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IV. 요한복음 7장 37절-39절

예림의집 2013. 9. 9. 16:43

 

IV. 요한복음 7장 37절-39절

 

요한복음 7:37-39의 내용은 사복음서 중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등장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본문은 구속사와 구원서정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 중요하다. 본문을 다루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표현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매우 은유적인 화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난해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본문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판단을 갖고 본문에 들어가려 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37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즉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해결안을 제시하셨다. 37절만으로는 어떤 정황과 이유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예수님의 의도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어서 말씀하시는 38절을 통해 37절의 말씀은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비교적 구체적인 동작을 지시하신 명령은 38절에서 예수를 “믿다”라는 의미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믿는 결과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시 원래의 수사로 돌아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 하셨다. 직설과 은유를 오가는 표현이긴 하지만 39절에서 요한이 해주는 일종의 주석이 있기에 이해의 혼란은 막을 수 있다. 요한의 표현대로, 38절의 수사는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정리가 된 듯하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비교적 짤막한 말씀을 하셨지만,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빌려 당신의 말씀을 뒷받침하시고 계시다. “성경에 이름과 같이”가 예수님의 말씀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이 부사절을 배고 읽으면,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가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 이름과 같이”는 성경 어딘가에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할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거나 기대하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성경이 어디인지 찾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그 구절이 어디인지 찾기에 앞서, 보다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 여기에서 “성경”은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같이”는 특정한 구절보다는 구약성경 성경 전체의 사상이 그렇다는 의미를 보다 더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수를 믿으면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직접적인 구절이나,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임한다”는 간접적인 암시라도, 구약성경 중 어떤 특정한 구절을 예수님이 마음에 품고 말씀하슨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예수님이 “성경”을 언급하신 것은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구약성경이 의도하고 있는 핵심사상과 일치함을 확인하는 강조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 짧은 문맥 속에서 “성경에 이름같이”라는 표현을 하심으로써, 우리는 여기에서 구약계시가 어느 방향으로, 적어도 어떤 목표와 효과를 향하여,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게 된다. “믿다”, “성령이 임한다”는 모두 구원서정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이, 즉 구약성경이 구원서정의 일이 진행되는 것이 구약성경의 성취가 된다. 그리고 그 성취는 39절 요한의 주석을 통해서 구속사의 성취와 맞물려 있으며 아직은 그 성취는 미래의 사건임을 말하고 있다.

39절에서 “영광”은 기독론에서 말하는 승귀(exaltation)에 해당된다. 즉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는 아직 부활과 승천의 일이 진행되기 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 즉 비하(humiliation)를 떼어 놓고 영광만을 생각할 수 없다. “영광”한 단어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먼저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라야 성령을 받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요한이 첨부하는 주석이다.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일은 구속사에 속하는 일이다. 아직은 이 본문에서 성령이 오는 일(행 2장)이 구속사적 성취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말씀이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원서정의 일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가 먼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있어야 하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일이 먼저 진행되어야 구원서정의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짧은 구절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구속사와 구원서정 사이의 중요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구약의 계시는 구속사의 성취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성취에 근거한 구원서정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바꾸어 말하면, 구속사의 성취가 구약이 알고 있는 전부가 아니라, 구원서정의 사역을 구속사의 뗄 수 없는 연관성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말이다. 구원서정이라는 것이 마치 구약은 모르는 일인데 갑자기 신약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구원저성을 구속사의 성취의 결과 또는 효과로 보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 특징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서정을 논해야 할런지에 대해 중요한 방법론적 단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