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제 1장 약속과 부탁

예림의집 2013. 10. 8. 15:57

 

제 1장 약속과 부탁

 

  교회의 논쟁은 고통도 주고 희망도 준다. 그것이 고통을 주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논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논쟁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키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논쟁이 비정상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논쟁은 교회로 타협하게 하고, 공신력을 잃게 하고, 그리하여 세상에서 제구실을 잘 감당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교회의 논쟁은 세상의 논쟁과 다르다. 세상의 논쟁은 고작해야 불안한 타협으로 끝나기가 일쑤지만, 교회의 논쟁은 건설적으로 해결될 희망이 있다. 특히 논쟁 당사자들이 다 같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의 최종권위를 사수하고 있음을 서로 인정할 수 있을 때, 교회의 논쟁은 희망을 준다. 논쟁 자체가 적어도 그 최선의 순간에 있어서 주님에게 더 완전하게 순종하려는 목적으로 성경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될 때에, 진리 안에서 진정한 연합의 성광이 밝아오는 것이다.

1960년경부터 성령은사 논쟁이 교회의 초대의 이슈가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도 역시 이것은 전 세계 교회가 안고 있는 주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 문제야말로 교회에서 최대의 논쟁, 최대의 분쟁요소가 되어 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이 논쟁은 문자 그대로 격론이다. 이 문제를 놓고 견해들이 서로 강하게 대립되었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왔다. 이런 현상은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신자의 실제생활과 직결된 문제, 즉 신자의 체험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성령은사론의 격전지에 다시 한 번 뛰어든 책이다. 다른 책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이 책 역시 분열을 초래하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다. 저자는 오순절의 한 성령이 분열의 불씨로 교회에 강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일부의 책들과 달라서, 다음과 같은 굳은 신념에서 우러나온 책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약속하셨는데(요 16:13), 이 약속은 그 성취 면에서 가령 바울이 말한 확신, “즉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한다”는 확신(딤후 2:9)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자유! 이것은 가공이 아니라 실제이다. 이 실제적 사실에 내포된 약속과 아울러 성령이 아직도 교회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확신에 찬 기대감 -우리가 때때로 성경을 혼동하여 잘못 취급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땅히 시종일관 성령은사론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지배해야 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께서 말씀과 더불어 자유롭게 역사하신다는 것이 필자의 첫 번째 확신이고, 필자의 두 번째 확신은 체험 자체가 기독교 지식과 교리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신자들이 여차여차히 체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신자들의 체험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체험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각과 체험을 그리스도와 그 말씀에 사로잡혀 복종하는 위치에 두어야 한다(고후 10:5). 성경은 모든 참된 신자의 경험의 표준이다. 따라서 필자는 감히 독자에게 이렇게 당부해 두고 싶다.

  요즈음 성령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은데, 필자가 그러한 성령체험담의 서로 엇갈리는 혼선 위에 성경교훈의 서치라이트를 똑바로 발기 비출 때에, 독자는 그 혼란한 주장들을 성경의 빛에 비추어 평가할 뿐만 아니라, 독자 자신의 경험까지도 성경의 권위에 굴복시키기를 바라며 당부하는 것이다.

  이 책의 골자를 간추려 보면, 주석의 초점을 점차 좁혀 그 초점을 성령은사론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제 2장에서는 성령론을 전체적·포괄적으로 고찰하여 간추려 보았고, 제 3장에서는 한 걸음 더나가서 성령은사론을 다각도로 개괄하였고, 제 4장에서는 예언은사와 방언은사를 중점적·구체적으로 다루었고, 제 5장에서는 예언과 방언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가 하는 문제를 취급했다. 마지막 제 6장에서는 앞장들의 내용을 간추려서 오늘날 새롭게 대두된 성령은사론의 기본 문제들과 연결시켜 보았다.

  필자가 이 책을 쓸 때 염두에 둔 독자층은 특별히 전문적인 신학자들이나 신학도들만이 아니라 성경에 취미를 붙이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모든 성경연구가들을 포괄한 자들이다. 이 책이 필자와 배경과 관점이 다른 신자들의 손에도 들어가리라고 본다. 바라기는 이 책이 그들을 설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성경을 바로 깨닫기 위해 애써서 진지하게 노력하도록 자극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이렇게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까닭에 각주를 거의 전부 생략해 버렸고, 요즈음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문헌들을 인용하지 않았다. 이미 나온 책만도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픈데 지금도 계속 이 방면의 책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저자가 이런 책들을 일일이 인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명한 독자들은 저자가 어느 부분은 누구에게 이존하고 있으며, 또 필자와 다른 견해는 누구의 견해인가를 알아차릴 수 잇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군데군데 딴 학자들의 견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불가불 견해를 달리해야 할 경우는 문헌들을 더 많이 조심스럽게 읽고, 그 내용을 공정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성경구절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도록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자들이 성경을 직접 참고해 나가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독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간혹 혹은 흔히 이 책의 내용에 문제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안다. 조금도 복잡하지 않은 쉬운 대답과 토론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실망할 것이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사수하는 신자들이 성령은사론에서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사실만 보더라도 성령은사론이 본래 난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난제인 까닭에 쉬운 해결을 기대한다는 것은 복잡한 상황을 복잡하지 않은 것으로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필자의 견해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다시 당부할 것은 책이 안고 있는 단점들을 그냥 덮어둘 것이 아니라, 깊이 지적하고 사고하되 그와 동시에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이 책에 내려주실 장점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평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