uncreation - recreation
uncreation : 6:5-7
recreation : 8:17; 9:1
3. 성경에 명시된 첫 번째 언약(9:8-17)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9:13 “언약의 증거”--무지개(tv,q,: “활” 혹은 “무지개”) (G. von Rad, Genesis)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활을 내려 놓으셨다. 즉 전쟁을 그치셨다는 의미.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혹적인 해석.
Þ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의 비교
| 아담 언약 | 노아 언약 |
명령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 | 생육하여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7) |
피조물과의 관계 |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 | 모든 생물이 인간을 무서워할 것임(9:2) |
음식 | 식물(1:29) | 모든 산 동물(9:3) |
음식 금지 | (식물 이외의 것들) (1:29) | 피째 먹지 말라(9:4-5) |
금지사항 | 선악과의 열매(2:17) | 살인하지 말 것(9:6) |
위반결과 | 반드시 죽으리라(2:17) | 살인자도 죽음(9:6) |
언약의 범위 | 언급 없음(온 피조물?) | 모든 생물(9:9-10) 및 온 세상(8:22) |
참고: 성경의 언약들
아담 언약(창 1-2장)-창조 언약
노아 언약(창 9장)- 새 창조의 언약
아브라함 언약(창 15, 17장)
모세 언약(출 19-24장; 출 34장; 신명기의 모압 언약)
다윗 언약(삼하 7장)
새 언약(렘 31:31-34[≈ 히 8:8-13]; 눅 22:20; 히 13:2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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