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강 10월 16일
V. 토머스 뮌처
뮌처의 어제와 오늘
뮌처의 행적에 대한 루터의 평가는 단호했다. “화육된 마귀” 이것이 뮌처에 대해 루터가 내린 결론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로서, 한동안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 불변의 진리였다. 뮌처의 해석에 새로운 뉘앙스를 준 첫 시도가 나온 것은 17세기 말이다.
1699년, 경건주의의 경향에 있는 루터파 사람인 고트프리트 아르놀트가 <교회와 이단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루터에 대한 존경은 초기에만 해당되고 카를슈타트와의 논쟁(1521년 5월 22일) 때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재세례파, 열광파 그리고 뮌처는 명예회복의 대상이다. 그는 뮌처의 맹렬한 행동이 부인할 수 없이 끔찍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자살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어떤 이익을 챙기지 않을 만큼은 하나님의 영이 없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1525년 이래 뮌처와 그의 글들이 망각에 빠진 상태에서 아르놀트의 책은 계몽주의 종교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뮌처 사상에 대한 실제적 관심이 싹트는 것은 프랑스 혁명의 시기이다.
1795년 바바리아 목사인 쉬트로벨은 <튀링겐 농민 반란의 주모자, 토마스 뮌처의 생애, 작품 그리고 교리>라는 책을 뉘른베르크에서 출간했다. 16세기에서 혁명시대의 동지를 발견하려는 이 책은 다소간 학문성이 결어되었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나,
1830년 혁명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뮌처에 대한 새 작품들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역사가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랑케는 뮌처를 단순히 “계시주의자”로 본 반면, 좌익 헤겔주의자인 짐머만은 뮌처를 “민주주의 운동”인 농민전쟁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 했다. 이 짐머만의 글을 충분히 활용한 이가 엥겔스이다. 뮌처는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두 명의 저자에 의해 일약 유명해졌다. 첫 번째는 엥겔스의 <독일 농민 전쟁>(1850)이고 두 번째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1921)이다. 전자는 1848/49년 혁명의 실패 뒤에 쓰여 졌고, 후자는 1917년 10월 혁명의 성공과 독일 스파르타쿠스 혁명의 실패 어간에 쓰여 졌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들을 통해 대중화된 뮌처는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우리 시대의 민중 봉기의 신화들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세속사의 흐름은 교회사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두 명의 교회사가에 의해서 종교개혁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되었다. 베인톤의 <종교개혁의 좌익>이란 표현과 조지 헌스턴 윌리엄스의 <급진 종교개혁>이란 표현은 한동안 종교개혁을 보는 새 시각을 던져 주었다.
새 역사비평
인물과 작품 해석을 위한 주요 관점 가운데 하나는 뮌처에게 있어서 그의 마지막 시기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이 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 가이다. 다시 말해서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해 붙여진 <혁명의 신학자>란 칭호가 텍스트들의 실재들과 부합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모든 질문은 이론(신학)과 실천(혁명적 정치 활동)과의 관계로 귀결한다. 뮌처가 어떻게, 분명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신학에서 출발하여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사회 참여에 도달했는가를 아는데 있다.
엥겔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신학이란 겉에 두르는 외투나 가면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수한 정치적 핵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선 교리를 떼어내면 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는 뮌처의 신학적 개념들은 조사할 필요가 없어진다. 실제로 엥겔스는 뮌처의 작품들을 매우 드물게 참고한다. 이것은 그가 16세기에 신학이 외적 요소가 아니라 유일하게 가능한 언어였음을 잊고 있다는 뜻이다.
블로흐의 마르크스주의는 엥겔스의 그것보다 부드럽다. 그는 뮌처를 합리주의자로 삼는 일을 피하면서 비합리적 요소들인 미신, 묵시적 환상, 종말론적 도식 등, 한마디로, 그가 “모든 혁명의 정치 철학적, 그리고 종교 철학적 원리”라고 부르는 것을 고려한다. 천년왕국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성분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는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입문>에서 말한 종교(또는 이데올로기) 기능의 변증법적 정의에 보다 근접하고 있다. 블로흐가 엥겔스의 엄하고 단순한 마르크시즘을 통해 <수정주의>로 나아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블로흐의 책을 보다 정확히 마르크스주의의 틀에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루카스와의 대담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루카스는 <역사와 계급 의식>(1923)에서 1525년에 농민들의 실패의 깊은 원인들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있다. 그에 따르면 경제 조건들이 농민으로 하여금 유일한 혁명 계급이 되게 했고 이런 관점에서 농민의 승리는 완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패배한 것은 그들의 계급의식의 부족이 어쩌면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었던 혁명적 조직을 결성치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뮌처의 경우는 종교 의식(루카스에 따르면 세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실제와 혁명 이론 사이에 막(寞)으로 개입되었다. 달리 말하면 뮌처의 계급 의식이 그의 신학에 의해서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신학의 역할은 이렇게 각각 달리 해석된다. 엥겔스에게는 단순한 가면이요, 블로흐의 경우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요소이며, 루카스가 볼 때는 하나의 칸막이요, 제어장치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뮌처에 대한 가장 두꺼운 책을 쓴 스머린Smirine은 뮌처의 신학이 모든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피오레의 요하킴과 라인강 유역의 신비주의의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스머린의 잘못은 그가 이 신학을 합리적이고 정치적인 인간학으로 축소시키고 뮌처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선구자요 공산주의의 조상으로 삼은 데 있다.
로만Lohmann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에 따르면 뮌처는 <혁명의 신학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사회적 실천이 그의 신학(십자가의 신학)과 통합하지도 않고 또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로만은 이 신학의 사회적 영역을 부인한다. 뮌처에게는 정치적 계획이 없는 신학자와 신학의 영역을 떠나는 정치가가 병존한다. 간단히 말해서 뮌처는 외적 상황과 역사의 우연이 혁명가로 변형시킨 신학자인 셈이다. 콘Norman Cohn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뮌처는 그 관심사가 본질적으로 신비적 성격이고 가난한 자의 복지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무관심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입장도 뮌처의 일면만을 보는 오류가 있다.
그렇다면 뮌처의 진정한 위치는 어디인가? 혁명의 신학적 기초는 무엇인가? 십자가의 신학은 혁명을 배제하는가 아니면 강요하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와 텍스트 앞에 다시 서야할 것이다.
뮌처의 생애와 작품
1490년 하르츠 산간 지방의 슈톨베르크에서 태어난 토마스 뮌처는 종교개혁 초기에 별로 알려지지 않다가 년 봄에 1520 , 그가 츠비카우Zwickau의 설교자로 임명되었을 때, 루터의 많은 지지자들 속에서 불쑥 솟아났다. 일년뒤 시 임원 단들과의 마찰로 자신의 직무를 상실하면서 뮌처는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프라하로 가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론을 글로 표현했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프라하 선언이다. 1521년 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자 그는 일 년 반의 방황 끝에 튀링겐에 있는 알쉬테트의 목사로 임명되어 갔다(1523년 부활 주일). 뮌처가 자기 작품의 진수를 펴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또다시 일련의 분쟁을 일으키고는 같은 고장의 뮐하우젠으로 가서 도시 제도의 개혁에 참여했다. 1524년 10월에 그는 아마도 뉘른베르크에 있었고, 그 뒤엔 독일 서남 지방으로 다니면서 농민 봉기를 전개했다.
1525년 2월 튀링겐으로 다시 돌아와 이 지역의 반역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뮌처는 1525년 5월 15일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15일 뒤 처형되었다. 뮌처의 작품은 그의 생애만큼이나 간략하고 밀도가 높다. 1521년 가을에서 1524년 가을까지 쓰여진 6편의 이론 및 논쟁서들과, 예배 의식 개혁을 다룬 세편의 글(1523/1524년)과, 설교 단편들과 초안, 그리고 수십 통의 편지들(대부분이 1524/1525년에 쓰인 것)이 있다. 이것이 매우 간단히 요약된 뮌처의 생애와 작품이다. 이제 주요 시기의 활동과 작품을 살펴보자.
츠비카우에서의 뮌처
뮌처가 루터의 천거에 의해 목사로 임명된(1520년 5월) 도시 츠비카우는 그 도시의 위치 상(라이프치히와 프라하, 프랑크푸르트와 드레스덴을 잇는 십자로)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그리고 직물업에 있어서 중요한 도시였다. 이 직물공들의 주인들은 인근 쉬네베르크와 아나베르크의 광산의 소유주를 겸하면서 도시의 귀족계층을 형성했다. 한편 직물공들과 광부들은 대량 유동인구를 이루면서 실로 “프롤레타리아”계층을 형성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종교 생활에서도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 츠비카우에는 두개의 큰 교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귀족과 조합원들의 교회인 성 마리아 교회요, 다른 하나는 하층민들의 교회인 성 카터린 교회이다. 츠비카우와 인근 지역의 하층민들은 2세기 전부터 이단들에 호의적이었다. 왈도파와 후스파의 영향은 도시의 하층 구조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것은 뮌처의 사상을 형성하는 양식이 되었다. 뮌처는 공식 설교자인 에그라누스가 자리를 비운 수개월간 성 마리아 교회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에그라누스가 돌아온 1520년 10월부터 성 카터린 교회로 옮겼다. 뮌처의 설교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도시는 일련의 소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시 당국이 그를 소환하자 그는 그냥 도시를 떠나고 말았다(1521년 4월 16일). 츠비카우 시절 뮌처가 남긴 것으로는 시 서기가 기록한 두 편의 설교 노트와 뮌처가 소장한 도서 목록(로렌초 발라, 아그리콜라, 에라스무스, 로이클린, 후텐, 등), 그리고 뮌처가 만든 에그라누스의 논제들 및 몇 통의 편지들(그 중 하나가 1520년 7월 13일자의 루터에게 쓴 편지)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결정적인 사건은 뮌처에 “츠비카우의 예언자들”과의 만남이다. 이들의 명단은 슈토르흐, 슈튀브너, 드레흐셀이다. 이 중 당시 사람들이 이 그룹의 우두머리로 여겼던 슈토르흐는 직물업계의 경쟁으로 망한 츠비카우의 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신학 공부는 하지 않았으나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슈튀브너는 셋 중 유일하게 대학 공부를 한 사람으로 1518년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녔는데 이때 그는 뮌처를 만났었다. 드레흐셀에 대해서는 이름밖엔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기록된 작품을 남기질 않았다. 뮌처와 이 세 사람과의 관계는 뮌처가 슈튀브너에게 보낸 편지(1521년 6월 15일)에서 어느 정도 나타난다. 뮌처는 이 그룹의 지배자는 아니었다. 뮌처가 이 그룹에게서 받은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재)세례에 대한 개념일 것이다. 세례에 대한 뮌처의 생각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1524년의 작품에서이다.
프라하 선언
츠비카우를 떠난 뮌처는 프라하로 가서 얼마 후 그의 초기 사상을 알리는 중요한 글을 남긴다. 이것이 유명한 프라하 . 선언서이다. 먼저 전문에 가까운 인용문을 읽어보자.
“나, 슈톨베르크 출생의 토마스 뮌처는 온 교회와 온 세상 앞에서, 이 편지가 발견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내가 거룩하고 불굴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보다 나은 가르침을 추구함에 있어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모든 열심을 다 보였음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청년시절부터 나를 알아온 모든 선민들과 함께 증거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내 생애의 어떤 시기에도(하나님께서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아시거니와), 나는 어느 수도사나 사제로부터도 신앙의 참된 실천에 대해서나, 선민이 성령의 7가지 열매를 가질 필요를 보이면서 하나님 경외의 정신으로 신앙을 분명히 하는 시련의 교화적 시기에 대해서도 전혀 배운바 없다. 나는 어느 학자로부터도 만물 가운데 심겨진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서 단 한마디 말도 배운바 없다. 한편 전체를 모든 부분의 통일체로 이해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는 자들은 이점에 대해 눈곱만큼도 파악하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저주받을 사제들이 가장 그랬다. 나는 그들로부터, 그들이 살인자와 도적처럼 성경(Bible)에서 도적질해 빼돌린 오직 경mere Scripture만을 들었을 뿐이다. 예레미야는 23장에서 이러한 도적질은 그들 자신이 말씀을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마치 이웃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훔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내 생각에 이들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마귀가 성별한 실로 교활한 설교꾼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기독교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 참을 수 없고 해악스러운 해독이 나로 하여금 열심히 초대 교부들의 역사를 읽도록 이끌어 갔다. 나는 사도들의 제자들이 죽은 뒤, 순결한 처녀 교회가 성직자의
간음으로 창녀가 되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헤게시푸스가 쓰고 있고, 뒤에 에오세비오스(4권 22장)가 쓰고 있듯이, 언제나 꼭대기에 앉고 싶어하는 학자들의 오류였다. 나는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믿는 신앙에 대해서 온전히 살아있는 명령의 어투로 확신케 하는 설명을 한 어떤 종교회의도 발견치 못한다. 어린애들의 장난밖엔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느슨한 고삐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으로, 그래야 그들의 모든 행한 일들이 드러나게 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가 설교꾼들과 원숭이들로 이뤄지는 일이 결코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택함 받은 친구들은, 바울이 가르치는 대로, 예언을 또한 배워서 하나님이 모든 그의 선민들과 대화하시는 우애롭고 친밀한 길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내 생명을 기꺼이 바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자들과 더불어 특히 이 고장에서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교회가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고, 이 백성은 전 세계를 위한 거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도록 각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바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엘리야의 정신으로 바알 우상에게 제사하도록 그대들을 가르쳐온 자들이 누구인지 지적하게 해달라. 만일 그대들이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내년에 터키인들을 시켜 그대들을 진멸하시리라.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 실로 그대로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 나는 이 일로 인해 예레미야가 당해야 했던 고통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보헤미아인 들이여 명심하라. 베드로의 가르치심대로, 그대들을 신앙의 계산을 하도록 명하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나도 그대들에게 내 신앙의 셈을 치를 것이다. 만일 내가 그토록 담대히 자랑하는 이 지식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면 나는 일시적이며 또한 영원한 죽음의 자식이 되리라. 내게는 이 이상의 담보가 없다. 이 담보로 나는 그대들을 그리스도께 부탁한다.
1521년 만성절에, 프라하에서.
이 선언서는 3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신학적 체계의 서식화, 역사 개념에 근거한 현실 비판, 마지막 예언. 좀 더 깊게 보면, 새로운 선민의 사도적인인 교회를 세움으로서 전 교회를 갱신하려는 이상, 기존 교회제도와 공허한 신학 이론에 대한 비판, 객관적 권위보다 내적 권위 강조, 보헤미아 민족주의에 대한 부채질, 예언적 신앙이 발견된다(그리취E. W. Gritsch). 신학적으로는 종교개혁에 가까운 표현들이 들어 있다. 믿음 있는 선민,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성경, 성령의 역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Imitatio Christi) 등이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루터의 개혁적 발견과 비교할 때 의미상 거리가 있다. 다음으로 현실 비판적 표현들을 보면, 도적과 도적질, 교활한 설교꾼, 원숭이 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로마교회뿐만이 아니라 루터교회를 포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말 사상이다. 묵시론적인 역사 관점에서 선민과 악인의 구별. 역사에 대한 개념 차이가 뚜렷한데 (특히 루터와 관련해서), 그러나 이때만 해도 비폭력을 견지한 듯하다.
알쉬테트의 목사
뮌처가 프라하에서 쫓겨나 알쉬테트에 온 것은 1523년 봄이다. 이 시기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나온 시기이다. 그것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거짓신앙에 대하여>라는 작품에서 뮌처는 주로 <프라하 선언서>의 내용을 반복 확인한다. 다음으로 <주장 또는 논증>에서 뮌처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참 세례에 대해서 말하기를 “물은 하나님의 영으로 향한 우리 영의 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뮌처는 여기서 유아세례와 성인세례의 대립관계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문제는 외적 세례와 내적 세례와의 대립이었다. 내적 세례의 원인인 신앙은 그리스도를 닮는 고통에 기초한 길고 험한 성장의 열매이다. 뒤에 콘라드그레벨이 이 영향을 받아 1524년 취리히에서 이 이론을 실천으로 옮김으로 “재세례파”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이 시기에 뮌처는 예배의식을 개혁하는 작품들을 남기는데, 독일어 예배의 식서와 독일어 복음주의 미사 등 주로 실제적 작품들이다. 또한 뮌처는 군주들에게 주는 설교를 작성한다. 그의 예배의식의 개혁이 만스펠트Ernst Mansfeld 백작을 자극하여 반발케 했고, 결국 권력의 위협 앞에 서자 뮌처는 1523년 9월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을 통해 군주와 세속 권력의 진정한 의미를 말했다. 1524년 3월 24일 말러바흐Mallerbach 예배당의 성모상이 불 탄 데 대해 뮌처가 책임이 있다고 고소되자, 이 사건이 자신의 영향 때문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뮌처는 일련의 위협 앞에서 “선택된 자들의 동맹”의 형성으로 맞섰다. 그는 1524년 7월 13일 작센의 요하네스 공작 앞에서 (이 사람에게 루터도 <세속 권력에 대해>라는 책을 헌정한 바 있음) 다니엘서 2장을 주해하는 설교를 했다. 그는 여기서 “급진적이고 불굴의 개혁!”을 외쳤다.
군주에게 행한 토마스 뮌처의 설교(다니엘 2장 주석)
첫째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 중 앞에서 언급한 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해석하고, 거기에 근거하여 전체의 설교를 본문과 조화시켜서 말하고자 합니다.
만일 근면하고 동요함이 없는 하나님의 종들이 매일 성경을 가지고, 찬송하고, 읽고, 설교하지 않는다면, 빈약하고 병들어 붕괴하고 있는 기독교 세계는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매일 성경을 갖고 읽고 설교한다면, 욕심을 한껏 채워 왔던 많은 우두머리 사제들은 계속하여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소행들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해 이사야서(5:1-23)와 시편 80편(9-1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기독교 세계가 굶주린 늑대들에 의해 이처럼 비참하게 황폐화될 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다루어야 할까요? 성 바울은 우리가 신령한 찬송을 부르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엡 5:19).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의 시대와 똑같이, 하나님의 선민들로 이루어진 회중은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도우실 수 없을 정도로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바와 같이(사 29:17-24, 렘 15:11, 겔 36:8-12, 시 89:31-38),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다시 한 번 인정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이교도들의 포로가 되는 처벌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부들의 시대와 우리 자신들의 시대에도 기독교 세계는 훨씬 더 완악하여 마귀와 마귀의 종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이름으로 자신들을 꾸미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눅 21:5, 딤후 3:5, 고후 11:13-15). 이 때문에, 마태가 분명하게 지적하는 바와 같이(마 24:24) 하나님의 참된 종들까지도 오도되어, 가장 강한 열심과 근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간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경한 대적들의 거짓된 거룩함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면죄가 이루는 길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류를 막기 위해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수정되어 오류를 떠나야 합니다. 진실로 참된 교회는 무지로 말미암는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레 4:13 이하; 호 4:6; 말 2:1-7; 사 1:10-17).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도들, 그리고 그리스도 이전의 거룩한 선지자들은 깨끗한 밀알을 밭에 뿌리면서 참으로 깨끗한 기독교 신앙을 시작했습니다. 즉 마태(12:24-30), 마가(4:26-29), 누가(8:5-15), 그리고 에스겔(36:29)이 기록한 바와 같이, 그들은 선택된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교회에 속한 게으르고 태만한 목회자들은 이 일을 완성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부지런히 돌봄으로 이 일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구했습니다(빌 2:4, 21). 이런 이유로 그들은 유해한 불경건, 즉 잡초가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시 80:9-14). 왜냐하면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모퉁이 돌(단 2:34 이하와 44절 이하)은 아직 작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도 이 모퉁이 돌에 대해 말했습니다(28:16). 분명히 아직 그 돌은 온 세계에 가득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 돌은 온 세계에 가득해질 것이고 온 세계를 충만하게, 매우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기독교가 시작될 때, 그 모퉁이 돌은 건축자들, 즉 관원들에 의해 버림을 받았습니다(시 118:22 이하, 눅 20:17b).
그러므로 나는 교회가 그 시초부터 현재 “분열된”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부서짐을 당해 왔다고 말합니다(눅 21:10; 단 2:35; 에스드라1서 4:45). 헤게시푸스, 그리고 에오세비오스는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 IV, 22에서 초대 기독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사도들의 제자들에 사망했을 때 기독교 회중은 이미 더 이상 처녀가 아니라 간음한 여인이 되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미 사도들에 의해 예언되었습니다(벧후 2:12-15). 그리고 사도행전(20:28-31)에서 성 바울은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명백한 말로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같은 내용이 사도 유다의 서신에서도 발견됩니다(4-19). 요한계시록도 같은 사실을 지적합니다(16:13). 그러므로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마 7:15). 나는 하나님 앞에서 슬픔을 가지고 말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성령이 악하게, 그리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기록된 바와 같이(롬 8:9, 눅 12:8, 요 6:63, 17:2 이하) 바로 그 성령께서 구원을 확인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의 위대한 인간들의 명성들과는 대조적으로 새들을 놀라게 하는 허수아비나 색칠한 인형처럼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불경한 세력을 존속시키면서 우리가, 더러운 벌레와 같은 우리가 어떻게 이 구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이 돌이십니다[단 2:45]. 즉 산에서 바다로 던지어질 그 돌(시 46:2 이하), 이 세상의 호화스러운 사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던지어질 그 돌입니다. 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큰 산에서 깎이어진 바위이시니,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고전 10: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확하게 옥타비아누스 시대에 노예 제도가 가장 심했던 때(눅 1:52, 2:1-3), 온 세상에 무거운 세금이 과해졌던 때 탄생하셨습니다. 그 때에 성령 안에서 볼 때 무능한 자, 더러운 오물통과 같은 자가 온 세상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온 세계는 헛된 영광과 오만 외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옥타비아누스는 오직 자신만이 위대한 자라고 상상했습니다.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얼마나 작게 보였는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처럼(시 22:6)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오늘날도 노상 그렇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시 118:22, 마 21:44-46, 막 12:10-12, 눅 20:17-19).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계속 재현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후 사도들의 제자들은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시편 69편(11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적과 살인자들처럼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를 훔쳤습니다(요 10:1). 그들은 그리스도의 양들에게서 진정한 음성을 도적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환상적인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순수한 작품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장소에 극히 하찮은 금으로 만든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분명하게 말한 바와 같이(4:8-10) 그리고 예레미야가 애가에서 말한 바와 같이(4:5), 어리석은 자들은 그 우상 앞에서 읍소를 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음식을 먹었던 자들은 음식을 먹던 장소에 오물을 받아 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 즉 극악무도한 미사, 미신적인 설교와 의식들로 자신이 크게 조롱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멸망의 가증한 것에 화있을지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항상 미사에는 헛된 나무 우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신적인 목석같은 사제, 그리고 하나님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추잡하고 상스럽고 야비한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닙니까? 죄악이 아닙니까? 수치가 아닙니까? 나는 배의 짐승들과(빌 3:19) 돼지(이 돼지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7:6과 베드로후서 2:2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가 보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컷 발로 짓밟아 왔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위해 구두를 닦는 넝마 조각과 같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터키인들, 이교도들, 그리고 유대인들은 우리를 야비하게 조롱해 왔고 우리를 어리석은 자로 여겨 왔습니다. 이는 (참되신) 성령께서 믿음에 대해 하신 말씀을 듣지 않는 지각없는 자가 믿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은 69:2의 말씀처럼, 갈보리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무뢰한의 행동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이 더러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하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요 6장; 마 23장).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큰 능력이 저와 같은 말할 수 없는 악을 처벌하고 없이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그 능력이 하나님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지식입니다(잠 9:10).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깨끗하고 거짓이 없는 경외로부터 솟아납니다. 그리고 기록된 바와 같이(잠 5:12, 요 2:17, 시 69:9) 바로 이 지식만이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열심을 가지고 보복할 수 있는 강한 손으로 우리를 무장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또는 이성적인 수단으로 하나님의 대적들이 변명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불경의 외모는 황금색 밀 이삭들 중의 아편처럼 매우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을 현혹합니다(전 8:10).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이 속임을 분별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돌을 멸시하는 가증스러운 행위를 자세히 고찰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깨닫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생한) 계시를 매일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한 계시는 이 악한 세상에 얼마나 귀하고 또 희구한 것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흠잡기를 좋아하는 약삭빠른 자들의 교활한 책략들이 매 순간 우리를 압도하고 있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순전한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잠 4:16-19, 시 37:12-15, 32 이하).
하나님의 순전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위험을 피할 것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경외가 우리에게 확실하다면, 기독교 세계는 신성한 뜻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쉽게 다시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함축된 모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시 145:18 이하, 시 111:5-10, 잠 1:7).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은 어떤 인간이나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순수해야 합니다(시 19:10, 사 66:2, 눅 12:4 이하). 경외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마 6:24),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을 함께 경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모친이 말한 대로[눅 1:5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없습니다(말 1:6):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사랑하는 영주들이여,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태초부터 성경에 묘사한 것처럼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가장 큰 열심을 기울여야 합니다(딤전 4장). 왜냐하면 이 시대가 위험하고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딤후 3:1, 엡 5:15 이하).
왜입니까? 이는 미가가 말한 대로(3:5-37) 순전히 하나님의 숭고한 능력이 능욕과 굴욕을 당함으로 가난한 평민들이 불경한 신학자들에 의해 모든 시시하고 장황한 말로 호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재 거의 예외 없이 권세를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신학자들의 특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께서 사랑하시는 벗들에게 더 이상 유효한 환상이나 들을 수 있는 말씀 등으로 자신의 신령한 비밀을 계시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서투른 방법에 집착하고 (참조. 집회서 34:9), 불경한 자들이 예루살렘에 대해 했던 것처럼 계시를 소유하고 순회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림의 표적으로 삼습니다(20:7 이하): 아하! 하나님이 최근에 너에게 말하더냐? 아니면 최근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여 충고를 받았더냐? 네가 그리스도의 영을 갖고 있더냐? 그들은 이렇게 멸시와 조롱을 합니다.
예레미야의 때에 일어났던 일이 이것이 아닙니까? (경건한 롯이 사위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19:14)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눈먼 백성들에게 바빌론 포로라는 임박한 처벌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말은 매우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 경건한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러냐? 과연 하나님이 그러한 아버지 같은 방식으로 인간들을 경고하기도 하는구나! 그 후에 바빌론 유형 때에 이 조소하는 무리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실상 그들은 이교도의 왕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수치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본문 다니엘 2:47을 상고해 봅시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선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에 굶주린 폭군이었으며, 하나님께 범죄한 선민들에게 있어서 회초리였습니다. 그러나 성 바울(롬 11:25)과 에스겔(23:22-35)이 말한 대로, 이 백성의 맹목과 강퍅함 중에서도 지존자의 선하심은 세상에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을 교훈하기 위해 나는 전능자 하나님께서 이교도 왕에게 단지 미래에 있을 일들만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어떤 선지자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목이 곧은 자들을 말할 수 없이 수치스럽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증거 없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하나님의 임박한 처벌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럴 때에 전능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시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심을 우리에게서 거두셔야 하십니다. 계속하여 본문을 봅시다(단 2:1-13):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꿈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의 꿈을 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참으로 희한하고, 불쾌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기록된 바와 같이(신 13:2-4, 집회서 34:7) 온 세상이 애초부터 꿈을 해석하는 자들에 의해 속임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본 장(2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교활한 점쟁이들이나 해몽가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5절 이하): 나의 꿈을 나에게 말하고 나서 해석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나에게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왕에게 꿈을 말할 수 없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땅에 있는 인간들과 교제하지 않는 신들 외에는 왕께 그 꿈을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나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은 이해에 따라 제한적이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 궁전에서 고급 음식 한 조각을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우리 시대의 박식한 신학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불경한 위선자들이며 아첨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말씀은(5:13, 31과 8:8이하) 그들을 비난합니다. 다니엘의 본문은 하늘의 교제를 갖는 자들이 있어야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점을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입니다(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현명한 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즉각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월권행위를 공공연하게 행하는 불한당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들에 대해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58:2): 그들이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는 나라와 같다. 이와 같은 박식한 신학자들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하고 성령의 작품에 대해 성령을 비난하는 점쟁이들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데, 그들의 미숙한 깨달음에 따르지 않는 바는 반드시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땅히 구해야 하는(롬 8장) 자신들의 구원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에 대해 쓸데없는 말을 재잘거리고 혼돈된 양심을 갖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술 취한 믿음을 조제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서투른 판단과 가증스러운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판단과 혐오스러운 행위는 바로 그들이 수도사들의 극히 가증스럽고 유해한 언행들을 비열하고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뮌처는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훈련의 신비주의적이고 극단적인 행태를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자들을 통해 마귀는 자신의 모든 목적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선민들이 성령이나 내적인 말씀(inner Word)으로부터 오는 아무런 교훈도 없이 광적인 신앙으로 환상과 꿈을 곧바로 따를 때, 마귀는 박식한 신학자이자 점쟁이들인 자들을 통해 많은 경건한 선민들을 사악하게 속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말과 마귀의 힘을 빌린 사술은 마귀의 계시에 따라 기록됩니다. 성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여기에 대해 강력하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가증스러운 수도원의 황홀경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를 행하면서 그들은 강퍅하여져서 불순한 마음이 되고 나태한 부랑자들처럼 많은 죄와 수치 외에는 온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 그릇된 신앙보다 그들은 호도해 온 것이 없으며, 오늘날도 그들은 호도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시는 분이신 성령의 임재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그들은 (그들의 신령한 지혜에 대한 멸시 가운데) 선의 모습으로 위장한 악을 선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외치십니다(5:2):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러므로 악한 것들을 가지고 선한 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경건한 사람들의 습관이 아니다. 성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살전 5:20-22). (살전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택된 자들에 대해 완전히 선한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에, 만일 매우 작은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들을 경계하실 수 있다면(신 1:42-44; 32:29; 마 23:37), 그들이 큰 불신 중에서 경계를 받아야 할 때, 분명히 경계를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본문인 다니엘서는 여기에서 고린도전서(2:7 이하)에서 하는 바울의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의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이사야서(64장)에서 취한 것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막연한 믿음이 아니라—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냐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냐 또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동일한 것(하나님에게서 오는 것과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우리의 선천적인 이해가 믿음의 섬김을 위해 획득되어야 한다면(고후 10:5), 로마서(1:18-22)와 바룩(3:12-37)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 그 이해는 판단력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이 판단들로 사람은 선한 양심이 무엇인가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머리로 천국을 갈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먼저 완전히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것입니다(사 29:13 이하; 33:18; 욥 1:8; 고전 1:18). 이럴 때에 교활하고, 육적이고 감각적인 세상을 위한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즉각 이어집니다(시 48:6; 요 16:21).
그러므로 다니엘(2:17 이하)과, 그리고 그와 같은 길을 가는 모든 경건한 사람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로서 오는 모든 것을 자세히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현자(전도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의미입니다(전 3:11): “하나님의 위엄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광휘에 압도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편 139:6이 명확하게 나타내는 바와 같이, 자연인이 (하나님을 잡으려고) 하나님을 더듬어 찾으면 찾을수록 성령의 역사는 그에게서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연적인 이성의 빛의 어림짐작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다면, 필시 그는 한 두 조각의 성경 구절을 가지고 박식하다고 하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사 28:10; 렘 8:8) 좀도둑질한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즉흥적인 도움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신령한 말씀이 자신의 심령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요 4:14).
그렇습니다. 그는 오늘날 박식하다고 하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우물물을 고여 있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렘 2:13). 오늘날 박식하다고 하는 자들은 자연과 은혜를 아무 구별 없이 뒤섞고 있습니다. 저들은 말씀의 진전을 방해합니다(시 119:11b). 이 말씀은 모세가 말한 바와 같이(신 30:14—이 말씀이 너와 멀지 않으니 보라, 이 말씀이 네 마음에 있은즉…)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말씀이 어떻게 마음속으로 들어오는가라고 질문할지 모릅니다. 답변을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숭고하고 두려운 경악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 하는 이 경악은 민수기 19장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어린이가 6, 7세 때에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 바울은 로마서 10:8과 20절에서 모세(신 30:14)와 이사야(65:1)를 인용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지는 내적인 말씀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증거를 통하지 아니하면 사람은 이 말씀을 깨달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롬 8:9). 성령이 없는 사람은 비록 백 권의 성경을 삼킬지라도 하나님에 대해 깊은 말을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말씀으로 모든 사람은 세상이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먼지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제 말씀에 대해 깨닫고 기꺼이 받아 들였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에게서 육체의 정욕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활동이 그의 마음에 임하심으로 그가 육체의 모든 욕망들을 근절하기 원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역사의 유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순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혼 속에서 하시는 말씀을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그런 사람은 율법의 명백하고 순전한 의미를 심각하게 숙고하도록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시 19:7 이하).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마음의 눈이 멀어 스스로 목석같은 그리스도를 만들고 스스로를 오도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환상을 해석해 주는 일이 얼마나 하기 싫은 일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심을 얻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분산시키는 모든 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고(고후 6:17) 진리를 위한 불굴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진리의 실행을 통하여 확실한 환상과 거짓 환상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다니엘은 10:1에서 (다니엘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확실한 환상들을 깨달을 수 있고 분명한 환상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선민이 환상 또는 꿈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또는 인간의 본성에서 온 것이지, 아니면 마귀에게서 온 것인지 알고자 할 때, 그는 정신과 마음, 그리고 또한 자신의 천부적 이해력을 동원하여 육체의 모든 속세적인 위안들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집트의 요셉에서와 같이(창 39장), 그리고 본 장에 나오는 다니엘과 같이 이 일이 반드시 그 사람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육욕적인 사람은 말씀을 받아 드리지 못합니다(눅 7:25). 왜냐하면 엉겅퀴와 가시나무가—이런 것들은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세상의 쾌락들입니다(막 4:18 이하)—하나님께서 영혼 가운데에서 하시는 말씀의 모든 활동을 막기 때문입니다[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혼 가운데에서 이미 거룩한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실행을 하지 않으면 그는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시49:20).
그는 돌이키지도 않고 스스로와 자신의 영혼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바울과 거룩한 사도들이 가르치는 대로(갈 5:24) 악덕과 정욕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밭은 여전히 엉겅퀴와 가시나무가 우거져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 모든 엉겅퀴와 가시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잠 24:3).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밭에 열매가 풍성히 열리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는 자신이 평생 동안 하나님과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실로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증거하기 위한 한 가지 목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시 93편과 119:95). 처음에 그는 이 사실을 부분적으로, 비유적으로 깨닫지만, 결국 나중에는 심령 깊은 곳에서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0-12). 두 번째로, 우리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현상들을 수반하는 환상이나 꿈들의 비유적인 비교가 성경으로 검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도자가 향 기름으로 죽은 파리에 대해 말한 것처럼(전 10:1), 마귀가 끼어들어 성령의 향기로운 기름을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선민은 그 환상의 역사가 인간의 즉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오로지 하나님의 확고한 뜻에서 나온 것인지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핀 바를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해야 그 환상이 건설적으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마귀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할 때, 마귀의 부패하고 더러운 기질이 드러나게 되고, 아무리 애써도 결국 그의 거짓은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요 8:44). 이 점은 본 장에서 느부갓네살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나며, 제3장에 나오는 사실들에 의해 증거 됩니다. 즉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경고를 금방 망각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 이유는 욕심과 짐승 같은 일들을 향한 느부갓네살의 육체의 정욕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계속하여 큰 쾌락을 얻기 원하고, 하나님의 일을 다루면서 고난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때, 반드시 언제나 이와 같이 됩니다. 이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은 그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창 15:1-6; 17:1-3) 대개 사랑하시는 사림들이 가장 깊은 환난 중에 있을 때 효과적인 환상과 꿈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야곱이 큰 어려움 중에 형 에서에게서 도망치고 있을 때, 환상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는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았습니다(창 28:12). 그 후,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도, 형 에서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야곱과 씨름을 하고 그의 환도 뼈를 치셨습니다(창 32:25 이하). 또한 경건한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련 중에 그는 특별한 환상을 받았습니다(창 37:5-11). 그리고 그 후, 그는 이집트의 감옥 속에서 심한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나님께 큰 조명을 받음으로 모든 환상과 꿈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 39:20; 40:41).
이 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경건한 요셉(마 1:20-23; 2:13 이하)은 스스로 명석하다고 생각하는 영적으로 무식하고 육욕적인 비열한 자인 헤롯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번민하는 중에 꿈들을 꾸었고 그 꿈들로 말미암아 안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잠을 자는 중에 천사에게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마 2:12). 또한 사도들도 사도행전에 명확하게 기록된 바와 같이 환상의 의미들을 부지런히 살폈습니다. 환상들에 유념하고 고통스러운 시련 중에 환상을 받는 것은 진실로 사도와 족장들과 선지자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살찐 돼지와 나약한 생활이 환상을 부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욥 28:12).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영혼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다면, 그는 사도행전에서 성 베드로가 율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레 11장) 환상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는 음식의 의식적 정결과 이교도와 식탁 교제를 갖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습니다(행 10:10 이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큰 감동을 주는 환상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환상에서 베드로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들로 가득한 보자기가 네 귀가 메어 하늘로부터 땅에 내어 드리우는 환상을 보았고 “잡아먹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경건한 고넬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를 모르고 있을 때 환상을 보았습니다(행 10:1 이하). 그리고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한 명이 서서 그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청하는 환상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본 다음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행 16:8 이하). 왜냐하면 바울은 주님께서 마케도니아에서 자신들을 부르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를 하기를 두려워할 때(행 18:9 이하), 밤에 주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증거를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아론이 모세의 말을 듣고(출 4:15) 다윗이 나단과 갓의 말을 들었던 것처럼(대하 29:25), 설교자들과 공작들과 제후들이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살고 있지 않으면서 모든 면에 안전하고 무흠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도행전의 구절(12:7-9)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동일한 이유로 사도들은 환상에 매우 익숙하였습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헤롯의 감옥에서 끌어낼 때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천사가 자신의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환상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환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 사실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추론을 합니다: 즉 자신의 육신적인 판단에 따라 아무런 경험도 없이 환상과 꿈을 완전히 적대하고 부인하고 싶어 하는 자들과 (거짓 꿈 해석자들이 자신의 명성과 쾌락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큰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무조건 환상과 꿈을 무시하고 싶어 하는 자들은 (어느 극단주의에 속한 자들일지라도) 서투른 일을 하는 자들이며 이 말세에(욜 2:28) 성령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서의 이 본문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종말론적) 변화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바르게 칭송 받기 위해 말세에 세상을 준비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수치를 제하시고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우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환상과 꿈을 볼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계가 요엘서에서 예상된 식으로 사도적인(행 2:16 이하)이 될 수 없다면, 도대체 전도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선택을 받은 많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수반하는 중대하고 불가피하고 급박한 개혁을 계시하시고 계신다는 것은 사실이고 또한 나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개혁은 완성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할 수 있으면 항변해 보십시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말하는 것처럼(3:3) 비록 아무도 믿지 않을지라도 다니엘의 예언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서의 이 구절은 해처럼 명확하고 세상의 더러운 왕조의 몰락 과정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나라는 금 머리 기둥으로 제시됩니다. 이 나라는 바빌론이었습니다. 두 번째 나라는 은 가슴과 팔로 제시됩니다. 이 나라는 메데와 바사입니다. 세 번째 나라는 그리스입니다. 과학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는 (소리나는) 구리 또는 놋으로 상징됩니다. 네 번째 나라는 칼과 강압 정치로 이룩된 로마 제국입니다. 그 다음의 (철과 진흙의 발로 상징되는) 다섯 번째 나라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이 나라도 철로 이루어졌고 강압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분별 있는 눈으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이 나라는 진창으로 뒤범벅입니다. 즉 헛되고 가식적인 위선의 계략들이 온 세상을 뒤덮어 휘젓고 있습니다. 이 계략들을 간파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바보입니다. 우리는 뱀장어와 독사들이 떼를 이루어 자신들을 오염에 내동댕이치는 것을 봅니다. 사제들과 모든 악한 성직자들은 세례 요한이 칭한 바와 같이 독사들입니다(마 3:7). 그리고 세속적인 군주들은 레위기(11:10-12)에 물고기 등에 의해 비유적으로 상징되는 뱀장어들입니다.
마귀의 나라들은 스스로를 진흙으로 더럽혀 왔습니다. 사랑하는 제후들이여, 주님께서 철장으로 낡은 질그릇을 얼마나 멋있게 부술지 아십니까(시 2:9)? 그러므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영주 여러분은 여러분의 판단이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의 교구 사제들에 의해 그릇된 인도를 받지 말고, 그릇된 사고나 방종에 의해 방해받지 마십시오. 다섯 번째 나라를 깨뜨릴(단 2:34)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산에서 뜨인 돌이 커졌습니다. 여러 지방들의 평신도들과 농부들이 이 돌을 여러분들보다 더 분명하게 봅니다. 하나님이시여,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이 돌은 이미 커졌습니다. 만일 다른 이웃의 군주들이 복음으로 인해 여러분을 핍박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백성들에 의해 축출될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돌은 거대합니다! 그 돌 앞에서 멍청한 세상은 오랫동안 두려워해 왔습니다. 이 돌은 아직 조그마했을 때 세상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돌이 이처럼 크고 강하여 졌고 이처럼 강력하게 큰 우상을 쳐서 낡은 질그릇같이 분쇄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존경받는 색소니의 영주들이여, 성 베드로가 그러했던 것처럼(마 16:18) 담대하게 이 모퉁이 돌을 밟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전달된 궁극적 구원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러분을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시 40:2). 여러분의 길은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당장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용기 있게 복음의 목적을 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지 못할 정도로 여러분과 매우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인간의 망령 앞에서 떨고자 합니까(시 118:6)? 우리의 본문을 잘 보십시오(단 2:13). 느부갓네살 왕은 술객들이 자신의 꿈을 해석하지 못함으로 그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땅한 응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교활함으로 그 나라 전체를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위치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고위 성직자들이 바로 이러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들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만일 기독교계에 끼쳐지고 있는 해악을 명확하게 인지한다면 여러분은 예후 왕과 똑 같은 열심을 얻으려고 할 것이고(왕하 9, 10장),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선포되는 바와 똑 같은 선포를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칼의 권세를 행사하기를 크게 자제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거룩한 기독교계의 부패는 너무 심하여 이제 어떤 혀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다니엘이 일어나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환상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선지자는 다니엘이 가르치는 것처럼(단 20:2) 군대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는 군주들과 격한 백성의 분노를 화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이 기독교계의 부패와 그릇된 고위 성직자들과 패덕한 타락자들의 기만을 바로 경험하여 안다면, 여러분은 그들에 대해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격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장 달콤한 말로 여러분을 모든 확고한 진리에 반하여 가장 수치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큼 오도했음에도(잠 6:1 이하)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들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대해 왔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정곡을 찌를 것이고 여러분을 격노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영주들은 그들의 직분에 대해서는 이교도라고 성인들을 두고 단언합니다. 영주들은 국가의 일치단결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큰 돌이 떨어져 이 단순한 이성의 계략들을 완전히 쳐부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마 10:34). 그러나 동시에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할까요? 복음을 방해하는 악한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일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즉 바울이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바와 같이(롬 13:4), 만일 여러분이 마귀의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그들을 제거하여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박해하려고 하는 모든 대적들을 산산조각으로 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말하는 대로(59:1) 하나님의 손은 결코 짧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과 그밖에 하나님의 이름을 수호한 사람들을 도우신 것처럼 지금도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고 또한 돕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벧후 1:4) 정의롭게 행하고자 할 때 여러분은 천사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엄숙하게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들이 그리스도의 국가를 황폐하게 하고, 게다가 기독교 신앙을 가장하여 자신들의 악행을 변호하며 교활한 협잡으로 온 세상을 파멸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여러분은 마음대로 적당히 발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수많은 믿는 사람들을 실족케 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바로 이것이 제일 악한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을 괴롭게 하여, 참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런 말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마 23:3 참고)고 말합니다. 믿음이 불에서 금같이 단련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벧전 1:7; 시 140:10).
그러나 이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식탁 아래에서 떡 조각을 얻기를 바라는 개의 믿음보다 더 못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부정한 신학자들이 눈먼 세상을 속이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배를 위해서만 설교하기 때문입니다(빌 3:19). 그들은 심령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마 12:34). 이제 여러분이 진정한 통치자들이 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근본부터 통치를 다시 시작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리스도의 대적들을 선민들에게서 몰아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를 위한 도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칼을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케케묵은 농담을 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에 여러분의 칼은 칼집에서 녹이 슬어 버릴지 모릅니다. 어떤 신학자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할지라도, 하나님이시여, 나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한 말씀을 충분히 하셨습니다(마 7:19; 요 15:2, 6):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의 가면을 제거한다면, 여러분은 공의의 판단으로 세상을 인식할 것입니다(요 7:24). 하나님의 명령대로 공의의 판단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목적을 위한 충분한 도움을 소유하고 있습니다(솔로몬의 지혜서 6장).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선생님이시기 때문입니다(마 23:8).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장수하지 못하게 하십시오(신 13:5). 불경건한 자는 경건한 사람들의 길에서 살 자격이 없습니다.
출애굽기 22:18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 바울도 통치자들의 칼에 대해 경건한 자들의 보호로 악한 자들을 보응하기 위해 그들에게 칼이 주어졌다고 말하는 곳에서 이 의미를 나타냅니다(롬 13: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보호자이시고 여러분에게 자신의 적들과 싸우라고 가르치십니다(시 18:3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이 싸움에 능하게 하시고 여러분을 후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이 여러분에게 선포되어야 함으로 여러분은 큰 십자가와 시험을 견디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하나님을 위해 감행하는 위험이나 대적들의 무익한 말에 못지않은 희생을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경건한 다윗은 압살롬에 의해 성에서 쫓겨나야 했지만 압살롬이 나무에 걸려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함으로 결국 지배권을 다시 회복했습니다[삼하 18:10 이하].
그러므로 작센의 소중한 보호자들인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복음을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간적으로 진노하실 때,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아들들로서 징계하실 것입니다(참조. 신 1:31). 그 때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십시오(시 3: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의 박식한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자비를 억지로 위선 가운데 적용시켜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자비와는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우상 숭배의 근원을 뒤집어엎으시면서 나타내신 준엄하심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요 2:15-17; 시 69:9). 바울이 골로새서 3:5-7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이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회중에게서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견해대로, 그리스도께서 보다 시시한 것들을 뒤집어 엎으셨다면, 의심할 바 없이 우상들을 하나도 남겨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와 같은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신 7:5 이하):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들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이 말씀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마 5:17). 선지자들에 의해 해석되는 여러 비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말씀들은 영원히 존재해야 하는 명백하고 명확한 말씀들입니다(사 40:8). 하나님께서는 오늘은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내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불변하신 분이십니다(말 3:6; 삼상 15:10-22; 민 22장).
이방인의 사도들이 우상들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성 베드로는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갈 2:11-13). 만일 그가 이방인들과 함께 있다가 숨기려고 했다면 그는 모든 사도들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 대해 그가 죽음을 심히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5-19). 그러므로 이 두려움을 고려할 때,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화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 바울은 우상 숭배를 매우 단호하게 비난합니다. 만일 바울이 아덴 사람들 중에서 한 가르침을 결론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다면(행 17:16-31),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우상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셨던 일이고, 또한 그 후에 믿을 수 있는 역사들에서 순교자들의 행동을 통해 수없이 일어났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불경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무능과 나태를 우리는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였다면 그들은 마땅히 양자택일 중에서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즉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부인하든지 아니면 우상 숭배를 폐하든지 해야 합니다(마 18:7-9). 그런데 우리의 박식한 신학자들은 불경하고 얼버무리는 방식으로 행하면서 다니엘을 인용하여(2:34) 적그리스도는 인간의 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호수아가 기록한 대로(5:1) 선민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고 결정하였을 때 이미 가나안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적그리스도가 이미 내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칼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시편 44:5, 88과 역대하 14:11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여러분은 이 길의 결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은 칼로 그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의 삶의 수단인 것처럼 칼은 그 정복의 수단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칼은 불경한 자들을 소탕하는데 필요합니다(롬 13:4). 이 일이 질서 있고 바르게 진행되기 위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의 소중한 보호자들인 영주들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칼을 빼앗길 것입니다(단 7:26 이하). 왜냐하면 그들은 말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행위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딛 1:16).
그들(영주들)은 적들에게도 평화를 베풀어야 합니다(신 2:26-30). 그러나 만일 적들이 신령하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증거하지 않는다면(참조. 벧전 3:9, 12), 그들은 이 길에서 제거되어야 합니다(고전 5:13).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에 반대하지 않으면 나는 믿음이 깊은 다윗과 같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를 계속하면, 히스기야(왕하 18:22), 요시야(왕하 23:5), 고레스(참조 대하 36:22 이하), 다니엘(6:27), 엘리야(왕상 18:40)가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였던 것처럼, 그들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추수 때에 잡초는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뽑혀져야 합니다. 그 때에 아름다운 붉은 밀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참하게 자랄 것입니다(마 13:24-30). 반면에 이 일을 위해 낫을 예리하게 갈은 천사들은(39절) 하나님의 지혜의 진노를 실행으로 옮기는 하나님의 중대한 종들입니다(말 3:1-6).
느부갓네살은(단 2:46) 다니엘에게서 하나님의 지혜를 감지하였습니다. 그는 엄청난 진리에 압도되어 다니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3장(5절 이하)이 증거하는 것처럼 그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았습니다. 현재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와 동일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동안은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 드립니다(눅 8:13).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거나 불로 단련시키고자 하실 때(벧전 1:7),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에서 예언하신 것처럼(4:17), 그들은 가장 작은 잡초를 보고도 얼마나 성을 내는지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필시 이 작은 책에 대해 성낼 것입니다. 그들이 그처럼 화를 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같이(눅 19:27; 막 18:6), 바울과 같이(고전 5:7, 13), 그리고 불경한 지도자들, 특별히 복음을 이단이라고 헐뜯고, 동시에 자신들이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되기를 바라는 사제들과 수도사들은 죽여야 한다는 신성한 율법의 교훈과 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위선적이고 겉 치례적인 선이 평균 이상으로 몰두되고 심각하여질 때, 불경한 자들은 그 선으로 자신을 변명하며 그리스도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둥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반하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바람에 명령을 내리지 못할 때 바울의 예언이 성취됩니다(딤후 3:5). 말세에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반드시 경건의 모양은 있으면서 경건의 능력을 비난합니다. 땅에는 거짓 선보다 더 나은 형태나 위장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모퉁이에 있는 자들이 위선으로만 충만하고, 그들 중에 한 사람도 진리를 말할 수 있을 만큼 담대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르게 빛에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지도자 여러분들은—여러분이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간에—본 장의 결론(2:48 이하)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본 장의 결론이란 느부갓네살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시 58:10) 선하고 의로운 결정들을 실행하기 위해 거룩한 다니엘을 관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9-10 이하에 기록된 대로 불경건한 자들은 선민들이 그들에게 사는 것을 허락하기 원하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하나님의 벗들이여, 십자가의 대적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들은 비록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진대 왜 힘없고 방비 없는 사람들 앞에서 격분합니까(민 14:8 이하; 수 11:6)? 오직 담대하십시오! 스스로 다스리시는 분에게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돌리십시오(마 28:18).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여러분을 영원토록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결말
뮌처는 1524년 8월 7일에서 8일 사이에 뮐하우젠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직접-민중 민주주의를 실행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두 편의 주요 작품인 <누가의 증거>와 <변호와논박>을 출판한다. 뮌처는 <누가의 증거>에서 “농민들이 노동, 일, 먹고사는 것에 너무 매달릴 수밖에 없고, 결국 고리대금, 세금 등이 신앙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고 말한다. 뮌처가 처음 언급하는 이런 유물론적 표현은 그에게 있어서 이전의 십자가의 신학과 현 관심사인 사회 참여와의 대립인가? 뮌처에게서 이런 식의 대립을 보려는 학자도 있으나, 그보다는 뮌처에게 있는 하나님 나라 구현의 3단계 해방 가운데 마지막 단계로 보는 것이 옳으리라. 뮌처는 <프라하 선언서>에서 교서들에 의해 기획된 문화적 압박의 종말을 고하고, <군주에게 주는 설교>에서 군주들에 의해 제정된 정치적 압박의 종말을 말하며, 마지막으로 이 <누가의 증거>에서 영주들이 득을 보는 경제적 착취의 종말을 언급하고 있다.
1525년 1월에 쉬바벤Schwaben 남쪽에서 농민 전쟁이 시작해서 동-서-북부로 퍼져 나갔다. 뉘른베르크에 있던 뮌처는 튀링겐지방으로 돌아와 농민들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결국 프랑켄하우젠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 너희 칼 위의 피가 식지 않도록 하라”는 뮌처의 외침에도 농민들은 박살이 났고 뮌처는 체포되어 참수되고 말았다.
뮌처는 흔히 말하는 합리주의자도 유물론자도 아니다. 그는 공산주의의 선조가 아니다. 그는 묵시문학적 중세 천년왕국의 전통에 서 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인간의 소외를 종결짓고 인간 존재를 인간 너머로 구현시키려는 천년왕국론자이다. 그는 영적 혁명과 물질적 혁명의 무절제한 야망에 사로잡혔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금욕주의와 “초탈”을 그 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마치 수도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가 칼 들고 내려온 수도자와도 같다.
뮌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내면적인 시각의 변화로 그칠 수 없다. 이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들을 물리침으로써 외면적 자유에 이르러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기독교 세계는 계시를 저버렸다. 계시를 저버린 문명은 끝을 내야 한다. 그것은 개벽을 이루는 일이될 것이다. 누가 하나? 선지자가 한다. 뮌처는 다니엘로 자처했으나 승리하지 못한 선지자였다.
VI. 츠빙글리와 스위스 재세례파
츠빙글리
츠빙글리(1484-1531)는 1523년 1월 1일부터 취리히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당시 스위스에도 교회의 개혁으론 불충분하가도 여긴 비폭력 급진종교개혁자들(특히 재세례파)의 사상이 퍼져갔고, 츠빙글리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해 6월 23일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 그것을 출판했다.
이 설교는 크게 둘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개념의 상호 개념을 정리했고, 제 2부에서는 그리스도의 처신과 관련해서 주로 로마서 13장에 기초하여 세속 권세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츠빙글리의 정치, 경제, 사회사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인 이 설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변증법의 구조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상이라면 취리히와 같은 도시 문명은 현실이다. 결과는 타협인가? 타협이라기보다는 해석의 문제이다. 츠빙글리의 출발점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정의가 묘사하는 이상이 이 땅에서 문자적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산상설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불완전하나마 세속 권세에 따른 질서가 있어야 하며 이 질서는 인간 구원의 유일한 보증인 복음 설교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특히 “이자 붙는 대여” 같은 경우는 돈 문제에 있어서 저질러질 수 있는 폐습들을 최소화시키려는 바람으로 설명될 수 있다. 츠빙글리의 이 사상들은 제네바의 칼뱅에게로 이어진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적인 태도
츠빙글리는 루터보다 8주 늦은 1484년 1월 1일 빌트하우스Wildhaus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동리의 이장으로 가족은 유복했다. 울리히Ulrich(훗날 울드리히Huldrych로 바꿈)는 5살 때 삼촌에게 보내졌고 10살에는 바젤로 갔다. 1497년엔 베른에서 인문주의 강의를 듣는다. 그러나 본격적인 그의 인문주의 수업은 이듬해 비엔나 대학에 등록하면서부터다. 3년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는 바젤로 옮겨 1504년 9월 18일에 문학사, 그리고 1506년 문학 석사가 된다. 당시 바젤의 인문주의 풍토는 스위스에서 가장 뛰어났다. “스위스에서 뭐가 되고 싶은 자, 뭔가 이루고자 하는 이는 바젤로 가야한다”라는 속담이 이를 증명한다. 이 시기의 츠빙글리의
관심은 자연, 역사, 특히 민족사,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피라미드의 정상에 위치시키는 질서있는 우주 개념 등이었다.
1506년 츠빙글리는 삼촌 바르톨로매우스의 개입으로 글라루스의 신부가 되었으나 여전히 바젤의 인문주의자들과의 교제를 계속하면서 고전 연구를 계속했다. 이것이 한동안 그로 하여금 에라스무스적인 기독교 인문주의에 머무르게 하였다. 1513년과 1515년 종군신부의 자격으로 두 번 교황의 용병에 참가한 뒤로, 스위스인의 “자유”를 찬양했던 그는 용병제도를 반대하고 스위스 연방과 도덕적 가치의 투사로 나섰다. 그가 던진 질문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이렇게 가르치셨나”였다. 이때부터 그는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한쪽으로 치우고 성경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츠빙글리는 1516년 11월 1일 사역에 어려움을 느낀 글라루스를 떠나 아인지델른Einsiedeln의 본당신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글라루스에서 시작한 헬라어로 당시 막 출판된 에라스무스의 신약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시기야말로 츠빙글리가 복음으로 회심하는 최초의 단계가 아닐까? 츠빙글리의 설교 주제들이 순례 설교자들의 습관적인 주제에서 예수의 가르침(특히산상설교)에 기초한 도덕적 개혁으로 바뀌고 있었다. 츠빙글리의 근면은 널리 알려졌다. 스위스 전체에서 지적이고 학문적인 풍토를 심은 이가 그밖엔 없는 듯 했다. 그리하여 그는 1518년 12월 11일 취리히의 본당신부로 뽑혔고 1519년 그의 생일날(35세) 설교를 시작했다.
츠빙글리의 개혁의 전환점은 1520년 7월로 잡힌다. 꼭 일년전 루터와 에크와의 논쟁(라이프치히 논쟁)이래 루터 사건은 연일 보도거리였다. 츠빙글리는 루터의 글을 모았다(최소한 26편). 그런데 1520년 6월 15일 루터가 파문 경고를 받자(Exsurge Domine), 개혁에 신중을 보였다. 그는 루터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그는 <스위스인들에게 경고함>에서 전술상, 자신이 루터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루터가 쓴 대로 설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복음서 또는 바울)대로 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루터를 설교하기 위해서 루터를 기다리지 않았다.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서를 계속 설교하도록 “누가 내게 가르쳤는가? 루터가 그리 했는가? 나는 루터라는 이름을 듣기도 전에 설교를 시작했고 이 목적에서 10년전(1523)에 헬라어를 배우기 시작 했는 바, 이는 그리스도의 교리를 그 근원에서 길어내기 위함이었다. 내가 루터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루터의 이름은 내가 전적으로 성경에 매달린 지 2년 후에도 몰랐다. 그런데 교황주의자들은 악의로 그런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짓누르며 말한다. 루터가 쓴 것과 똑같이 설교하는 것으로 보아 너는 루터파임에 틀림없어. 이것에 나는 대답한다. 나는 바울이 쓴 것과 똑같이 설교하는데 어째서 같은 이유로 나를 바울파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보다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교하는데 어째서 나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 않는가”
츠빙글리의 결정적 회심은 1520년 7월 24일 미코니우스에게 쓴 편지에 암시된다. 그때까지 그가 인문주의에 따른 근원으로의 회귀를 통해 교회의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면, 이제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역사는 생각과는 다른 회전을 하고 결과는 더 나쁜 상태다. 그는 자신을 포기한다. 이제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 초기의 희망은 인간 노력의 무용성 앞에서 포기와 회의, 그리고 일종의 숙명으로 자리를 넘겨주었다. 인간은 그를 넘어서고 때로 그를 죽일 수도 있는 힘의 노리갯감임을 스스로 느낀다. 그는 자신이 선하고 자비로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는 희망도 버릴지 모른다.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에 대한 의식과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에 대한 신앙 사이에서 츠빙글리의 영혼은 깊이 건드려졌다. 이런 위기는 2-3년을 지속하다가 마침내 츠빙글리가 용서의 하나님을 발견함으로 끝을 맺는다. 1520년의 시련에서 그가 하나님의 전능과 피조물의 연약함을 느꼈다면, 이제 그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때 값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다. 결국 츠빙글리는 루터에게 있는 동일한 메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내 츠빙글리는 루터의 이신 칭의 교리를 공유한다. 이 종교개혁의 원리를!
기독교 인문주의자에서 종교개혁자가 된 츠빙글리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개혁 신학을 대변했다. 그는 1522년 사순절 기간에 쏘시지를 먹은 프로샤우어를 변호하면서 <음식 선택과 그 자유로운 사용>을 설교했으며 교회의 독신 제도가 성경적으로 부당함을 확신하고 과부와 결혼하고 사제들의 결혼 자유권을 요구했다.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취리히 사회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츠빙글이는 일종의 sola scriptura 사상이 담긴 <처음과 나중을 옹호함>을 출판하고 연이어 <67개 논제>를 작성했다. 취리히 당국은 1523년 1월 첫 신학 논쟁을 거쳐 이 논제에 의한 개혁안을 채택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라는 설교를 통해 사회 문제를 다뤘고 <미사법 비판>이란 글에서 예배의 갱신(라틴어 폐지와 제사적인 성격 부인)을 꾀했다. 나아가 제 2차 취리히 논쟁(1523년 10월)을 거쳐 성상을 공개적으로 폐기했고(1524년 6월), 이 기간에 <요약 기독교 교육>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1525년 그의 주 저서인 <참 종교와 거짓 종교의 해설>을 출판하여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를 반대해 온 한 무리의 동료들이 본격적으로 떨어져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I
-세속 당국: 하나님의 정의는 아름다우나 적용불가하다.
-재세례파: 인간의 정의(세속적 서약)는 준수 불필요하다.
-일반사람들: 하나님의 정의를 자신의 이익에 적용한다.
*하나님의 정의의 정의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은 단지 자신의 것을 사람들에게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본질상 정의요 경건이며 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리 자체인 것처럼 그는 또한 온전하고 총체적인 정의자체이다.
-인간의 정의는 법률적 명령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우리는 이것을 세속 권세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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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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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산상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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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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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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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 (황금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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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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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의 열 가지(4가지로 요약)
-용서
-탐심제거
-더주기
-선대
*이에 대비되는 불구 같은 인간의 정의 열 가지
*본문
비록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정의가 수년 동안 보다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그에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듣지만 그것을 그들의 탐욕에 적응시키기를 더 좋아한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그것 안에서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누구도, 자기를 통해서건, 하늘을 통해서건, 땅을 통해서건, 심지어 우리 자신의 머리를 두고서 맹세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누구도 이 계명을 따를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누구도 선서하기를 거부하기 위해서 그(=하나님)를 방패로 삼아선 안 된다고 여긴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들에게 적합해질 때까지 생각하기를, 누구나 자기들이 매우 정직하고 성실하게 서약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말한 것에 따라(마 5:34), 맹세해선 안 되는 까닭에, 그들이 그것(=그들이 서약한 것)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록 매우 적은 수인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가 말한 것, 곧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마 5:40)는 말씀을 듣는 즉시, 자기들에게는 취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 두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계명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들과 관련된다고 생각지도 않고 또 이웃의 옷을 취하라고 말하지 않고, 변명거리를 찾기보다는 차라리 속옷과 겉옷을 가져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성 세례 요한의 날에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에 대해 선포했던 이 설교를 종이에 적어두는 것이 필요하리라 여겼다. 이는, 잠시 후 보겠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깊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가련한 정의가 얼마나 서로 마주치며 처신하는지 보이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의 정의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은, 그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묘사한 방식대로, 하나님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각 사람에게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만약 우리가 이런 척도로 그(=하나님)를 측량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그분 없이도 어떤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유도 모두 그의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것을 우리에게 줄 의무가 없다. 요컨대, 아무것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그가 주는 모든 것이 그에게 속해있다.
아니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의롭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아무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인 바, 이는 그가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순결과 모든 경건과 모든 정의와 모든 선의 순수한 근원이라는 방식으로 의롭다. 그는 본질 상, 정의요, 경건이며 선이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어떤 경건한 것, 의로운 것, 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진실할 뿐만 아니라 진실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로(요 14:6), 그는 또한 의로울 뿐만 아니라 온전하고 총체적인 정의 자체인 바, 이것이 너무도 순수하고 맑아서 그 안에 불순함과 유혹이 스며들어 생기는 어떤 혼합물도 없을 정도이다. 이 관계 하에서 섞이는 것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한 선일진대, 정의이신 그분은 마땅히 모든 혼합물, 모든 시험, 모든 이기적인 탐욕에서 마땅히 제외되신다.
모든 혼합물에서 제외된 이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는 그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바라본다. 악한 자가 그의 악한 마음에서 나쁜 보물을 끄집어내는 것(눅 6:45)과 마찬가지로, 오직 선하신 하나님은(막 10:18) 그의 마음에서 선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내지 않으시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정의와 선함의 원초적 근원을 알게 된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정의는 그의 말씀으로 안다. 이는 다윗이 시편 11편에서 말한 바와 같다: “주의 말씀은 땅에서 순화되고 정화된, 아니 점토에서부터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말씀 가운데서 지상의 유혹의 맛을 보는 것은 아무것도 발견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의 것 이상으로 얼마나 높은지 측량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 위로 높으시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의 정의에 도달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정의의 아름다움과 순전함과 순결함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그와 가까이 있기를 바랄 때, 우리로 자기처럼 되기를 요구하신다. 한 가장이 그의 종들 가운데서 아무도 자기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을 용납치 않는 경우가 있으나, 하나님은 그래도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순전함을 가지지 못한 자와 자신이 만든 첫 사람만큼 순결하지 못한 자를 누구나 용납하신다. 그리스도는 혼인식에 초대되었으나 혼인 잔치 예복을 입지 않은 이유로 쫓겨난 사람에 대해 말씀하면서(마 22장)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인다. 사실 주님은 혼인 잔치에 가난한 자, 병든 자, 눈먼 자, 허약한 자들을 초대하도록 명했다(눅 14:21).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요구한 것처럼 깨끗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하나님)는 삼키는 불이시기에, 누구든지 불로 연단되지 않거나 그에게 거슬리는 것—그것이 어떤 것이건—을 가지고서는 그 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앞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자는, 그(=하나님) 자신이 그러하듯이, 거룩하고 경건하며 맑고 깨끗해야 한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이렇게 증거한다: “너희 중에 누가 삼키는 불 곁에 머무를 수 있으며, 너희 중에 누가 영원한 불꽃 곁에 머무를 수 있으리요?”(사 33:14).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경건히 행하는 자, 의로운 자, 진실을 말하는 자, 탈취한 이득을 멸시하는 자, 악하게 얻은 이득 앞에서 손을 흔들어 [거절]하는 자, 피 흘리는 계획을 듣지 않는 자, 악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 자. 이런 사람은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피신처가 되리라. 그에게 빵이 공급될 것이며, 그의 물은 맑고 마실 수 있으리라. 그의 눈은 그 영광중에 계신 왕을 보며 그의 광활한 땅을 볼 것이라”(사 33:15-17). 이 말씀을 통해서 이사야는 하나님 곁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자들이 어떠해야 할 지를 보이려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이 항상 죄 없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윗도 시 14편에서 이것을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그리고 답은 이렇다: “순전하게 행동하고 의로운 것을 행하…는 자”(시 15:2-5). 다윗은 거의 이사야처럼 말한다. 이것은, 비록 그가 이사야 보다 더 이전 사람이지만, 모든 것이 동일한 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들의 말속에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매우 적은 말로 이것을 말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또는 거룩하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28). 정결한 마음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마음이 정결한가? 이 땅 위에는 [그런 마음이] 없다. 사실 자신 안에서 이기적이고, 교만하지 않은 자 누구며, 모든 관계에서 흠 없는 자 누구인가? 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원하는 단순한 마음. 우리는 이것을 뒤에 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복음을 언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거룩하고 깨끗하며 의롭고 죄가 없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 오지 못함을 알았다. 사실 그(=하나님)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또는 의로우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셈이다: “나는 의롭고 깨끗하고 거룩하다. 그런즉 너희가 내게 속한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너희도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나는 여기서 “깨끗하다”는 말을 부부간의 성실성에 반대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순수하고 흠 없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 정의에 따라 측정될 경우 모든 사람은 수치에 사로잡히게 된다. 실제로, 누가 그의 마음이 시험이나 탐욕에서 면제될 정도로 거룩한가? 이처럼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존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바라는 자는 점없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무능함을 보시고, 그것을 불쌍히 여기사 그의 의가 만족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그 앞에 머무를 수 있도록 적절한 방법을 찾아 내셨다. 이를 위해 그는 그의 아들을 죄 없이 성령으로 순결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사람이 되게 하셨는 바, 이는 모든 죄의 공격에서 면제된 이 아들의 마음이—왜냐하면 그는 우리와 같이 죄 가운데서 잉태되지 않았기 때문에(시 51편)—모든 면에서 순결하시기 위함이다. 사실 그는 죄도 없었으면서 우리 불의한 죄인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그토록 아름다운 하나님의 정의—곧 그가 우리에게 획득해 준 정의, 달리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 정의—의 대가를 치르셨다. 이는 우리가 그의 너그럽고 값없는 은사 덕택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가능성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듣고 의심치 않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남아 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언제나 깨끗함 가운데서 흠 없이, 정의 가운데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너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합당한 정도로 순수하기란 심지어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유일하고 의로우며 완전무결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그리스도)는 유일하게 우리 죄를 영원히 갚으신 우리의 변호인이기 때문이다(요일 2:1). 복음은 여기 우리의 죄와 우리의 무능 앞에 직면해 있다. 이것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보다 상세하게 보기를 원하면, 우리가 최근에 주해와 더불어 출판한 첫 명제들을 읽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그토록 큰 순결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의 말씀을 통해 배우는 바, 이것은 시험이나 탐욕을 거쳐 도달되지 않는 그런 순결이다. 그는, 한편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볼구하고 이 순결을 요구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 덕택이다. 이 구원은,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우리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뒤—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한 그런 구원이다. 항상 배척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연민은 언제나 보다 크고 보다 소중하다. 믿는 자여, 너는 이것을 명심하고 결코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것의 담보이다. 설사 네가 하나님이 너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으로 인해 절망하게 된다 하더라도—왜냐하면 네가 의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우리의 고통과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 대가를 지불하여 속죄하신 이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아라. 너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배우되, 그것이 그의 말씀에 표현된 대로 하나님이 최고의 선이심을 배워라.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 안에서 그가 우리에게 규정해 주는 경건을 발견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행동은 그가 우리를 향해 행하는 봉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존재 명령을 내리시는 바로 그분이다. 그는, 탁월한 법을 선포하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 폭군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비난하는 방식으로(눅 11:46), 너는, 점점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그리스도의 기준에 따라 완성된 인간이 되도록(엡 4:13), 모든 사람과 싸워야 한다. 너 자신에게 결코 만족하지 말고, 너의 신뢰를 하나님께 두되,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네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라. 그때 너는 너의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못함을 깨달을 것이고, 하나님이 너를 위해 행하시는 모든 것이 너의 공로에서가 아니라, 그의 값없는 은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리라.
다음으로 정의의 이름에 유일하게 합당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서술해 보자. 하나님의 정의는 그 자체가 너무도 맑고 아름다워서, 그것은 우리를 그것과 같이 되도록 초대한다.
1.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 용서를 너무도 풍요롭게 완성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용서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 안에는 용서의 필요가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정작 우리야말로 유일하게 그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쪽에서의 어떤 공로도 없이 넘치게 우리를 용서한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그의 정당한 처벌을 받아 마땅할 때, 그는 우리를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롬 5:6-10).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실 뿐만 아니라, 결코 화내지 말라고 명하신다(마 5:22). 그도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신다. 성경에 진노하는 것과 관련되는 구절은 그의 의로운 처벌 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우리가 법적 소송에 들어가지 말며 다투지 말고, 오히려 누가 우리의 속옷을 취하려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요구하신다(마 5:40; 눅 6:29). 이것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를 재판정 앞으로 데려가, 법에 호소함이 없이 죽이도록 내버려두셨기 때문이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과 부합한다: “그는 어린양처럼 죽음에 끌려갔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사 53:7). 그리고 “그는 외치지도 아니하며 다투지도 않으리라”(사 42:2; 마 12:19).
4.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명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결혼한 여인도 탐하지 말라고 명하신다(마 5:28). 하나님 자신이 이 계명을 지키신다. 왜냐하면 그는 유혹 없이 계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의 공격에서 면제되어 있다. 하나님은 배우자보다는 차라리 부모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결합한 것을 아무도 나눠서는 안 된다(창 2:24; 마 19:5).
5. 하나님은 맹세하는 것을 금하고,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에 맹세 없이 확고하라고 명하신다. 이것은 그의 행동과 상응한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 중 하나가 이뤄지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천지가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날마다 경험한다.
6.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기를, 우리 재산을 우리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또 우리에게 갚을 수 없는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다(눅 6:35). 하나님은 자기편에서 이렇게 행동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갚을 길 없는 하늘의 새도 양육하시기 때문이다(마 6:26).
7.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로운 자들과 책망할 것 없는 자들을 선대할 뿐만 아니라, 원수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공격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4). 여기서도 그는 이처럼 행동하신다. 그는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을 비취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신다. 그는 불신자와 원수들을 먹이시되 신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열매를 주신다.
8. 하나님은 훔치지 말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명하신다(출 20: 15-17). 이는 자신이 동일하게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손해가 될 어떤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모든 것을 그에게 요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도우신다.
9.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한 말이나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뿐만 아니라 무익한 말을 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마 12:36).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은 동일하게 행하신다. 왜냐하면 그의 입에서 잘못되거나 속이거나 헛된 것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벧전 2:22). 그의 교훈은 율법사나 바리새인들의 말처럼 헛되고 무익한 말로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능력으로 되어 있다. 그가 하신 말씀의 힘은 그 말씀이 듣는 이들의 가슴에 확고히 남아 있는 식의 힘이다 (마 7:29).
10.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아무런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나, 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안전에 대비한 뒤 이웃을 도우러 가는 것에 만족치 않으신다. 그는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신다(마 22:59). 이는 역시 그가 그렇게 행하시기 때문이다(요 15:31; 마 23:8; 갈 4: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건 그의 행동으로건, 그의 요구가 견지하는 많은 관점들을 계속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의 말씀으로 인해 죽음과 멸시를 받아야 하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각 형제에게 동일하다는 것. 하지만 다른 모든 계명들은 우리가 이미 언급한 계명들 안에 포함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들은 교황파들이 말하듯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준 충고로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들로 되어 있다. 이 요구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는 것처럼, 죄없이 순수하고 의롭지 않고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뜻은 오직 그의 계명 안에서만 우리에게 알려지고, 또한 그의 계명은 그의 영원한 뜻의 계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한 복음을 기억하라. 사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스스로 마땅히 절망하고 난 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의 실행자로서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 바, 이 아들이 우리 대신 그의 계명들을 완성했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갚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확실한 담보로서, 그 덕택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러한 위로가 우리로 그에 대해서 절망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절망해야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탐하지 말라고, 또는 탐욕에 이끌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간단히 말하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요구하시는 순수함과 죄 없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우리의 변호자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서 절망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온통 그의 연민에 달려있음을 본다. 더욱이 우리는 그의 말씀으로 그가 어떤 최고선을 세우며, 또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의롭고 선한지를 배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말씀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를 따르기를 힘쓰면서, 우리의 무능력을 항상 확인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완전함에 아무도 도달할 수는 없지만, 믿는 영혼의 가장 큰 바람은 그의 말씀과 그의 요구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설사 그 영혼이 그것들을 만족시키는 상태밖에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 믿는 영혼은 자신의 보배요 자신의 위로며 자신의 보장이신 이로 기뻐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의 말씀 자체가 위에 인용한 구절들과 또 그와 유사한 명령들이 충고나 견해 따위가 아님을 입증한다. 그리스도는 그것들을 “계명들”이라고 명명한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마 5:19). 그는 이것을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 곧 그가 계명이라고 부르는 구절들과 관련시킨다. 그러기에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그가 명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한다(마 28:20).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 모든 계명들은 다음 두 가지 원리에 포함된다: “주 너의 하나님을 네 온 마음과 네 온 목숨과, 네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우리는 우리가 어떤 헛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첫째 계명에 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면, 우리에게 어떤 허망함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낫게 말하면 이렇다: 이 유일한 계명을 준수하자,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그것을 명하셨기에 그것으로 계명이 되게 하자(마 22:37). 이런 경우,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속에 어떤 피조물도 결코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피조물에게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양보한다면, 불행히도 사실이 그렇듯이, 우리의 모든 힘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바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죄가 없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우리가 결코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은 둘째 계명에 포함된다. 만일 각자가 그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면, 어떤 맹세도 필요 없을 것이다. 각자가 속지 않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아무도 속이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예는 예요 아니오는 아니오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모든 계명들도 이 두 원리에 포함된다. 그것들을 준수하는 자는 스스로 그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 두 계명에 속해있다”(마 22: 40). 결국, 문제가 되는 계명들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즐겁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령적이요 강제적이다.
나는 이것이 명백하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 속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첫 계명에서 그가 그것[=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그의 정의와 상응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아들로 삼으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우리의 무능함을 도우러 올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공통된 불완전에 공격당할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올바른 것과 불의한 것을 판단하고 모두에게 대가를 지불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 않는 많은 불경건한 자들이 존재한다. 이 사람들은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모독에 빠져있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범죄적 행동에 재제를 가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그들의 가증할 죄악과 경솔함으로 백성을 온통 파괴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각 사람의 것을 그에게서 빼앗았을 것이다. 만일 각 사람이 자신을 방어했더라면, 그들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율법을 주사 불경건한 자들이 억제되며 사람들로 그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셨다. 설사 그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사람들을 평안하게 내버려두어야 하며, 자기의 허풍으로 누구를 겁줘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인간 정의의 비참함과 초라함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율법은 바울의 다음 말처럼 악인들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법은 의인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죄인, 불경한 자, 신성 모독자, 부모에게 폭행하는 자, 살인자, 추잡한 자, 남색 하는 자, 영혼을 훔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그리고 기타 올바른 교훈,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부합하는 교훈을 거스르는 사악한 자들을 위함이다”(딤전 1:9-11). 이 악당들의 문제에 있어서, 너는 이제 하나님이 가장 악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서 법을 주셨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법이 가장 상스러운 불의를 막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해서, 자신에게 더 나쁜 악에 대한 죄가 돌려지지 않는 사람이 그만큼 더 의로운 것은 아니다. 법을 준수하는 자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점에서 책벌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부르는 “이것들을 행하는 자는 그것으로 살리라”(갈 3:12).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율법을 실천하는 자, 또는 율법이 금하는 것을 피하는 자는, 그가 이 율법에 따라 정죄도 안 받고 책벌도 안 받는다는 점에서, 자기 생명을 보호할 것이다.
이처럼 두 정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종류의 법이 있다. 곧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이다. 법의 한 부분은 다만 내면적 인간과 관련한다. 곧 그 힘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도 이 법을 이루는 상태에 있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 한 분 외에, 그리고 우리의 담보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믿음의 방편으로 의롭게 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의롭지 못하다.
법의 다른 부분은 외적 인간과 관련한다. 이 법에 따라서 각 사람은 외적으로 경건하고 의로울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의 심판에 따라서는 그는 경건하지도 의롭지도 않으며, 하나님에 의해 정죄된다. 예를 들어보자.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출 20: 15)는 밖에서 보여진 경건이나 정의와 관련한다. “타인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출 20:17; 롬 7:7)는 내적 인간과 관련하는 하나님의 정의의 계명이다. 그러나 이 두 계명은 동일한 것, 곧 불법적 횡령—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을 겨냥한다. 만일 누군가가 타인의 재물을 도적질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여겨질 것이다(다시 말하면,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정죄되는 모든 악덕에 관계해서 말이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사람은 도적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재물을 향한 열정과 탐욕이 아마도 도적질한 사람보다 그에게 더 크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도적은 교수형 당할 것이며, 공개적으로 도적이 되나, 한편 하나님에 의해서만 범법자로 여겨지는, 타인의 재물에 대한 탐심이 더 큰 자는, 악한 행동이 공개적으로 저질러지지 않기 때문에 정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의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명백히 범법자다”라는 표현은, 그것이 적절하게 사용될 때, 완벽히 적합하다. 이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두 범법자라는 뜻을 암시한다. 실제로 설사 사람이 타인의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타인의 부인이나, 영광된 자리를 탐하며, 혹은 다른 유혹과 관계한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범법자나 한편 사람들 눈에는 의인으로 여겨지고 그의 마음은 사람들이 그 밑바탕을 알 수 있기에는 너무도 깊다. 하나님만이 마음을 감찰하시며, 한편 사람들의 판단은 외면적인 것에만 도달한다. 명백히 불한당인 자들은 그들 자신의 내면에서 당하는 유혹들이 밝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는 점에서 부당하고 불경한 자들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의 법이 무엇이며 인간 정의의 법이 무엇인지를 본다. 하나님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범법자들이며, 우리의 범법을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처럼 그 만이 그것을 판단하신다. 아니면 우리가 그의 아들이 동정심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사 우리의 빚을 갚으셨음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신다. 인간 정의의 기준에서, 우리는 자주 의인으로 여겨질 것이나, 한편 하나님에게 우리는 진실로 범법자들이다. 인간 정의에 맞서 행동하기를, 하나님에게도 범법자요 공개적으로도 범법자인 식으로 하는 자의 경우, 그 자는 행악자를 재판하는 소송, 곧 관청이나 재판관에게 넘겨질 것이다.
자, 나는 이 인간의 정의를 허약하고 불구와도 같은 정의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설사 각자가 사람들 앞에서 의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의롭지 못한 연고로 그 앞에선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하면, 수도사의 후두와 경건한 휘장과 특별한 예복들과 더불어 제시되는 이런 종류의 정의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너는 이것이 커다란 위선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서 의롭고 순수하며 흠 없게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선을 행할 자신의 무능함과, 불순함과 결핍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외면상 선한 인물로 자처한다 해도, 한편 하나님 앞에서는 커다란 범법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타당하다: “저희는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사실 사람은 그가 보는 것에 따라서 판단하며, 외양에 따라서 그의 이웃을 평가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정직하게 보일 경우, 그들의 외양만으로 인해서 그렇게 여겨질 것이며, 그들이 노력한 열매를 이미 이 땅에서 받을 것이다. 자기들의 위선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경우, 그들이 우리 모두에게 부족한 것을 여전히 보지 못하는 까닭으로 인해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해도 아무 소용없다: “우리는 우리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 수도복을 입고 다닌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만일 너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너희는 공공연히 큰 소리로 너희의 회개를 알리지 않은 채, 회개의 영과 더불어 너희 마음 내면에서 그것을 체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것이 바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정직하며 선하다고 자처하려는 모든 것이 위선이며, 또 그것은 인간 정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임수요 죄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인간 정의를 하나님의 정의 앞에 두는 순간부터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기에 부당하지만, 그래도 인간 정의는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이는 특히 우리의 불순종—하나님은 이 불순종에 인간 정의가 개입하게 될 것을 잘 아신다—으로 인해 그렇게 하셨다. 예를 들어보자. 아들을 학교 선생에게 맡기는 사람은 거의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치고 책벌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 아버지는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때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나,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가 육체적으로 교정되지 않는 한 그가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바람이 낯선 것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만 향하기를 요구하지만, 그는 우리가 경건하지도 의롭지도 않음을 잘 아신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선하고 유익한 규율들을 주사, 우리로 서로 행복하고 우애 있게 살도록 하셨다. 이처럼 그는 말씀한다: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고 거짓 증거 하지 말라(출 20:13-16). 만일 우리가 다음의 다른 계명을 지킨다면, 이 계명들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 22:39).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기에, 하나님은 또한 이것들을 우리에게 주셔야 했다. 이것으로 충분치 못했기에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계명들을 강화해야 했다. 도적은 그가 취한 것을 네다섯 배로 갚아야 하고, 간음한 자는 돌로 처 죽여야 하고, 등등. 그리고 이것들은 학교 선생의 손에, 곧 관청에 맡겨진다. 이어지는 글은 관청(=당국)이 이 주제에 어느 정도로 책벌을 적용하거나, 법규들을 제정해야 하는 지를 보일 것이다.
이제 인간의 정의와 비교하고 상호 관계를 보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의] 열 가지 사항을 다시 취하자.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첫째 규율들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인간 정의의 규율들을 정하셨음을 볼 것이다.
1 과 3.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기를 명하시며, 이것 없이는 그도 우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특별히 아무도 복수를 행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바, 용서가 없다면 복수는 난처함과 분리를 야기하고 사람들과 그들의 공존 사이에 평화를 온전히 파괴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쟁들을 조사하고 완화시킬 위정자들과 재판관들을 세우사, 각자에게 출 18:21에 부합되는 그의 의무를 주셨다: “진실 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택해서(들으시오, 오 재판관들과 위정자들이여!) 그들 중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되…작은 소송들을 재판케 하라.” 이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용서되기를 구할 때에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까닭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로 재판하도록 명하셨음을 본다. 인간 사회의 삶이 험악한 장소 가 되지 않도록, 당국은 각 사람이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스스로 보복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분쟁이 법에 합당하게 해결되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정의를 상실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련한 인간 정의가 실패로 끝난다면, 사회생활은 들짐승의 생활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곧 가장 힘센 자가 가장 좋은 몫을 차지한다. 이렇게 권위를 행사하는 재판관들과 위정자들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들은 학교의 스승들이다. 우리가 조금 뒤에 보겠지만, 그들의 정의에, 그것이 도덕적이건 물질적이건, 따르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반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서 산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래도 의롭지 못하다. [다만] 그는 죽음 또는 징벌을 면한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살인하지 말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화내지 말 것도 요구하신다. 분노가 없다면, 살인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치명적인 행위도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혹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를 위반할 경우, 하나님은 우리가 살인하지는 말라고 요구하심에 틀림없다. 우리가 계명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학교 스승은 대가 지불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곧 죽음은 죽음으로,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화재는 화재로, 상처는 상처로, 구타는 구타로. 이런 형식의 계명들을 위반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이 점에서 그 이상 의롭지는 않으며, 권위에서 나오는 징벌을 피할 뿐이다. 이것이 율법에 따라 사는 삶이라 불리는 것이다(갈 3:10).
4.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의 배우자를 탐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이 명령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실제로 우리에게 유혹이 없을 수 없다—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요구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결혼 관계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가 우리의 탐욕으로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책망 받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간음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위법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동물들처럼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학교 스승에게 맡겨 돌로 치게 하신다(레 20:10).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징벌을 폐기했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비롯한다. 곧 간음이 초기에 매우 드물어서 자주 잡히지 않았거나, 아니면 위정자들 자신이 간음자들이라. 그들이 깊이 빠져있는 이 악에 합당한 벌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간음이 퍼져있고 온갖 수치를 당하고 있는지 확인한다면, 관련된 징벌을 다시 강화해서 우리로 가련한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함이 정당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규정한 것(출 22:1) 이상으로 가혹하게 도적질을 처벌해야 한다. 왜냐하면 처벌은 도적들이 습성에 젖어 있는 이 위법 행위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간음 징벌이 다시 세워지고 심지어 강화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5.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되, “예” 와 “아니오” 외에 다른 말을 사용하지 않기를 요구하신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행하지 못하고, 서로 속일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세할 것을 명하신다(출 22:11). 만일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학교 선생이 채찍과 더불어 거기에 있을 것이고, 수산나를 죽게 하려 했던 두 늙은 거짓 증인들처럼, 우리를 넘겨 돌에 마저 죽게 한다. 왜냐하면 거짓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부인과 다르지 않으며,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돌로 처 죽이는 벌을 내리시기 때문이다(신 17:5).
6.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재물을 필요한 자들에게 주되 돌려받을 생각 없이 하라고 명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를 행하지 못할 경우,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라고 명령하신다(출 22:25; 레 25:36). 우리가 그것도 못하기 때문에, 학교 선생이 있게 되고 그는 우리에게 이자를 주도록 가르친다. 비록 빌려주는 자에 대한 처벌이 자세하지는 않지만, 이 일은 그래도 재판관의 영역에 속한다. 이 재판관은 일어날 수 있는 분쟁과 악습에 질서를 주기 위해서 세워졌다(출 18:25-27). 이제 고리대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자는 이 사실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 의인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당국이 고리대금을 이유로 그를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아니다. 그가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 한 말이다(눅 12:33). 누구도 이렇게 할 수 없을진대, 누구도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가 자신이 죄인으로 인정함을 너로부터 기꺼이 받아들인다.
7. 하나님은 우리로 우리의 원수에게 선을 행하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이것을 못할 경우, 그는 우리로 원수에게 악을 행치 말라고 명하신다. 게다가 그는 우리가 원수들이 모르고 있는 위험을 그들에게서 치워주기를 원하신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 찌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내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출 22:4-5). 만일 네가 이 명령을 그냥 지나친다면, 학교 선생은 가장 단순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인해, 마땅히 너를 처벌할 것이다. 이 계명은 우리가 가까스로 지킬 수 있지만, 우리가 모든 것이 파멸로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제 네가 이 마지막 비난거리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네가 그렇게 의롭지 못하다. 네가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하신 것처럼, 네 원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킬 경우, 도적질이나 강도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장 기본적인 계명, 곧 인간 사회의 유지를 위해 그만하면 괜찮은 계명을 만드신다: “도적질하지 말라”. 이 계명과 관련해서—또한 “네 이웃의 부인을 탐하지 말라” 와 “간음하지 말라”(이 두 번째 것이 역시 가장 단순하다) 도 만찬가지로—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계명들을 정하사 우리가 그것들을 지킴으로 의인은 되지 못하나 처벌만은 면하게 하셨음을 본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주심은 사회와 인간 공존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재산을 폭력으로나 은밀하게 빼앗는 자는 도적이거나 강도다. 학교 선생 또는 감시자가 마땅히 회초리로 그를 때려야 한다.
다음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과 그 열매들을 우리 쪽에서의 지불 없이 후하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향유함도 값이 없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빚진 자요, 그에 대해서 악을 행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 속한 것을 우리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못할 줄 아시며, 아담 이래 우리가 이기주의자임과 각자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추구함을 아신다. 이제 인간 사회가 우리의 인색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 인색함을 길들이사 우리로 강탈하거나 도적질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이 일에 삼가 조심하는 자라해도, 그가 타인의 재물을 바라지 않는 한, 그는 이것으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 여기서 성실한 인간에게 [이자로] 아무것도 주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이들은 그에게서 자본을 [대부]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자들이다—도적과 사기꾼들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곧 하나님에게, 주어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에게서 재산을 빼앗으라고 명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처벌하여 어떤 불의도 어떤 사람에게든지 저질러지는 것을 피하라고 당국에 명하신다. 그러므로 설사 당국이 유대인이나 다른 고리대금업자들 편에서 고리대금을 용납할 때에도, 네가 누구의 자본을 고의로 [대부] 받은 뒤, 핑계나 폭력으로 빚의 이자나 고리대금을 그에게서 훔친다면, 너는 도적이나 강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임의로 빼앗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당국은 하나님의 요구와 심지어 이 가련한 정의—하나님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세우신—의 요구에 병립할 수 없는 악습들이 존속할 수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이런 일을 기도하는 자들은 이중으로 죄를 범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우리의 공통된 연약함으로 인해 타인의 재산을 탐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멸시하여 나쁜 행위와 소란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가련한 의인이지만, 최소한 한 쪽 끝으로라도, 정의의 원리— 이것 없이 우리 생활은 살인, 도적, 강도밖에 아무것도 아니다—에 언제나 확고히 버텨야 할 것이다.
9. 하나님은 우리가 헛된 말을 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모독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지 않으며 속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의도가 헛된 사람은 의롭지 못하다. 가련한 인간 정의는 자신의 직무를 다 했다. 곧 누구든 나쁘게 말하지 않으면,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 그는 저주를 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계속적으로 죄를 지며, 항상 [잘못] 말하고 모욕하고, 속이고 거짓 증거하기 때문에, 이런 비방가나 속이는 자에 맞서, 그가 속이거나 거짓 증거한 자에게 한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신 19:19).
만일 우리의 말이 예, 예나 아니오, 아니오였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계명을 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가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하나님이 어떤 계명들을 정하사 우리로 그것들을 지키게 하셨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나는 의롭다”라고 말하면서, 당국이 처벌하는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있는 양 생각하는 자들이 얼마나 가련한 지를 보라. 또한 인간의 지혜란 온통 의인을 그런 식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생각하라. 이는 신앙만이 오직 경건하게 만들고 신앙만이 연약함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련한 열등 정의는 실시되어야 한다.
10. 이웃과 관련된 모든 요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유일한 계명에 직면한 우리의 태만에서 비롯한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자연법으로 그리스도가 그것을 사랑으로 부드럽게 했음을 덧붙여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사랑이시기에(요일 4:16) 이 계명은 그에게 온전히 상응한다. 자연법은 다음과 같다: “너에게 일어나기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타인에게 행하라”, “사람들이 너에게 행하기를 네가 원치 않는 것을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라”. 그리스도는 이 계명을 사랑으로 부드럽게 했는바,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경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이웃 사랑도 우리 안에 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사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우리는 상응하는 의지를 발견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연법에 다음 말로 장식하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계명으로 측정할 때, 잘 알다시피, 모든 사람들이 불완전하다. 이런 관계 하에서도 인간 정의는 도처에 그대로 있다. 사실 인간 정의는 인간 본성의 특성들을 너무도 명백히 자신의 것으로 삼기에 인간들로 공동체에서 살도록 이끌 수 없다. 인간의 정의는 낙원에서는 말하자면 호되게 당했다! 그러기에 이 정의는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들의 책임에 호소하지 않는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것을 지킬 의무가 있고 또 어떤 당사자들의 비준수가 처벌받게는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인간] 정의는 총체적으로 계명과 관련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런 정의도 이사야가 말하는 더럽혀진 옷과 마찬가지임을 본다. 우리가 세상의 눈엔 의롭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역시 하나님의 눈엔 강도이다. [하지만] 당국이 행하는 감독은 필수 불가결하다. 아버지가 미혹 당한 자기 딸이 창녀가 되지 않도록 그녀를 감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국은 우리의 존재가 이성 없는 동물적 삶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대리자로 감시한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의 정의와 어떤 점에서 구별되어져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기를 바란다. 비록 이 인간 정의가 하나님에 의해서 명령되었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도로 완전에 결코 참여하지 못한다. 인간 정의는, 하나님이 우리의 유혹과 탐심이 그의 뜻을 지키고 복종하지 못하게 함을 보신 뒤, 주로 우리의 죄짓고 타락한 본성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인간 정의는 하나의 처벌 외에 다른 것이 아니고,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이 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거룩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합당치도 않는다. 에스겔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선하지도 않은 법과,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들, 곧 그것들 지켜도 너희가 구원받지 못할 규례들을 주었다”(겔 20:25). 비록 이 말들이 본질적으로 의식들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지만, “규칙”이란 말은 또한 이 말들이 인간 정의와 시 당국의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한 말인 “우리가 이 규례들에 따라서 살지 말 것”과 갈라디아서 3:12의 “이것들을 실천하는 자들은 살리라”는 차이점이 강조된다. 그 차이는 이렇다: 인간 정의를 지키면서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에스겔이 “살게 하지 못할”의 의미이고, 한편 바울의 의미는 만일 우리가 인간의 연약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을 지킨다면 당국이 우리를 죽음에 두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육적인 생명을 건진다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자, 그러면 우리가 살해되지 않을 것이다”(신 4:40).
*인간의 정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가르침(마 22:21, 마 17:27)
-사도들의 가르침(벧전 2:13)
-바울의 가르침(롬 13:1-7 해설)
*요약 및 결론
재세례파와의 논쟁
1522년 8월, 츠빙글리는 미코니우스에게 쓴 편지 가운데 자신의 서클에 들어있던 인물들을 나열한다. 이들은 콘라드 그레벨, 펠릭스 만츠, 슈툼프, 카스텔부르거, 아벌리, 로이블린 등인데, 취리히 개혁이 한창일 무렵 츠빙글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1523년 1월, 1차 취리히 논쟁 때, 츠빙글리가 세속 당국의 통제 하에서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는 생각에 반대했고 년 월 차 논쟁 , 1523 10 2 시에는 슈툼프와 그레벨이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1523년 10월에서 1524년 9월 사이에 그레벨, 만츠, 슈툼프 등은 츠빙글리와 여러 차례 대화를 갖고 자신들의 입장을 확실히 해나갔다. 특히 그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당국의 억압에 밀려 그들은 소수의 분리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서 뮌처와 카를슈타트의 글들이 다소간 영향을 준 듯하다.
1525년 1월 17일 츠빙글리와 그레벨 그룹 사이의 마지막 논쟁이 있었으나 시의회 대표들은 유아세례에 대한 츠빙글리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그레벨과 만츠에게는 침묵을 강요했으며 로이블린과 카스텔베르거 등을 추방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1월 21일 만츠의 모친 집에서 모임을 갖고 그레벨이 블라우록과 그리송 집안 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는 졸리콘으로 자리를옮겼다. 이리하여 최초의 세례파 자유교회가 탄생하였다. 1월 30일에는 블라우록과 만츠가 새로 세례 받은 자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만츠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곧 풀려났다. 블라우록과 그레벨은 산악지대로 갔고, 로이블리는 발트슈트로 가서 복음주의 성향을 갖고 있던 후브마이어를 만나 그와 그 가족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면서 성찬의 독자적인 의식을 갖춘 300명의 공동체가 발트슈트에 세워졌다. 츠빙글리는 후브마이어와 글과 말(1525년 취리히에서)로 논쟁을 벌였다. 그레벨, 만츠 등과의 대담이 결과를 얻지 못하자 시의회는 1526년 3월 7일 고집쟁이들을 가차없이 익사시킬 것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펠릭스 만츠는 1527년 1월 5일 리마트Limmat 호수에서 익사형 당했다. 죄명은 “물로 범죄한 자는 물로 망할지라”였다.
그렇다면 왜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에 대해 반대했나? 첫째로, 그들에게 교회 분리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츠빙글리는 그들에게서 수도회의 연속을 보았다. 그레벨 그룹은 sola fide 정신이 있으면서도 삶을 강조했기 때문에, 순수한 교회를 지향했다. 이것은 교회 안에 가라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된다. 둘째로, 유아세례를 부인한 것이다. 이미 1524년부터 어떤 이들은 유아세례를 주지 않았다. 세례 받을 자에게 세례를 주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첫째 이유와 연결되며, 완전주의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츠빙글리는 이런 금욕적 개혁 열망을 거부했다. 세 번째로, 이들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와 국가의 양 사역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카리스마적 권위를 요구하며 기존 성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예언했다. 여기에 대해 츠빙글리와 취리히 당국은 공적 유아세례를 존속시켰다. 이 신정정치는 그레벨 그룹에 강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로, 이들이 구약을 신앙과 행위의 기초로 신약과 동등하게 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재세례파의 정착
한편 그레벨 그룹은 후브마이어와 자틀러의 합세로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할 기회를 갖게 된다. 후브마이어는 1526년 <기독교 요리문답>을 써서 재세례파 신학의 틀을 잡았고 자틀러는 1527년 2월 24일 쉴라이트하임Schleitheim에서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이와 같이 스위스 형제단은 콘라드 그레벨을 중심으로 한 그룹에 후브마이어와 자틀러가 가세하여 그들의 신학사상을 정제한 재세례파 유형이다. 여기서 후브마이어와 자틀러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후브마이어는 1480년 프리드베르크에서 태어나 그 도시의 대학에서 에크와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1512년 그 보다 2년 앞서 떠난 에크의 뒤를 따라 잉골슈타트 대학으로 가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516년 동 대학의 부총장직에 선출된 후브마이어는 이듬해 돌연 레겐스부르크의 성당 설교자가 되어 4년을 보냈다. 이 시기 그의 설교는 유대인을 몰아내려는 비열한 캠페인의 특징을 보였다. 1520년 그는 또다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발트슈트로 옮겼고 여기서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글을 읽으면서 복음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다. 1523년 경 그는 자신을 당당히 복음주의자로 밝히고 그 이듬해부터 발트슈트의 개혁을 구상했다. 그리하여 1524년 가
을 그는 복음주의 교회 개혁을 시도하여, 교회에서 성상과 성유물을 제거하고 미사를 독일어로 드렸다.
농민전쟁이 터지던 해인 1525년 3월 로이블린과 그레벨이 발트슈트에 왔을 때 이 도시는
이미 반역적인 흑림Black Forest 농민들과 정치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동년 부활주일에 후
브마이어는 로이블린에게 세례를 받고 그 기간 동안 300명의 시민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대
다수의 시민들가 재세례를 인정한 셈이었다. 후브마이어는 즉시 <신자들의 기독교 세례에 대
하여>라는 글을 써서 성인세례를 옹호했다. 이런 재세례 운동은 인근 도시인 할라우와 샤프하
우젠으로 확대되었다. 초기 재세례파는 세상과 유리하는 분파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들이
주장하는 사회 개혁 운동과 연루되어 있었다. 스위스 재세례파 운동은 민중 개혁이라는 대안
운동인 풀뿌리로 시작한 것이지 철저히 평화 지향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이점에서 후브마이어는 검의 사용을 거부하는 철저히 평화적인 콘라드 그레벨과 펠릭스 만
츠의 스위스 형제단과 분명 다른 입장을 보였다. 만츠는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
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 사랑은 적을 파괴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상속자가 될 사람은 하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야 한다…그리스도 역시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셨다. 그의 참
된 종들도 그러했고 그들 앞에 가신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참 되게 따랐다.”
반면 후브마이어는 발트슈트가 농민전쟁에 가담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는 훗날 <검에 대하
여>라는 글에서 평화적 재세례파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위스 형제단 가운데 후브마
이어를 따른 사람들은 로이블린과 브뢰틀리다. 할라우에서 그들은 무장한 농민들의 보호를 받
았고 또 그것을 인정했다. 갈Gall과 그뤼닝겐 지역의 재세례파들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나자 재세례파는 정치적 구심점을 잃었고 이 운동은 점차 세상
과의 유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스위스 당국들이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분파를 호
되게 다룬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취리히는 재세례를 받은 자를 익사형으로 다스렸고 재세
례를 인정하는 자는 감옥에 가두었다. 펠릭스 만츠는 이 법령을 어기고 죽었다.
미카엘 자틀러가 스위스 형제단의 지도자로 우뚝 솟은 것은 1526년 여름이다. 그는 본래
엄격한 베네딕트회 소속인 흑림의 성 베드로 수도원의 수사였는데, 프라이부르크를 점령한 농
민 군대가 수도원을 장악한 뒤 어쩌면 이들에 의해 재세례파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농민들이 점령한 스위스 마을들과 스트라스부르 및 인근 마을들에서 설교하고 세례를 베풀었
다. 그는 부처와 카피토에게 수감된 재세례파를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나아가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리스도의 나라와 사탄의 지배의 철저한 분리, 무장 저항과 정부와의 연루 거부라는 자
신의 입장을 천명했다. 그는 1527년 2월 24일 이 생각들을 정리하여 신앙조항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쉴라이트하임 신앙고백서다. 이것은 스위스 재세례파 운동의 헌장이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 일곱 가지이다. 1) 신앙세례 2) 출교 3) 성찬의 분병 4) 세상과의 분리 5) 목사의
선택권 6) 검 7) 맹세.
총 7가지 조항 가운데 처음 3가지(신앙세례, 출교, 성찬)는 모든 재세례파들과 동일하다. 재
세례파는 자신의 신앙에 의해 세례를 받고 공동체의 치리에 복종하며 같은 성찬에 참여한다.
그러나 나머지 4조항(세상과의 유리, 목사 선택권, 검, 맹세)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아니
다. 세상과의 유리는 수사였던 자틀러의 영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새로 태어나는 종교개혁의
교회들 역시 사회적 가치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세속적 가치를 거부할 수 있는 수도
회와 같은 공동체의 필요를 느꼈던가 목사 ? 선출권은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검의
거부는 단호한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맹세는 어떤 형태건 거부된다. 이것은 이 시기에 지상
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포기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1527년 이후에는 쉴라이트하임의 분리
주의적, 비정치적, 평화적, 비-맹세적인 재세례파가 스위스 재세례파를 지배했다. 물론 이들이
다른 여러 지역(알자스, 모라비아, 팔츠, 네덜란드 등)으로 흩어졌지만 이런 신앙고백을 갖는
이들에게 여전히 스위스 형제단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쉴라이트하임 신앙고백에 대한 츠빙글리의 비판
츠빙글리는 1527년 8월 31일, <재세례파 논박>In catabaptistarum strophas elenchus;
Wieder die Ränke der Wiedertäufer을 써서 쉴라이트하임 고백서를 비판한다.
첫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새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들만이 그들의 죄에서 구원될 수 있다
고 말하면서 재세례파는 자유의지(공로에 의한 의)를 회복시킨다(츠빙글리에 있어서 새 삶이란
구속의 조건이 아니라 세례의 조건이다). 2) “ 그리스도를 따라 살려”하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결심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는 그렇게 하는 자들을 거짓 맹세하는 자라고 정죄한다. 3) 세례는
원하는 자와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세례파는 어떤
성경구절에도 의지하지 않는다(여기서 츠빙글리는 막16/16과 행8/36-40을 잊고 있다). 4) 유
아세례를 거부하면서 재세례파는 할례를 망각한다.
두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출교를 실시하면서 마18/16절만 생각하고 그 다음절은 포함하
지 않는다. 2) 츠빙글리는 제2항이 마18/17과 성찬식 사이에 세워놓은 유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도들의 관례에서 분병 전에 수찬 정지를 행하는 재세례파를 지지하는 것이라곤 아
무것도 없다. 3) 재세례파는 출교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가운데 있
는 토머스 슈거를 정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츠빙글리의 잘못된 파악).
세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성찬참여의 조건은 세례인데 그들이 말하는 세례는 교회의 세례
가 아니라 분파의 세례이다. 2) 재세례를 통해서 “잘못된 교회”acoecclesia에만 신자들을 가
입시킬 수 있는 재세례파의 분리정신을 고발한다. 3) 유아세례는 교황이 만든 것이 아니다. 따
라서 교황체제에서 이뤄진 유아세례도 유효하다. 네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분리는 각자의 내
부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다. 교회는 완전한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2) “2검의 의”us gladii를
인정해야 한다(롬 13:4). 3) 재세례파는 세상의 도피자들이다. 다섯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개
혁파 교회 목사를 청빙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신자들의 관대함으로 사는 것이 잘못이고 십
일조와 교회재산으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게으르고 우울한 것도 잘못이다 여섯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1그리스도의 완전”과 “검의 의”사이에 재세례파가 세운 대립을 비난한다. 그들도
완전한 상태에서 살수 없다. 2)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인이 재판관이나 위정자의 기능을 담당할
권리가 없다는 견해에 반발한다. 3) 그는 재세례파가 비록 하늘의 시민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4) 재세례파가 간음죄에 대해 관대함을 지적하며 비도
덕적이라고 비난한다.
일곱 번째 조항에 대해서: 1) 츠빙글리는 재세례파가 세속권세를 파괴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맹세의 거부가 그들의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라고 여긴다. 맹세를 거부하는 것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기를 거부하는 것이요, 공중질서의 기초를 제거하는 것이며, 소요
와 봉기를 낳는다고 본다. 2) 재세례파는 인간관계에 있어 맹세의 유효성을 잘 모른다. 맹세는
단순히 결심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는 행동이다. 3) 츠빙글리는 재세례
파가 마 의 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5/33 επιορκειν 본다. 그들은 이 말을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
다로 본다(jurare, schwören). 그러나 그는 이것을 dejerare, zuschwören, 곧 경솔히 맹세
하다로 여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맹세를 금한 것이 아니라 헛맹세를 금한 것이다. 4) 아무도
맹세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맹세를 삼가야 한다는 논증에 반박한다. 그는 여기서 재세례파의
모순을 발견한다. 서약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와 부합될 수 있겠는가? 5) 히6/16은
츠빙글리에게 좋은 무기이다. 6) 츠빙글리가 드는 예: 재세례파운동의 우두머리 가운데 하나인
블라우록이 고문이 두려워 위정자 앞에서 맹세를 했을 때 재세례파가 그를 출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츠빙글리와 스위스 재세례파의 사회학적인 입장은 어떻게 다른가
츠빙글리와 재세례파의 사회학
츠빙글리의 사회학은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를 공유하고, 양쪽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는 중간 해결책을 권장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산상설교의 권위를 빌어 노예제도, 십일
조, 강제노역의 폐지 등 급진적 개혁들을 요구했던 농민들의 슬로건이었다. 츠빙글리는 여기
에 인간의 정의를 병립시킨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종속된다. 요컨대, 종교와 도덕의
구분이다.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알려지는 신자의 태도에 속하는 내면적 의가 있
고, 사람들의 공동생활을 가능케 하는 公民의 정직성 곧 외면적 정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외적 질서가 <인간의 정의>에 기초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이 인간의 정의는
상대적일 뿐이요,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계하여 수정될 수 있다. 츠빙글리는 이웃 사랑을 이
런 식으로 이해했는바, 그에게 있어 이웃 사랑은 자연 법에 일치한다. 이처럼 사랑은 부정적
인 형태(네게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인간의 정의)건 긍정적인 형태(남
이 네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줘라-하나님의 정의)건 인간의 본성에 뿌리 박혀 있
다. 여기서 우리는 츠빙글리의 입장을 결정하는 실재와 상징의 변증법을 발견한다. 동시에 이
해결책은 두 경쟁적 경향들 사이에서 중간노선으로 나타난다. 곧 복음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외적 질서도 인정하지 않는 급진파(재세례파)의 경향과 자신들에게 좋은 통치 외에 다른 것은
알지도 못하는 군주들과 위정자들의 경향 사이에 있다는 말이다. 츠빙글리는 루터와는 달리
“독재”의 퇴위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저항권을 시민들에게 준다.
스위스 형제단의 사회학은 실로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사회학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
스도의 삶과 메시지(특히 산상설교)를 개인적, 신학적인 차원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집
단적, 사회학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폭력, 절대 평화주의, 나아가 비-능력은 십자가
의 신학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회학의 절정이다.
급진파들이 볼 때, 인간의 정의 실현이란,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의 정의에 기초를 둔다 하
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정의를 위반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정의를 그래도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할 수밖에 없는) 정전(just war) 신학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이들은
폭력은 언제나 악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결코 선으로 여겨질 수 없고 찬양될 수 없다. 전쟁에
의뢰해야할 때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이것이 정전 이론의 jus ad bellum 이론으
로 전쟁이 정당한지 아닌지 알도록 도와주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합법적인 권위가 선
포했는가? 원인이 정당한가? 다른 모든 화해의 수단을 사용했는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은 비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기 원하는 자 자신이다. 다음으로 정
전 이론은 그리스도인 편에서 윤리적 식별력을 내포한다. 정전 수행 방법을 묻는 기준(이것이
jus in bello의 이론으로 예를 들어 수단은 목적에 비례한다거나 전쟁은 질 수도 있어야 한다
거나, 무고한 생명은 죽이지 말아야 한다)은 양심이 국가 권위가 선포하는 것(국가 이익에 부
합되는 것이라도 에 연결되지 않음을 ) 암시한다. 신자에게 국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공동
선을 구체화하는데 소용이 된다. 그러나 정전 이론은 선별적인 양심의 반대 권리에 부딪힌다.
군주나 국가의 이익이 자동적으로 폭력에 의뢰케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주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하나? 콘스탄타누스 이래 기독교
윤리는 정치적 현실주의와 효율성이란 기준을 채택했다. 비폭력이란 전진되지 않는다. 현실주
의자가 되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책임을 져야한다. 그가 행동하지 않으면 (필요하면 폭력으로
라도) 정의도 자유도 없다. 역사를 상식선에서 제대로 진행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이것인가? 평화주의적인 윤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세계의 역사가 어떤 의미에서 흘
러가고 있는지 말한바 있다. 악은 이미 패했다. 세상은 우리의 정치적 현실주의와 효율성의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치적 현실주의와 효율성(이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을 합리화했
던) 이 진정 현실주의적이었고 효과적이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책임감의 윤리가 진정 책임적
이었던가? 우리의 행동이 앞으로 있을 사건에 대해 끼칠 영향과 결과를 진정 알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기독교적인 사회 책임을 말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 뒤에 서구 기독교의 예를 갖
고 있다. 왕과 군주들이 “매우 기독교적인”그 시대, 교회가 사회 전체의 진행에 책임을 느꼈
던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생각했던 그 시대 말이다. 이 경험은 유
산으로 무엇을 주었나? 물론 긍정적인 것도 있다. 그것을 부인하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십자
군, 종교재판소, 종교전쟁, 관용과 민주에 반대, 화학무기 원자무기를 사용한 20세기 기독교
국가들의 스펙터클, 옛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던 유럽 집단의 교회에 대한 거의 전면적인
거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위스 재세례파의 사회학은 예수의 사회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이 “진정한”급진적인 흐름은 공민권 포
기, 절대 평화주의, 세상사의 비-참여라는 세 가지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스토페르).
재세례파의 다른 유형들
츠빙글리와 대면해야 했던 재세례파는 주로 스위스 형제단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재세례파
는 실로 널리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스위스 재세례파 외에도 다른 두 가지 재세례파 유
형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는 남독과 오스트리아 재세례파이고 다른 하나는 북부 독일
과 네덜란드 재세례파이다(아놀드 슈나이더).
1) 먼저 남독과 오스트리아 재세례파이다. 스위스 재세례파가 츠빙글리와 더불어 시작했다
면 남독 재세례파는 뮌처와 더불어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신학적 뿌리는 한스 텐크와 한스
후트에게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들은 모라비아에서 지도자 야콥 후터Jacob Hutter의 이름을
따서 후터파Hutterites 정착한다.
한스 덴크 : 덴크는 1500년 바바리아에서 태어나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공부한 뒤
(1517-1520) 바젤의 인쇄소에서 교정 일을 보면서(1522) 복음적 개혁운동에 가담했다. 이듬해
오이콜람파디우스의 추천으로 누렘베르크에 있는 한 학교의 교사로 가서 거기서 급진적 개혁
흐름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1524년 이 도시를 방문한 뮌처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 뮌처 서클
에는 한스 후트가 있었다. 이런 사상적인 변화는 덴크로 하여금 이 도시에서 추방당하게 했고
그는 스위스 도시들을 돌아다니다가 1525년 9월 남독 아우구스부르크에 머물면서 세례를 받
고 재세례파 리더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은 악의 원인이신가>, <하나님의 법>, <진
정 진리를 사랑하는 자>를 출판했으며, 취리히에서 추방되어 모라비아로 가던 후브마이어를
만났으며 한스 후트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1526년 11월 덴크는 스트라스부르에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자신이 자틀러, 부처 등과 다름
을 발견했다 부처는 그와 공개토론을 한 . 뒤 그를 추방시켰다. 덴크는 보름스로 가서 몇몇 루
터파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그의 유명한 책 <참 사랑>을 썼다. 하지만 1527년 중반 도시에 재
세례파 논쟁이 벌어졌고 몇몇 재세례파 지도자들이 추방되자, 덴크 역시 도시를 떠나 아우구
스부르크에서 열린 “순교자 대회”에 참석했다가 다시 바젤로 갔다. 그는 재세례파의 분열에
환멸을 느꼈고 오이콜람파디우스의 강권으로 훗날 <철회>라고 잘못 불린 그의 변명서를 작성
했다. 그는 1527년 11월 바젤에서 전염병으로 죽었다.
한스 후트 : 후트는 1490년 중부 독일 하이나에서 태어나 비브라에서 제본업자로 일했다.
1521년부터 그는 책 판매 일로 독일 여러 도시들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했고 비텐베르크에서는
카를슈타트와 뮌처의 편에 서기도 했다. 뮌처가 1524년 뮐하우젠에 도피했을 때 후트의 집에
1박하면서 그의 <변호와 논박>을 맡겼다. 후트는 이 책을 누렘베르크에서 출판했고 거기서 덴
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아이의 유아세례를 거부했고 이로 인한 추방을 선택했다.
후트는 뮌처의 “영원한 언약”의 일원으로 농민전쟁에 가담했고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패하
자 비브라로 가서 돈 받고 미사를 거행하는 성직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처벌할 것을 주장했
으며 심지어 신하들이 권세가진 자들을 죽여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후트는 거기서 쫓겨나 아
우구스부르크로 갔고 1526년 5월 덴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일 년 넘도록 비엔나와 찰
스부르크를 포함한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을 다니며 세례를 베풀다가 1527년 9월 아우구스부
르크에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옥사했다. 당국은 그의 시체를 화형에 처했다.
덴크와 후트를 이어 남독과 오스트리아 재세례파 지도자들이 여럿 나왔는데, 아우구스틴 바
더Bader, 레온하르트 쉬머, 한스 슐라퍼, 필그림 마펙 등이 주요 인물들이다. 한편 중부 독일
에서는 멜키오르 링크Rinck가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후기 남독 재세례파의 방향은 야콥 후터와 후터파들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검과 맹
세에 관한 후터파의 입장을 보면 정말 한스 후트가 이 운동의 선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1527년 후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라비아의 후터파는 스스로 평화주의 형제단이 되었다. 이
와 같은 분리주의적이고 무저항적인 성향은 쉴라이트하임의 입장에 가까워진 것이다. 1535년
야콥 후터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누구도 괴롭히지 않기길 원한다. 우리의 원수, 심지어 페르
디난트 왕도 해치지 않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의 관습과 대화는 도처에서 모두
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단 1페니의 손해를 주기보다는 100길더의 손실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창이나 칼은 고사하고 손으로 적을 때리기보다는 차라리 죽어 목숨을 내줄 것
이다.”
피터 리데만은 후터의 입장을 더욱 강화했다. 그는 통치의 권세가 진노 가운데 주어졌기 때
문에 그리스도에 적합하지도 않고 그에게 속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어떤 그리스도인도
통치자가 될 수 없으며 어떤 통치자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로마서 13장
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종”이라 해서 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종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진노를 수행하는 보복의 종(통치자)이요 다른 하나는 복을 베푸는
그리스도의 종(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통치자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는 통치하기를
멈출 것이다. 이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맹세 역시 철저히 금했다.
아무튼 남독 재세례파를 스위스 재세례파와 비교할 때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
성서주의적인 스위스 재세례파와는 달리 뮌처와 후트와 덴크의 독일 신비주의 전통은 남독 재
세례파에게 신령주의 경향을 불어넣었다. 이것은 중세 신비주의 전통에 근거한 성령의 내적
활동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이들이 내면의 말씀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둘째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에 부합하는 고통에 대한 강조이다. 셋째, 비록 다양하기는 해도 후트에
게서 뚜렷한 재산 공동체의 의지다 넷째 농민전쟁 . , 식의 사회변화 추구를 간직한다. 특히 검
의 사용과 반-성직자주의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시한부 종말론인 묵시적 대망 사상
이다. 이것은 덴크에게는 약하지만 한스 후트에게는 분명하다. 그는 그리스도가 1528년에 재
림한다고 예언한 바 있다. 이 예언의 실패는 남독 재세례파 운동을 스위스 형제단 쪽으로 끌
고 갔다. 후터파는 이런 경향을 정착시켰다.
2) 스위스 형제단이나 남독 재세례파와 또 다른 유형으로 북부 독일과 네덜란드 재세례파가
있다. 멜키오르 호프만은 이 흐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멜키오르 호프만 : 호프만은 1495년과 1500년 사이에 슈배비슈 할Schwäbisch Hall에서
태어났다. 원래 모피 상인이었던 그는 1523년에서 1526년까지 리보니아에서 루터파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했다. 성령 사역을 중요시 했던 그는 루터보다는 카를슈타트를 더 좋아했으며,
따라서 그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집중되었고 반-성직자주의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 결과 도
르파트 시에 사회적 불안과 폭력을 야기했다.
호프만은 초기부터 묵시 사상으로 이끌렸다.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지고 말세의 두
증인인 엘리야와 에녹이 이미 세상에 나타났으나 검은 악행자들에게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
는 인간의 점진적인 신격화를 믿었고 영적 전투의 승리를 가르쳤다. 이것은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이라는 루터의 가르침이 아닌 중세 신비주의 전통에 속했다.
호프만이 루터파 개혁자들과 결별하게 된 계기는 그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거부했을 때였다. 그는 이 문제로 1529년 4월 그가 2년간 사역하던 슐레스비크-홀쉬타인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에 가서 스위스 형제단, 덴크의 신령파, 필그림 마펙의 추종자
들, 한스 후트의 열광적 제자들, 그리고 신령주의자인 카스파르 슈벵크펠트를 만났다. 호프만
은 특별히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다양한 신학적 요소들을 섭취하고 자신의 것을 만들
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첫 번째 작품인 <하나님의 법>(1530)
은 분명 쉴라이트하임의 첫 3개 조항을 만족시킨다. 한편 검과 정부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모
호하다. 불경한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제거되어야 하나 성도 개인이 검을 사용해서
는 안 된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써서 불경한 자들을 멸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구인 경건한
정치 지도자가 있어서 성도의 최후의 승리를 이끌 것이다.
1530년 4월 스트라스부르 당국의 체포령이 떨어지자 호프만은 북쪽 도시인 엠덴으로 떠났
다.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을 고취하여 3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엠덴에서 시
작된 호프만의 재세례파는 네덜란드로 확산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1531년 호프만
의 제자들이 10명이나 사형에 처해지자 북독과 네덜란드 재세례파 운동은 지하로 숨었다. 호
프만은 1533년 자진해서 스트라스부르 당국에 출두했고 10년 뒤 옥사했다.
호프만의 재세례파 운동은 네덜란드에서, 특히 암스테르담, 레우워덴, 흐로닝겐에서 그 뿌리
를 굳혔다. 이어 점차 남쪽 젤란드, 플란더스, 브라반트(안트워프가 있는) 지방으로 확산되었
으며 북부 독일의 뮌스터까지 이르게 되었다.
얀 마티스 : 호프만이 스트라스부르에 감금되자 곧 얀 마티스는 암스테르담에서 예언 활동
을 시작했다(1533). 그의 가르침은 지금은 성령이 활동하는 시기라는 것, 하나님은 곧 재림하
셔서 심판하시리라는 것, [자신에게] 세례 받는 자는 구원받으리라는 것이다. 마티스에게 세례
받고 사도로 파송된 사람 가운데 얀 반 레이덴이 있었는데 그가 훗날 소위 “뮌스터와 세상의
왕”이 된다.
호프만과는 달리 마티스는 하나님이나 경건한 위정자가 행동하기를 기다리기보다 성도들의
행동 쪽으로 가운다. 그는 뮌스터가 재세례파의 수중으로 들어가자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에게
검을 주셨음과 자신이 말세의 에녹임을 확신했다 , . 또한 그는 스트라스부르가 아닌 뮌스터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곧 뮌스터의 개혁에 개입했다.
뮌스터 사건 : 마티스가 1534년 초에 얀 반 레이덴을 사도로 파송했을 때 뮌스터의 개혁
세력 가운데 하나였던 길드의 지지 세력인 베른하르트 로트만 그룹이 막 세례를 받았을 때였
다. 이미 1,400명이 세례를 받은 이 도시는 이 운동의 물결로 출렁였다. 그러나 이것은 제국
의 범죄행위로서 이 도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 하지만 도시는 독립을 목표로 움직
였다. 2월 23일 시의회 선거는 재세례파의 정치적 승리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얀 마티스는
뮌스터로 입성했다. 그리고 2월 27일 세례 받지 않은 거주민들은 강제 추방 아니면 강제 세례
를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7천 내지, 8천 명의 인구 중 2,000명이 넘는 수가 억지로 세례를
받았다. 재세례파는 6개월 동안 도시를 장악했다. 검의 사용에 대한 초기 뮌스터 재세례파의
호프만적인 입장은 얀 마티스의 등장으로 바뀌었다.
새 예루살렘이 된 뮌스터는 사도행전의 가르침에 따라 재산 공동체와 구제하는 집사 제도를
갖추었다. 마티스는 1534년 부활절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했다. 4월 5일 시민들은 도시 벽
에 줄을 서서 하늘의 징조를 기대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절망한 시민들은 외출 나온
마티스를 잡아 토막 내고 머리를 창에 달아 전시됐다. 24살에 불과한 얀 반 레이덴은 하나님
이 꿈에 마티스의 후계자가 되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말하고 마티스의 과부 디바라와 결혼했
다. 그는 구약에 따라 도시를 재조직하고 일부다처제를 도입했다. 그곳에 여자의 수가 4대 1
로 남자보다 많았다. 반대하는 여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반 레이덴은 16명과 동거했다.
대다수의 북부 재세례파들은 뮌스터 사람들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뮌스터는 “지금은 주
님의 보복의 때이므로 바벨론에서 도피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1535년 3월 수천 명의 사람
들이 하나님의 예언자가 그 도시에 있다고 믿고 네덜란드에서 이것에 응답했다.
네덜란드의 일부 재세례파는 더욱 공격적이 되어서 무장 저항했다. 300명의 재세례파는
1535년 3월 올데클로스터 수도원을 공격하고 일주일간 장악했다가 결국 군대의 반격에 절반
이 죽고 말았다. 당시 인근 비트마르숨의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1535년 4월 뮌스터 도시는 완전 봉쇄되었고 도시의 내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풀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다. 이미 600에서 700명이 도시를 탈출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1535
년 6월 25일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두 명의 시민이 배반했고 이틀 동안 도시는 피바다가
되었다. 반 레이덴의 시체는 외곽지대에 전시되었다.
뮌스터 참사 이후 얀 반 바텐부르크와 다비드 요리스 같은 인물들도 북부 재세례파를 이끌
었지만 누구보다도 차세대 지도자는 메노 시몬스였다.
메노 시몬스 : 1496년에 태어난 메노 시몬스는 1524년에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고 비트마
르숨 근처에서 교구를 돌보았다. 처음에는 성찬의 성례주의 입장으로 기울었다가 점차 호프만
의 재세례파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536년까지 가톨릭 사제직을 버리지 않았
다. 그가 접촉한 사람들은 비-뮌스터 계열의 평화주의 재세례파였다(필립스 형제). 그는 1530
년 한 재세례파의 죽음을 보고 유아세례의 성서적 근거를 조사한 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
다고 말했다. 하지만 1535년에 뮌스터 왕국에 대해서는 반대 설교를 했다. 그리고 1536년 1
월 오베 필립스에게 세례를 받고 한 여인과 결혼하여 두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낳고 죽을 때까
지(1561) 같이 살았다. 그는 1537년에 장로가 되어 흩어진 멜키오르파를 재조직하는 사명을
시작했다. 1542년에 당국은 그의 목에 100길더의 상금을 내걸었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결코
배반당하거나 체포당하지 않았다. 메노 시몬스는 분명 뮌스터 계열은 아니지만 호프만의 재세
례파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죽기 까지 호프만의 . 기독론(하늘의 육체)을 수용했다. 그는 또한
정치적 권세에 대한 호프만의 전통에 서 있다.
북독과 화란 재세례파는 멜키오르 호프만의 입장에 근거하며 그 기원에 스위스 재세례파의
역할은 없다. 오히려 남독 재세례파의 역할이 호프만 자신의 접촉으로 인해 어느 정도 인정된
다.
재세례파의 정체성
이렇게 서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여러 집단들을 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재세례파라는 명칭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이 서로 간의 많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묶어줄 수 있는 공통분모가 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이듯이 재세례파들 사이에 이와 유사한 핵심 요소가 발견될 수 있는가? 후브마이어의 <기독교 요리문답>(1526)은 재세례파의 조직신학 책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에 성인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 기원과 지역과 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톨릭도 아니요 프로테스탄트도 아님을 인정했다. 그들은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개념을 성도의 교통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재세례파의 교회는 성인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보이는 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신앙 공동체는 세례, 출교, 성찬, 물질 나눔이라는 4가지 표지를 갖는다.
재세례파는 내면(성령) 세례와 외면(물) 세례를 구분한다. 물세례는 신앙으로 회개에 이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들어오는 의식이다. 물세례는 그리스도에게의 복종, 그리스도와 형제자매를 위한 고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이동을 의미했다. 이렇게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이 “형제와 화해하기를 거부하거나 죄를 멈추는 일을 거부할”경우, 그는 출교를 당한다. 재세례파의 성찬 개념은 츠빙글리의 입장에 가까운 기념설이다. 이는 “한 형제가 다른 형제에 대해 빚진 사랑의 공적 징표와 증거”로서 그들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서로를 위해 자신들의 살과 피를 흘리기를 원한다. 이들은 철저히 성찬의 의미를 수평적으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새 교회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관계를 수립했다. 그리스도의 몸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서로의 물질을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재세례파는 프로테스탄트의 원리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그들은 프로테스탄트의 sola scriptura를 공유한다. 후브마이어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하는, 살아있는, 영원한 말씀이 우리를 권면하고 훈계하며 가르침으로써 우리는 그의 거룩한 말씀의 빛과 광명에 의해서만 항해하는 법을 안다.”이것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르다. 재세례파는 성서를 해석하는 영도 중요했다. 어쩌면 재세례파는 “성서만으로”보다는 “성서와 영이 함께”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과 문자와의 관계에서 이들은 자주 문자를 비약적으로 해석한다.
믿음을 통한 은혜로 얻는 구원의 문제는 상당부분 프로테스탄트의 입장과 같으나 구원의 결과인 “보이는 열매”에 대한 강조는 재세례파로 하여금 후기 중세 전통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들은 인간의 철저한 부패를 인정하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한 인간 행위를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은 철저한 제자도의 삶을 추구하는 의지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재세례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었다. 이것은 흔히 성령시대를 예언한 중세 전통과 관련한다(일례로 피오레의 요하킴). 따라서 성서의 예언서 연구와 성령에 대한 강조는 재세례파에게서 두드러진다. 이따금 꿈과 환상을 통한 직접 계시의 거짓 논란과 부작용도 있었지만 재세례파는 성령의 계시적 능력에 열려 있었다는 점에서 위험성과 동시에 또 다른 영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성서의 . 권위는 예언서를 예외로 만들 수 없다.
이와 같이 정리될 수 있는 재세례파의 신학적 정체성은 위에서 말한 세 유형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약간은, 때로는 심하게,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재세례파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형태로 고정되었다. 먼저 스위스 형제단은 그레벨 그룹에서 정치 신학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져온 후브마이어를 거쳐 쉴라이트하임 신앙고백에 이르면서 분명한 흐름을 유지했다. 다음으로 남독-오스트리아 재세례파는 초반 덴크와 후트가 뮌처의 영향 하에서 운동을 이끌었으나 농민전쟁의 실패 이후 모라비아의 후터파가 스위스 형제단과 유사한 재세례파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마지막으로 북독-네덜란드 재세례파 역시 호프만의 강한 영향력에서 출발하여 끔찍한 뮌스터 사건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 후 메노 시몬스와 그 후계자들인 메노파에 의해 재세례파의 정체성이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 사회가 16세기에 루터파, 개혁파, 앵글리칸으로 구분되듯이, 재세례파 사회는 스위스 재세례파, 후터파, 메노파로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스위스 종교개혁의 한계
취리히가 맨 먼저 종교개혁에 가담한 이후 연이어 베른, 바젤, 잔크트 갈렌이 종교개혁으로 돌아섰다. 1528년 1월 베른은 신학논쟁을 열어 진로를 결정하기로 하고 가톨릭 측과 종교개혁 측 사람들을 초청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부처와 카피토, 바젤의 오이콜람파디우스, 그리고 츠빙글리가 참석했고 파렐도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는 토론에서 승리한 종교개혁의 입장이 베른 당국에 의해 채택되었다. 뒤이어 잔크트 갈렌이 개혁 측으로 넘어왔고 이듬해 바젤, 비엘,샤프하우젠이 프로테스탄트에 합류했다.
츠빙글리의 꿈은 컸다. 그는 전 스위스의 개혁을 이루고 합스부르크가를 몰락시키는 것이었
다. 이런 개신교 세력 간의 정치적 동맹의 필요성 때문에 그는 1529년 마르부르크로 가서 루
터와 성찬 문제를 조율하려 했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 <간략하고 분명한 요점>(1531)이
다시 한 번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1531년 10월 가톨릭 주
들의 선제공격에 카펠에서 취리히 군대는 패배했고 츠빙글리는 전사하고 말았다. 카펠의 패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은 서로의 경계선을 긋는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취리히에서 츠빙글리의 뒤를 이은 사람은 불링거(1504-1575)였다. 브렘가르텐에서 태어난
그 역시 인문주의 출신으로 교회 수석 목사가 되었을 때 나이는 25세였다. 불링거의 여러 사
역 가운데 가장 탁월한 공로는 성찬 문제로 분열된 개혁파 교회들을 하나로 묶은 일이었다.
1536년 불링거는 바젤의 오이콜람파디우스의 후계자인 미코니우스가 작성한 제 1 스위스 신
앙고백서에 서명하도록 다른 도시들을 부추겼는바, 취리히, 베른, 뮬루즈, 스트라스부르 등이
여기에 가담했다. 이 신앙고백은 성찬의 수평적인 해석으로 치우쳤던 츠빙글리의 상징설 내지
기념설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불링거는 제네바의 칼뱅과 오랜 기간 타협한 끝
에 1549년 <취리히 협정>Consensus Tigurinus에 이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불링거는 취리
히뿐만 아니라 스위스 전체와 나아가 나라 밖에까지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바, 그의 뛰
어난 또 하나의 공헌은 1560년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일이다. 이 신앙고백은 독
일의 팔츠(1566),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1566), 헝가리의 데브레첸(1567), 폴란드의 센도미르
(1570)에서 채택되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제네바의 칼뱅의 등장으로 빛이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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