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rb에 관한 사항들
(1) arb의 주어는 항상 하나님. 이방신이 주어가 되는 경우가 없음.
(2)하나님이 어떤 재료로 창조하셨다는 내용이 없음.
무로부터의 창조?
천지: 하늘과 땅
제유법(merism). 양 극단의 것을 들어서 전체를 표현하는 것.
즉 “만물”의 의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니라.
1절의 “땅”과 2절의 “땅”은 의미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 1절의 땅은 하늘과 상응해서 온 우주를 가리키는 의미임이 거의 분명하다.
- 그러면 2절의 땅은 무슨 의미일까? 이후의 창조의 재료라는 의미일까? 그냥 일반적인 땅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2. 흑암
(1)흑암의 부정적 의미
보통 흑암은 반(反)하나님적인 것이다(시 88:12; 잠 2:13 “어두운 길”ð “흑암의 길”).
구원은 “흑암”에 있는 것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다.
(2)흑암의 긍정적 의미: 하나님의 처소(때로 임시적 처소)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쳐
시 18:11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신 4: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vx)과 구름(!n[)과 흑암(lpr[)이 덮였는데”
신 5: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신 4:11과 관련하여
lpr[은 지성소의 깊은 어둠을 가리키는 듯.
왕상 8:12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근거구절은 출 20:21?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노라”
*그러므로 흑암은 표면적으로는 원시적이고, 황량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막 창조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장엄한 등장을 가리고 있는 커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3. 깊음(~wht)
“깊음”은 깊은 물(출 15:8)이나 땅 속의 원시의 바다(창 7:11)를 의미한다.
*학자들은 이 “깊음”이 바벨론 창조신화에서 세계를 창조하는데 사용된 “티아맛”이라는 여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깊음”은 하나님이 창조를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깊음”은 하나님의 명령 하에 있는 존재이다.
4.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yhla xwr)의 해석의 문제
* xwr 를 “강한 바람”으로 바꾸려고 함(자유주의, 대한 성서공회 주축)
(1)신(xwr)는 “바람”과 “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2)하나님(~yhla)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란 의미뿐만 아니라 때로는 최상급의 의미로 사용된다(예: 아가서 8:6 “여호와의 불”).
*요나서 3:3
-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וְקָם יוֹנָה וַאֲזַל לְנִינְוֵה כְפִתגָמָא דַיוי וְנִינְוֵה הֲוָת קַרתָא רַבְתָא קְֹדָם יוי מַהלַך תְלָתָה יוֹמִין
*창세기 30:8
-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 ואמרת רחל בצלותא די צלית צליית קדם ייי דיתן למיתן לי בנין היך־מה דיהב לאחתי לחוד די יהב ללאה אחתי ולחוד אשׁתמעת וקראת ית שׁמה נפתלי
*따라서 “하나님의 신”의 해석은 다음의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1) 하나님의 신 (2) 하나님의 바람 (3) 무척 큰 신 (4) 무척 큰 바람
*현대 주석가들은 (4)번의 해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예, 표준새번역).
그러나 “하나님의 신”(~yhla xwr)이 “큰 바람”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 전혀 없다.
*웨넘(Wenham)같은 학자는 “하나님의 바람”이 문맥상 더 적절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출 31:3; 35:31과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오경의 저자는 세계의 창조와 성막의 건설을 연결시키고 싶어한다. 성막 이야기에 다른 창조 모티프들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가정은 더욱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 본문은 오직 한 가지 해석 “하나님의 영”이라는 해석만이 가능하다. 출애굽기 본문이 그러하다면 그와 연관성을 맺고 있는 창 1:2 역시 “하나님의 영”이라는 해석만이 가능하다.
*출애굽기 25장-31장이 창세기의 창조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7중 구조로 되어 있다.
-31:120-17(안식일 규례)
-출 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וְאַשׁלֵימִית עִמֵיה רֻוחַ נְבֻואָה מִן־קדם יוי בְחֻוכמָא בְחָכמָה וּבסֻכלְתָנֻו וּבמַדַע וּבכָל עְבִידָא עיבידא
5. 운행하시니라(tpxrm):
-신 32:11에 유일하게 다시 나옴. 새끼가 나는 것을 도와주며 보호하는 모습.
כנִשׁרָא דִמחִישׁ לְקִנֵיה עַל בְנוֹהִי מִתחוֹפַף מִתחָפַף פָרֵיס מפרשׁ גַדפוֹהִי מְקַבֵילְהוֹן מְנַטֵילְהוֹן עַל תְקוֹף אַברוֹהִי איברוהי
"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그러나 딱 두 번 쓰인 단어를 가지고 의미를 따지기는 힘들다는 것은 인정해야 함.
-하지만 독수리 새끼가 새 출발하는 것을 돕는 모습과 창조가 시작되는 것을 준비하는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1:3-5
1. 7중 반복구 패턴이 거의 대부분 나타남.
(1)“하나님이 이르시되”(10회: 3, 6, 9, 11, 14, 20, 24, 26, 28, 29)
(2) 명령구, “~이 있으라”(8회: 3, 6, 9, 11, 14, 20, 24, 26)
(3) 성취에 대한 보도: “그대로 되니라”(7회: 3, 7, 9, 11, 15, 24, 30)
{(4) 창조 행위 기술, “하나님이 만드사”(7회: 4,7,12,16,21,25,27)} 여긴 없음.
(5) 결과 승인 문구(7회: “4, 10, 12, 18, 21, 25, 31):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6) 이름 짓거나 축복하는 말씀(7회: 5[x2], 8, 10[x2], 22, 28): “…칭하시니라”
(7) 날짜에 대한 언급(6/7회: 5, 8, 13, 19, 23, 31[2:2]):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 날이니라”
2.“하나님이 이르시되”: 말씀으로 세상 창조
-우리들의 모든 신앙을 결정 짖는 요소
-하나님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창 18장 “여호와에게는 능치 못한 일일 없다”
3.“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빛이 좋았다
bwj-yk rwah-ta ~yhla aryw
“좋다”(bwj)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어떤 대상이 그 대상이 갖추어야 하는 성질에 어울림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해놓고 보시니 그 빛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것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를 본문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고 나서 볼 때 그 것이 설계대로 잘 만들어지면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은 감정을 하나님은 지금 누리시는 것이다.
이 표현은 그러므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담고 있다.
(1) 하나님의 창조는 계획성을 띠고 있다. 하나님은 이교의 신화들에서처럼 신이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혹은 다른 신과의 전쟁의 결과로 다른 신의 시체를 처분하기 위한 방편으로 세상을 창조하지 않는다.
(2) 창조의 결과물은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떨어졌다.
à 이처럼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 결과물이 그 분의 계획과 상응한다는 메세지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이 세상과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어그러진 계획의 사산아가 아닌 것이다.
-이방 종교는 창조가 우연이다. 우발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믿을 때 나의 삶도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다르다.
4. 나누사”
“분리”는 1장의 핵심적인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 빛과 어두움,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 주야를 나누신다. 나눔은 하나님의 교통정리다.
-교통 정리의 작업
5. 하나님이…칭하시니라”
-이름지음은 그 대상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다(참고, 왕하 23:34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ð 여호야김]; 24:17 [맛다니야ð 시드기야]).
-2:20 아담의 이름지음: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주권 표시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피조물을 책임지라는 표시
-창시계명: 정신을 지배하기 위하여
6.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날은 지금과 동일한 24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가 그 증거이다.
-이 날을 현대 과학과 연계시켜 지질학적 연대기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이들은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다”에 근거하여 여기의 하루를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과학 지식에 맞추어 성경을 뜯어 고치는 행위이다.
- 24시간설과 현대 과학의 조화
현대 물리학의 한 시공 개념에 따르면 동일한 24시간이라도 그 길이가 현재보다는 훨씬 더 길수도 있음. 쉬뢰더(G. Schröder)라는 전 MIT 교수에 따르면 시간은 중력과 속도에 따라 변한다. 초기 우주 상태에서는 중력이 막대하여 현재와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느렸다. 쉬뢰더의 계산에 따르면 첫 날은 약 80억년, 둘 째 날은 40억년, 셋 째 날은 20억년, 넷 째 날은 10억년, 다섯 째 날은 5억년, 여섯 째 날은 약 2억 5000만년 정도 되었다. 이 경우 창조의 6일은 우주 나이 150억년과 거의 비슷해진다.[1]
-얼마든지 현대 과학과도 대결할 수 있다.
-롬 12:1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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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둘째날
1:9-13 셋째날
1:14-19 넷째날
일월성신은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는 신들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들일 뿐이다.
1:20-23 다섯째날
“큰 물고기”(!ynt): 이 것은 이사야서 27:1; 51:9; 시편 74:13; 욥기 7:12등에서 하나님의 대적으로 나타난다. 가나안 신화에서 이 것은 신들의 대적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것은 단지 하나님의 한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이…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라”
1:24-31 여섯 째날
- 분량과 내용의 상세성을 보면 본문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 지가 분명해진다.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도 그 형태를 달리 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창조의 목적이 명시된다: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1:24-25 동물창조
1:26-28 인간창조
“우리”라는 복수 사용에 대한 견해들
(1) 천사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라고 하심(필로)
욥기 38:4,7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했었느니라”
(2) 삼위일체(바나바의 서신, 순교자 저스틴)
(3) 역사비평학자: 다신교 사상
(4) 왕의 복수형: 국왕이 공식 문서에 “우리”라고 쓰는 관행과 비슷.
(5) 하나님 자신과의 협의를 나타남.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고무시키기 위해 복수 사용.
(6) 클라인스(Clines): 신성내의 복수성 때문에 “우리” 사용. 즉 창조시 처음부터 존재하던 자신의 영인 “하나님의 영”(1:2)에게 말을 거는 것임.
형상(~lc)과 모양(twmd)에 대한 해석들
(1) 형상과 모양은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형상은 하나님과 닮은 자연적 특성들(이성, 인격 등)을 가리키고, 모양은 구속받은 사람을 신과 같이 만드는 초자연적인 은총들(윤리성 등)을 가리킨다.
(2) 형상은 사람이 창조주와 공유하는 정신적, 영적 자질들. 이성, 인성, 자유의지, 자의식, 지성 등.
(3) 형상은 신체적 닮음
(4) 형상은 사람을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게 하는 것.
- 고대 근동에서는 수도로부터 먼 곳에 왕의 형상을 만드는데, 이 것은 왕의 통치의 상징 역할을 했다.
- 마찬가지로 왕은 신의 형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졌다.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를 상징한다.
(5) 형상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
* 가장 타당성있는 것은 위의 (4)번과 (5)번. 28절은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되어 있다는 점과 상응한다. 이 점을 다시 좀 더 상세하게 정리해보자면:
형상 개념은 고대 근동의 관행 속에서 이해하면 된다. 고대 근동에서 왕은 자신의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두 가지 형상을 사용한다.
(1) 자신의 형상을 담은 동상: 자신의 통치 영역을 나타냄
(2) 자신의 형상을 담은 인간: 총독 등의 대리 통치자
인간은 위의 두 가지 형상의 기능을 모두 한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상징
(2) 하나님이 대리 통치자 역할을 함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인간은 피조 세계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1) 하나님이 형상은 인간은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닮은 존재로 만든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인간은 오직 인간과만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참고, 창 2:18-20)
(3)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자리에 대해서 두 개의 선을 그어준다.
하나님의 형상이자 피조물로서의 인간 |
|
창조자와 피조계의 구분의 차원 |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구분의 차원 |
창조주 |
창조주 |
------------------------- |
인간: 하나님의 형상 |
인간 |
------------------------- |
기타 피조물 |
기타 피조물 |
원어해설: 형상과 모양
형상(쩰렘, ~l,c,) (구약에 총 17번 사용됨)
창 1:26, 27[x2]; 5:3; 9:6; 민 33:52; 삼상 6:5[x2], 11; 왕하 11:18; 대하 23:17 시 39:7; 시 73:20; 겔 7:20; 16:17; 23:14; 암 5:26
모양(드무트, twmd) (구약에 총 25번 사용됨)
창 1:26, 5:1, 3; 왕하 16:10; 대하 4:3; 시 58:5; 사 13:4; 40:18; 겔 1:5[x2], 10,
13, 16, 22, 26[x3], 28; 8:2; 10:1, 10, 21, 22; 23:15; 10:16
(두 단어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창 1:26과 5:3 뿐이다)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위의 두 단어는 헬라어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참고구절은 중요한 것만).
형상(쩰렘): 에이콘(εἰκών)
롬 8:9, “그 아들의 형상”
고후 4: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모양(드무트): 호모이오시스(ὁμοίωσις)
약 3:9,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전환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 기독교인의 목표가 된다(롬 8:29).
27절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
송제근, 오경의 구약의 언약 신학: 65 인용
1장 자체 내에서는 일단 하나님의 복수서(plurality)을 의미한다는 포괄적인 해석이 적당할 것 같다….서구를 지배한 ‘나’ 중심의 지극히 이기적인 독재적 인간관에 도전한다….인간인 나의 존재는 ‘나’ 됨에 있다기 보다 ‘우리’ 됨에 있으며, 여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의 신비가 반영되어 있다. 삼위 하나님의 복수성과 하나됨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의 하나인 것과 같이, 인간 존재는 근본적으로 복수성을 가지며 그런 인간이 다시 하나됨을 이룬다는 선언인 셈이다” (밑줄 내 것)
27절의 직역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가 창조하셨다/ 그를.
남자와 여자로/ 그가 창조하셨다/ 그들을
- “창조하다”란 단어가 3중으로 사용된 점은 이 것이 하나님의 창조행위의 정점임을 보여준다.
- 창조시에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하나님의 형상=남자+여자[창 2:24]).
- 남자와 여자의 창조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와 관련이 있다.
28절: 그들에게 복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22절과 대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이르시되”: “이르시되”는 부정사. 복을 주는 것에 그냥 종속됨.
- 28절에서는 “복주시다”란 동사와 “이르시되”란 동사 모두에 “그들에게”가 반복된다. 인간은 앞의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복 주시다 + 그들을
말씀하시다 + 그들에게
- 28절의 인간의 사명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을 정복하라.
(3) 모든 것을 다스리라.
(1)번 “생육하고 번성하라”의 원어해설
“생육하다”(파라, hrp): “열매”를 의미하는 프리(yrp)란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
“번성하다”(라바, hbr): “많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브(br)란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
- 이 두 단어는 창세기의 모든 세대에게 주어진 축복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음. 이 축복들은 단지 창조 때만의 축복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축복이다.
- “생육하다”(파라, hrp): 창 1:22,28; 8:17; 9:1,7; 17:6, 20 (아브라함); 26:22 (이삭); 28:3 (이삭à야곱); 35:11 (야곱); 41:52; 47:27 (내레이터가 이 명령의 성취를 선언-신학적으로 중요); 48:4(야곱이 병석에서 요셉에게 한 말); 49:22; 출 1:7; 23:30
- “번성하다”(라바, hbr): 창 1:22, 28; 8:17; 9:1,7; 16:10 (아브라함); 17:2,20; 22:17; 26:4,24 (이삭); 28:3; 35:11 (야곱); 47:27 (내레이터); 48:4; (참고) 출 1:7, 10, 12, 20.
(이 두 단어가 특히 족장사 본문인 28:3; 35:11; 47:27; 48:4 등의 굵은 글씨로 표시된 곳들에서 함께 사용됨을 유념하라. 족장들은 창조명령의 수행자들이라는 시각에서 읽어야 하며, 아담의 계승자들이자 대체자들이다. 이런 면에서 이들은 진정한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땅을 정복함”과 “모든 생물을 다스림”(vbk, hdr)
- 이 개념은 파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 창 2:15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되어 있다. 이중 “다스리며”는 2:5의 “경작하다”란 단어이다(db[). 또한 “지키다”란 단어는 보존의 의미를 가진 rmv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파괴적인 다스림이 아닌 보호와 돌봄일 것이다.
Þ 인간창조의 특징
순서: 창조의 마지막이자 정점
목적: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통치(1:26, “다스리게 하자”)
모습: 하나님의 형상대로
방법: 하나님이 직접 흙을 빚으시고, 숨을 불어 넣어서 만드심(2장)
재료: 흙으로 만드심(2장)
신분: 하나님과 교제 가능
처소: 에덴 동산(2장). 그러나 “온 땅”을 다스리는 것이 목적
1:29-30 음식제공
- 고대 근동의 신화들에서 인간은 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주는 자로서 창조된다.
- 여호와 하나님은 음식을 인간에게 공급해 준다.
1:31 창조의 결론
- 이 구절은 다른 날의 승인 어구들처럼 그 날의 창조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6일 동안의 모든 창조에 대한 것이다.
- 6일 동안의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감상은 “심히” 속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보시니 보시기에”의 “보시기에”(hNhw)란 문구가 덧붙여져 있다. 이 히브리어 표현은 관점의 변화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내레이터가 창조의 과정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보시기에”가 쓰이는 부분은 하나님 자신의 시각이다. 하나님이 1인칭으로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그윽히 내려다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는 것이다.
참고: 창 29:2; 왕상 19:5-6 (hNhw)를 통한 시점의 변화 표시
- “심히” 좋음과 관련하여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이러한 감상이 인간의 창조에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에 박힌 보석이다.
2:1-3
- 일곱째 날의 중요성은 다른 날과 달리 이 날에 대한 언급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는 점으로 알 수 있다.
- 일곱째 날은 다른 날과 달리 축복을 받았다. 안식일은 복 받은 날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자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
원어해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언급이 나오는 유일한 본문이다(참고, 출 20:8-11; 11절의 “쉬었음이라”는 원어가 틀림).
창 2:2 “안식하다”(샤바트, tbv)
출 20:11 “쉬다”(누아흐, xwn)
- 이 본문은 “거룩하게 하다”란 단어가 나오는 성경의 첫 번째 본문이다. 이 일곱 째 날은 거룩하게 함을 받은 날이다. “거룩하게 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는다는 의미이다. 안식일은 성경에서 최초로 하나님을 위하여 분리된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달의 7의 배수의 날은 재수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 날은 하나님께서 떼어 놓으신 축복의 날이었다.
- 1장이 신앙적으로 주는 의의
질서의 하나님
성경 전체는 창조의 회복을 지향(이사야서 65장; 계 21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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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1:1-2:3의 창조기사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다음 세 가지로 축약된다.
(1) 하나님과 피조계의 관계
(2) 창조의 의미
(3) 창조세계에서의 인간의 자리
- 이 점들을 하나씩 살펴 보자.
(1)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라는 성경 서두의 주장은 여러 가지 신학적 의미들을 갖고 있다.
-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곧 전능자로서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다.
- 여기에는 고대 근동의 다른 창조 신화의 다신론과 선명한 차이가 난다. 즉
(가) 여호와 하나님과 혼돈(chaos) 사이의 갈등 없음
(나)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 사이의 갈등 없음
(2) 창조의 의미
이 창조 기사에서 창조 과정의 핵심은 forming과 filling이다.
- forming/filling은 1:2의 “토후 봐보후”(whbw wht)의 상태를 넘어서는 것이다.
- 첫 3일은 forming의 과정이며, 나머지 3일은 filling의 과정이다.
- forming의 핵심은 separating이고, filling의 핵심은 생명을 만드는(making lives) 것이다. 이 두 사항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1일 |
빛과 어둠(시간적 나눔) |
4일 |
발광체들 |
2일 |
하늘/물의 나뉨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수직적 나눔) |
5일 |
새들과 물고기 하늘의 짐승과 물의 짐승 |
3일 |
뭍과 물 나눔(수평적 나눔) 식물 (뭍은 식물의 처소) |
6일 |
동물들과 사람 |
7일 |
안식일 |
* 이 도표를 해설하자면
창조의 6일은 형성(forming)의 과정과 채움(filling)의 과정으로 나뉨.
1-3일: 형성(forming)
4-6일: 채움(filling)
형성의 3일은 나눔의 행위를 통해 공간을 창출한다.
1일: 시간의 나눔(빛의 창조)
2일: 수직적 나눔(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
3일: 수평적 나눔(물과 뭍의 나눔: 뭍은 식물의 처소)
채움의 3일은 채움의 행위를 통해 앞의 3일을 통해 창출된 공간을 채워넣는다.
4일: 발광체들 창조(시간의 나눔)
5일: 하늘과 물의 생물체들 창조(수직적 나눔)
6일: 육지 동물들과 사람 창조(수평적 나눔)
1-3일의 공간 형성과 4-6일의 채움은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1-3일: 무대
4-6일: 배우
* forming=separating이라는 개념의 의의
- 질서는 분리에서 온다. 이 점을 이해할 때 거룩이라는 개념의 핵심이 왜 분리인지를 알게 된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한다. 즉 분리될 것을 요구하신다. 분리는 신자와 창조주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특질이다.
* filling=life-giving이라는 개념의 의의
- 4-6일째의 창조주의 filling의 행위는 곧 life-giving의 행위이다.
- 창조는 곧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è 창조주는 곧 생명을 주시는 자이다.
- 반대로 죽음은 반창조이다.
(3) 창조세계에서 인간의 자리
* 창조에 있어서의 인간의 중요성은 1장의 창조기록이 인간중심적 표현들(human-centered terms)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 이런 점은 현대 과학이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태도(이것을 과학자들, 그리고 현대적 지성인들은 과학적 태도라고 부르고 싶어한다!!!)의 묘사와 차이가 난다.
- 과학적 태도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지구나 현 태양계가 지구의 중심도 아니다. 그냥 중심이 없는 우주의 어느 은하의 한 작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 지구일 뿐이고, 그 곳에 사는 잘난 채하는 존재가 인간일 뿐인다.
- 20세기의 유명한 무신론적 과학자 Carl Sagan의 책에 기초한 영화 Contact에서 등장인물들은 “만약 인간이 이 광대한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라고 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공간(space, 우주라는 의미와 이중 의미로 언어유희!)의 낭비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è MC: 사실 이 우주에 많은 외계인이 있다 해도 여전히 우주는 공간 낭비일 뿐이다(물 한 방울의 지구와 바다 같은 우주의 비유, 외계인을 다 합친게 양동이 하나만큼이라도 여전히 Carl Sagan식으로는 우주는 낭비다. 지구인만 존재하나 외계인이 있으나 상관없이 우주의 엄청나게 많은 부분은 공간 낭비인 것이다. Carl Sagan식의 논리라면!!!!)
èè 지적 설계론(intellegent design)을 주장하는 분들은 소위 ‘인간중심성의 원리’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이 우주의 모든 사항들은 인간의 존재를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참고, 리스트로벨, 『창조세계의 비밀』).
* 인간중심적 시각은 제 4 일의 창조에 대한 서술 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 시편 8편과 현대 과학의 objective 시각의 대비
- 시편 8편의 시각을 마치 옛 시대의 산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총아인 인공위성 발사를 하면서 고사를 지내는 경우들, 손 없는 날 이삿짐 센터 부르는 가격이 확 올라가는 것들을 보라. 이런 것들에 비하면 기독교인인 것이 얼마나 편한가?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의 의미
- 이것은 십계명의 제 2 계명의 유일한 합법적 위반이다.
-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른 어떤 것으로든 만드는 것을 거부하셨지만 정작 하나님 자신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미국의 개 교회—미친 짓)
* 십계명을 두 개로 요약한 큰 계명(마 22:35-40)
-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 주는 신학적인 연장선이다.
(1) 수직적: 자신의 형상의 근원인 하나님 사랑
(2) 수평적: 자신과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한 인간 사랑(잠 14:31; 22:2)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
* 하나님의 형상과 피조계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보유자로서 하나님 대신 세상을 통치한다.
- ANE에서 형상=통치이다.
왕의 물질적 형상으로서의 조각 등의 기물들: 왕의 통치 영역 표시
왕의 인간적 형상으로서의 총독 등의 관료들: 왕의 통치 실행
- 인간은 Creator’s royal representative ruler over the earth.
*위의 사항들을 도식화하면
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자 피조물로서의 인간 |
|
창조자와 피조계의 구분의 차원 |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구분의 차원 |
창조주 |
창조주 |
------------------------- |
인간: 하나님의 형상 |
인간 |
------------------------- |
기타 피조물 |
기타 피조물 |
* 창조 이야기의 추가적 의의
- 구약성경의 내용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온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점은 앞으로 더 살펴볼 것임)
(참고로 유대교 주석의 아버지라 불리는 Rashi는 왜 오경이 출애굽기 12장, 즉 구약에서 율법이 처음으로 주어지는 본문이 아니라 바로 창조의 기록으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 당황해 한다.
-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그는 왜 하나님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나의 답은 이렇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록은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의 선포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시다. 그 분은 라쉬가 말한 것과 같은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 그러나 또한 1장의 창조 기록은 이스라엘 뿐만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이심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온 세상 역시 하나님의 자녀이다(참고, 암 9:7).
- 따라서 1장의 창조 기록은 하나님께서 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 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기도 하다(요 3:16).
- 이러한 통찰은 선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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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학습: 창조 motif와 구약성경
* 출 1:7
* 출 14장: 물, 나누다, 마른 땅
* 출 25-40의 성막
7중 구조: 25-31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39:42-43
창 2:4-3:24
2:4-2:25 창조의 기록 3:1-24 타락과 희망 |
- 1장과 2-3장의 창조기록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1장에서는 다른 모든 것이 생긴 다음에 인간이 창조된다. 하지만 2장에서는 인간이 없어서 초목과 채소가 없다고 되어 있다.
그 때문에 문서설 학자들은 이 두 기록이 서로 다른 문서에서 나왔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지금은 별로 인기가 없다.
양자의 차이는 강조점의 차이인 것이다.
1장이 세상 창조에 포인트가 있다면 2장은 인간 창조에 포인트가 있다. 이것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Þ 창조기사 I(1:1-2:3)과 창조기사 II(2:4-25)는 창조에 대한 대한 관점이 다르다.
|
창조기사 I |
창조기사 II |
조망 |
망원경적 조망 |
현미경적 조망 |
서술 방식 |
세상 전체적 서술 |
인간 중심적 서술 |
중심 |
하나님(“엘로힘”, 35회 사용) |
인간(“아담”, 16번; 엘로힘 14회 사용) |
(1) 창조기사 I은 온 세상의 창조를 세상 밖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시는 이가 있는 듯한 시각에서 서술한다. 창조기사 II는 창조가 일어나는 현장 속에서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듯한 시각에서 서술한다.
(2) 창조기사 I은 온 세상에 대한 총체적 서술이다. 창조기사 II의 관심은 시종일관 인간이다. 대표적인 예로 2:5은 “사람이 없으므로” 창조 세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3) 두 기사의 초점은 각각 하나님과 인간이다. 1장에서는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총 34절에 총 35번이 사용될 정도로 많이 사용된다. 2장에서도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적지 않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내레이터의 초점은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에게 더 가 있다.
구조
2:4-25 창조의 기록
2:4-17 인간 중심적 창조기록
2:4-7 인간 창조
2:8-14 에덴
2:15-17 인간의 소명
2:18-25 돕는 배필(창조의 완성)
3:1-7 죄
3:8-21 심판
3:8-13 죄의 추궁
3:14-19 심판과 저주
3:20-21 희미한 희망
3:22-24 추방
2:4-2:25 창조의 기록
2:4-7
2:4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ð 이 구절은 앞의 1:1-2:3의 창조기록과 다리를 놓아준다.
ð “천지”는 히브리어 상으로는 “하늘과 땅”이 아니라 “땅과 하늘”이라고 되어 있다. 하늘과 땅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저자는 자신의 강조점이 어디에 놓이는지를 보여준다.
- “여호와 하나님”이란 독특한 표현은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가 곧 창조주라는 것을 밝혀준다(송제근, 오경의 구약의 언약 신학: 90).
è 어쩌면 해답은 더 깊은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요나서에서 여호와와 엘로힘은 하나님에 대한 신지식의 깊이를 나타내준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 반영(내레이터, 요나)
엘로힘: 신에 대한 무지 혹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 개념 나타냄
(이방선원들, 니느웨 사람들)
하엘로힘(정관사+엘로힘): 이방인들이 신지식이 증가했을 때
4장에서의 엘로힘: 요나의 정체(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않고, 따를 의지도 없는 점)의 폭로와 더불어 요나에게 엘로힘 혹은 하엘로힘 적용.
2:5-7
- 5-6절에 따르면 초목과 채소는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 “사람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다.
- 사람 창조는 다른 모든 피조물의 창조와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난다.
(1) 땅의 흙으로 직접 빚어서 만드신다(토기장이로서의 하나님; 사 29:16; 30:14; 45:9; 64:8; 렘 18:1-6; 롬 9:21) (중요구절들 굵은 글씨)
참고: 땅(아다마, hmda)이란 단어와 사람(아담, ~da)이란 단어 사이 의 언어유희
(2)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됨
(3) 여자를 직접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심(2:22).
- 인간의 창조는 흙으로 만든 사람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이루어졌다. “생기”(니쉬마트 하임, ~yYI+x; tm;äv.nI)란 단어는 성경에 딱 한 번 나온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생령”(네페쉬 하야, hyx vpn)이 되었다. 이 “생령”이란 단어는 2:19; 9:9에서 들짐승과 새들에게도 사용된 표현이다. 인간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
ð “생기”를 받은 점이 인간의 고유성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 그러나 인간의 더 중요한 독특성은 인간에게 2:14과 같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임무를 주신 점에 있다.
2:8-14 에덴
본문의 기본적 내용
(1)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음. 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복수의 의미]”도 있음.
(2) 에덴에서 발원하는 네 강
비손: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순금, 베델리엄, 호마노)
기혼: 구스 온 땅
힛데겔: 앗수르 동쪽으로 흐름
유브라데
에덴 동산은 나중 성막과 연결된다.
에덴 동산 è 성막 è 성전 è 예수 è 성도(개인, 집단) è 하늘(계 21-22)
(1) 에덴 동산은 성막처럼 동쪽에 입구가 있다.
(2) 나중에 그룹은 동쪽에서 사람이 에덴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는다. 이 그룹은 성막을 지키는 상징적 동물이다.
(3) 아담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에덴 동산에서 사역을 한다(db[, rmv).
(4) 생명나무는 성막의 금촛대를 닮았다.
(5) 에덴의 보석들은 성막 및 제사장들에게 사용된 보석과 비슷하다. 계시록 21-22장의 거룩한 도성과는 더욱 비슷하다.
(6) 에덴의 강은 이 것이 현재의 이라크 어디쯤인 것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그러나 유브라데와 힛데겔(티그리스) 이외의 나머지 두 개는 확실히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에덴이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참고 3:22-24). 타락 이후 인간은 에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에스겔서 44-48장, 성전 환상; 계 21-22장[특히 22:1-2])
원어해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쯔 핫다아트 톱 봐라, [rw bwj t[dh #[): 직역하면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 혹은 “선과 악을 아는 나무”(명사와 부정사가 형태가 동일).
“선악을 안다”라는 표현은 신 1:39; 삼하 19:36; 사 7:15-16 등에 따르면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는 판단력을 상징한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은 판단력을 금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모든 판단력을 다 금지하고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과 악(좋은 것과 나쁜 것이 더 좋은 번역, “선과 악”이라는 표현은 너무 윤리학적인 냄새가 강함), 즉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의 최종적인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상징한다.
2:15-17 인간의 사명
2:15 “그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Hr'(m.v'l.W Hd'Þb.['l.)”
-“다스리다”는 동사는 db[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일하다”(to work)는 의미를 갖거나 성전에서 “봉사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개역성경의 “다스리다”라는 번역은 별로 좋은 것 같지가 않다. 이 것은 통치의 개념이 아니라 “사역”, “봉사”의 개념이다.
-“지키다”는 동사 역시 성전에서 시무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 이 두 단어는 모두 레위인들의 성막에서의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들이다(민 3:7-8; 4:23-24,26 등).
- 그러므로 아담은 창조 세계의 성소와도 같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제사장의 원형적 존재이다. 이것은 다시 제사장의 완성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또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이스라엘과 제사장 직분자로서의 구약 제사장들이다.
- 2:15에 근거한 노동의 의미
(1) 노동은 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상명령은 인간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할 것을 명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에덴 동산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하도록 명함을 받았다.
(2)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대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산의 각종 실과를 다 주셨으므로 인간은 이를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었다.
(3)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저지른 이후 인간의 노동은 의미가 바뀐다. 인간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된다(3:17).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은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으로써 인간의 수고를 상쇄시킨다.
16-17절 이 두 구절은 세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음.
(1) 긍정적인 명령: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
(2) 부정적인 명령: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3) 경고: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주의!
하나님의 이 말씀은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다. 긍정적인 명령을 직역하면 “이 동산의 모든 나무의 네가 정말도 다 먹을 수 있다”(동사 강조 기법 사용)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동사 강조 기법 사용 안 함)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 초점이 가 있는 것이다.
창 3장의 타락 이야기에서도 보듯이 사탄은 이런 긍정의 비중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부정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탄의 일관된 계략이다.
Þ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하는 말씀의 신학적 의미
- 이 금지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란 주제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온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대리통치자가 된 인간은 피조세계의 시각에서 볼 때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 하나님의 형상일 뿐 하나님 자체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선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이 금지명령이다. 이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라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선악을 안다”는 표현이 곧 “판단력을 갖는다”는 표현과 의미상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금지명령은 또한 판단의 최종적인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신앙의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기도처럼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는 고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2:18-25 돕는 배필(창조의 완성)
18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 1-2장을 통틀어서 “좋지 않다”라는 표현은 오직 한 번 인간이 배필이 없다는 표현에만 나온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창조의 정점이자 완성은 인간 창조가 아니라 인간의 결혼이다(1:27의 내용과 상응).
- 이런 면에서 볼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창조에 아직 화룡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면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아직 이 여자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 18절에서 하나님은 이 일을 하고자 하신다.
- 1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신다. 1장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과 큰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다. 이 대조적인 말씀 속에는 이제 하나님이 당신의 그림에 마지막으로 찍고자 하는 마지막 점이 예고되고 있다. 이 것이 되어야 “심히 좋은” 창조가 완성될 것이다.
2:18 돕는 배필(AD*g>n<K. rz<[Eß): 직역: “그에게 어울리는 조력자”
- rz<[E는 “조력자”란 의미이다. 보통은 하나님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며, 군사적 도움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돕는 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도움을 받는 자가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가 않다는 의미를 갖는다.
- AD*g>n<K.는 “그에게 어울리는”이라는 의미이다. 이 것은 “그와 동일한” 혹은 “그와 같은”의 의미라기 보다는 “그를 잘 보완하는”, “그에게 적합한”, “그에게 어울리는”의 의미가 더 큰 듯하다. 그러나 이 것은 일방적 도움의 개념은 아니다. 서로 상응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 그러므로 “돕는 배필”은 남자의 부족한 점을 메우며 완성시키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 완성은 남자만 여자를 얻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 이러한 개념은 아담이 동물들을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짝을 찾지 못하다가 하와를 보고 “마침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라고 감격의 노래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듯 하다. 그는 동물에서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기와 “상응하는” 존재를 찾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와에게서 그 것을 발견한 것이다.
2:19 동물들의 이름을 매김
- 구약의 사고방식에서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그 것에 대한 통제권을 확증하는 것이다. 짐승의 이름을 짓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권한을 확증한다.
- 아담의 이 행위는 하나님의 의도와 인도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간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2:20 “돕는 배필”을 못 찾은 아담
- 아담은 짝을 찾지 못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잠을 재우신다.
21절 “깊은 잠”
hmdrT (타르데마)는 신에 의해 유발된 잠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창 2:21; 15:12; 삼상 26:12; 욥 4:13; 33:15; 잠언 19:15; 사 29:10). 신의 계시의 때에 사용된다(창 15:12; 욥 4:13).
21-22절
갈비뼈로부터 여자를 만든 이유(Matthew Henry)
“여자는 남자를 능가하도록 그의 머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에 의해서 짓밟히도록 그의 발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와 동등한 존재가 되도록 그의 옆구리로부터,
보호받도록 그의 팔 아래서
그리고 사랑받도록 그의 심장 가까이에서 만들어졌다.”
23절 “마침내” 이는 내 뼈 중의 뼈(~c,[e)요 살 중의 살(rf'B')이라.
“이는” 다음에 “마침내” 혹은 “이 번에야말로”(핲파암, ~[ph)란 표현이 들어 있다.
앞에서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짝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하와를 보고 “마침내”란 탄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쉽게도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뺌으로써 아담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 ★★★여자가 아담과 같은 골육(뼈와 살=”친척”이란 이미, 창 29:14 등 참조)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녀를 짐승으로부터 구분한다(참고, 19-20절).
원어해설
“합하다”(다바크, qbd)란 단어는 하나님과 그의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아주 중요하다. 이 단어의 기본 뜻은 “달라붙다”(stick to~)이다.
창 34:2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깊이 사랑하다”, 다바크)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신 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다바크)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신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다바크)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여호와 신앙은 창 2:24의 부부간의 완전한 결혼과 연합의 이미지로 설명된다)
신 11:22-23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다바크)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신 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다바크)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수 22: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다바크)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룻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다바크) (룻의 신실함은 나오미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의 상징) (≈룻 2:8)
왕상 11:4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다바크) (정확히는 다바크 르아하바, hbxal qbd).
왕하 18: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다바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욥 41:17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다바크)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41:23) (다바크는 분리할 수 없이 달라붙은 것은 의미)
시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다바크)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시 119:31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다바크)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잠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다바크)
렘 1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다바크)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다바크)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Þ “벌거벗다”(아룸밈, ~yMwr[ ç 아롬, ~wr[)란 단어는 다음 장인 3:1의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는 문구의 “간교하다”(아룸, ~wr[)와 모음만 살짝 다를 뿐 히브리어 자음이 동일하다. 구약성경은 이런 식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장들을 연결시킨다.
- 따라서 창세기 2장의 창조기사는 3장의 타락의 배경 역할을 한다는 것을 창세기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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