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찬양사역을 하다가 갑자기 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그 때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주님을 더욱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신학에 전념하고 있는 이유 또한 더욱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지난 15년간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알려진 찬양이나 이름이 없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내 길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고 2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나의 삶은 찬양의 삶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시절 나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두란노 경배와 찬양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임마누엘 선교단의 정종일 목사님, Sing 코이노이아의 주숙일 집사님 밑에서 잠시 사역을 배우다가 28살부터 본격적으로 찬양보급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예림 찬양단을 조직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면 찬양을 보급하고, 찬양팀을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들이 어찌나 기쁘고 행복한지 지난 15년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좌절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많은 도전과 방해와 어려움은 있었으나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주위의 도움으로 잘 해쳐나가 약 23개의 교회를 거치면서 15개의 교회 찬양팀을 세워나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부산에서 열린 큰 찬양 집회의 매인 리더로 활동하기도 하고, 기독교 방송에도 나가 간증도 하기도 하며, 작은 책도 내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은 찬양 사역의 일부로 아주 작은 징검다리에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또 다른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성공으로 교만해졌던 나는 그 길을 거부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저에게서 모든 것을 걷어 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동안 쌓아 왔던 명성, 인맥, 지식, 사역지 등.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불사르셨습니다. 나는 처절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주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받쳐가며 충성했는데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입술이 부르트고 목이 상하도록 하나님만 찬양했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정녕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신 건가요?" 하나님께 원망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가 자란 서울의 면목동으로 올라왔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난 이제 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5년 동안 발이 달토록 전국을 해매며 예배의 회복과 찬양의 부흥을 위해 살았던 내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사람, 내가 다니던 중곡초등학교, 내가 자란 교회들을 둘러보고 생을 마감하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기에…. 용마폭포 위에 올랐습니다. 뛰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의 자살 시도였습니다.
강하고 급한 바람이 나를 밀쳐 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억울하지 않는가? 그래도 왔다간 흔적이라도 남겨 놓고 가야지…."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내려오는 길 내내 내 귓가에 흐르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왔다간 흔적이라”그리고 내려와서 만든 곳이 "예림의집 카페"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내 한스런 인생, 모진 사연 하소연이나 하려고 만든 카페입니다. 결코 믿음이나 계시나 은혜로 만든 곳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었기에,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만들어 보았던 것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글들을 남겨보았습니다. 하나님 원망하는 글, 부모 원망하는 글, 15년 동안 정말 헛살았나 하는 푸념들…. 처음의 예림의집은 그런 글들로 가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나를 변화시키고, 회복시키고 더 단단히 만들 줄이야! 카페가 변화하듯, 내 자신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고 여겼던 이곳 예림의집 카페에 한 명, 두 명 식구가 늘어갑니다.
모두들 상처 입은 영혼들…. 비록 얼굴은 마주볼 수 없지만, 서로 위로하며, 서로 격려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이 예림의집이 되기까지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가능했을 것입니다. 분으로 가득 찼던 원망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상한심령이 되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또 다른 비전을 주셨습니다. 선교에 대한 비전.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는 그 비전을 보며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으며, 외로이 혼자인 내가 어떻게 감당할까 한숨만 나왔습니다. 내 믿음이 많이 연약했기에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왔습니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목사가 되기 위함도 아니요, 신학을 탐구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주신 비전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 만민이 주님을 찬양할 그 날까지 선교하기 위하여, 도저히 나의 힘으론 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신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여 총신대학원도 오게 되었고 이렇게 나의 찬양의 삶을 논문으로 정리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 나의 삶을 세세하게 밝히는 이유는, 찬양이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며, 그 찬양의 내용도 우리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이 글이 100% 나의 창작일수는 없습니다. 내에가 가르침을 주었던 많은 분들, 말씀들, 책들의 내용들이 함께 내 삶 속에서, 머릿속에서 버무려져 글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 논문을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찬송가학을 통하여 열정어린 강의를 해주시고 이런 소중한 기회를 허락하신 이국병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삶이 찬양으로 기름지게 하도록 인도해 주신 분들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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