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1. 오순절과 그리스도(기독론 차원)

예림의집 2013. 10. 9. 15:38

 

1. 오순절과 그리스도(기독론 차원)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베푸신 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요약하면, 성령선물(성령세례)을 확보하신 다음 그것을 오순절 교회에게 주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본적 명제를 다음의 두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1)약속의 관점과 (2)성취의 관점에서 그것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1) 사복음서가 모두 세례 요한의 준비사역과 선포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기록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세례 요한 자신이 자기와 오실 메시아를 어떻게 대조시켰는가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요한복음 1:29-34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증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과 “하나님의 아들(34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정과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것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기 위해 보냄을 받은 반면에(31, 33절) 예수니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33절)”라는 데 있다. 공관복음도 요한복음과 비슷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 3:15-18; 마 3:11 이하; 막 1:7 이하 참조).”

무리들이 요한의 정체가 무엇인지, 특히 그가 메시아인지 여부를 몹시 궁금해 했다(15절). 요한은 여기에 대해 그 뿌리까지 뚫고 내려가 핵심을 잡아내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16절 이하)은 자기의 사역과 “오실 자”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세례를 공통분모로 하여 비교·요약한 것이다. 요한의 역할은 잠정적·예비적인 것이다. 그의 회개요청은 준비적인 것이다(3:4; 7:27 이하 참조). 따라서 그의 사역 전체는 물세례로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사역은 예비가 아니라 성취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역 전체는 요한의 예비사역이 실제로 성취도어 나타난 성령과 불세례로 요약되는 것이다.

17절에 보면 메시아 세례의 불이 멸망의 불임을, 아니 적어도 멸망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세례가 구원 혹은 멸망의 이중적 결과를 초래하는 종말적 심판을 내포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메시아의 성령·불세례는 세상이란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분리작업인 것이다. 약간 달리 표현하면, 성령·불세례는 역사의 종말에 세상이란 밭에서 추구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골라내시는 하나님의 대분리작업인 것이다(가라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참조, 마 13:36-43).

메시아의 성령·불세례는 이상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종말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오순절 사건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 종말적 의의를 이해해야 누가복음 전체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누가가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된 메시아 세례가 당장 일어나지 않고(심지어 요한까지도 그것이 당장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기대와는 달리 눅 7:18 이하 참조), 메시아 세례가 있기 전에 먼저 예수님 자신이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뒤이어 성령을 받으신 사건(눅 3:21 이하와 마 3:13-17; 막 1:9-11에도 거의 동일한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다는 기록이 요한의 성령세례 예언에 바로 뒤따라 나온 것으로 되어 있음)이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불세례가 오순절에 드디어 실현되었는데, 그것이 메시아의 백성에게 멸망세례가 아니라 축복세례가 되기 위해서는 메시아 자신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신 대속자로서 먼저 그들과 동일시되어야 하고(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은 예수께서 자기 백성과 똑같이 되신 사건임, 마 3:14 참조), 또 먼저 성령을 받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죄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를 받아야 했는데, 이 진노와 정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들보다 먼저 세례 받으시고 먼저 성령을 받으신 것이다. 그들이 성령을 성물과 축복으로 받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먼저 그들 위에 덮어 있는 저주를 제거하셔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성령을 받으셔야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요한의 사역과 세례, 예수님 자신이 성령 받으신 사건 그리고 오순절 사건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 점을 하나로 묶어 핵심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요한복음 1:33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절)”으로 지칭한 후,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니었다면 요한이 예수님을 이런 분으로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알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누가복음 12:49-51에 기록된 예수님 자신의 성언도 이 점을 전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부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막 10:38 이하 참조).” 이 구절 속에 누가복음 3:16 하반절과 17에 나타난 주제가 다시 명시되어 있다. 그 주제는 바로 “멸망의 불과 세례”인데, 이 주제가 분리시키는 심판을 지적하는 문맥 속에 들어 있다.

이렇게 될 대 누가복음 3:15 이하의 기록된 세례가 심판과 관계된 것임을 더욱 밝히 이해할 수 있다. 즉 누가복음 3:15 이하의 세례기록은 표시로서의 심판(예수께서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를 포함한 요한의 물세례)이나 혹은 실재로서의 심판(성령·불세례)을 언급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십자가로 절정을 이룬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하나의 “세례 시련(baptism ordeal)으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체는 메시아세례(성령·불세례)를 베푸시기 위해 친히 종말심판(정죄)을 당하신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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