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제 2강 9월 3일(강웅산 교수)

예림의집 2013. 9. 3. 15:27

 

제 2강 9월 3일(강웅산 교수)

 

구원서정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구원론은 좁은 영역이다.

-구원서정을 논하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구원의 순서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구원론 할 때와 성령론 할 때 그 범위가 다르다. 성령론 안에 구원론이 일부를 차지한다.

-구원론은 개인의 구원문제만을 다룬다.

-성령론은 그 범위가 훨씬 넓어, 신론, 성례의 문제, 종말론적 사역, 생태 신학 등을 다룬다.

 

*구원론이라는 학문을 왜 하게 되었는가?

-구원론에 해당되는 내용은 결국 신약 성경(신약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

-구원론은 조직신학에서 나오는 학문이고, 구원서정은 순서라기보다는 구원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구원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의 일 자체가 구원서정 영역에 해당된다.

-신약 성경 자체가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4복음서는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원의 일을, 사도행전부터는 그 구원을 어떻게 적용하느냐를 다루고 있다.

-전자의 것도 구원이요, 후자의 것도 구원이다.

-구원이란 한 단어로 두 개의 별개의 사건을 부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의 사건,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는 구원

-이것이 우리가 쉽게 웃으면서 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라 이 점을 계속해서 염두해 두고 공부해야 한다.

-성경이 그러한 형태를 지니고 있고, 성경이 하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성경은 구원을 “복음서를 통해서 들어나는 완성된 구원”과 “행전을 비롯한 후반부에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서 사도들이 나가서 증거하는 구원” 즉, 기독론적 차원의 구원과 구원론적 차원의 구원을 나타내고 있다.

 

*사도행전부터 이후의 내용들이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서정의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적용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회의 기능과 사역 도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서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가 구원서정의 사역을 어떻게 해 왔느냐 이다.

-전통의 차이는 곧 구원서정의 차이이다. 구원을 소개하는 방식의 차이에 의해서 전통이 나누어졌다.

 

*개혁주의의 역사는

-어느 다른 전통보다도 구원서정 논의에 있어서 활발했던 역사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주제가 “구원론”이다.

-종교개혁 정신이 가장 투철한 전통이기에, 이 정신이 구원서정에 있어서 로마 케톨릭 교회가 잘못되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투철하다고 하는 개혁신학의 전통은 구원론 논의를 가장 많이 했다.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Kuyper

Hoeksema

Murray

*칭의

-신 칼빈주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

-칭의가 영원 전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중생

-인간의 전적타락을 강조

-칭의는 영원에서 시작한 것임으로 현실에서 거론될 수 없다.

 

 

 

 

*소명(소명)

-웨민을 충실하게 반영

-중생과 소명을 분리하지 않고 먼저 소명을 거론한다.

-성령이 우리를 중생시킬 때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매체로 사역하신다.

-바빙크와도 유사점이 있다.

-결론은 정통적인 개혁신학 전통 신학자임에도 구원서정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구원서정 논의의 문제점

①성경의 지나친 확대

-성경 속에서 하나의 구원서정을 발견할 수는 없다.

-성경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다.

-로마서 8:30 조차 구원서정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구원서정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공식을 주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의도는 아니다.

-구원서정을 논한다는 자체가 별개의 구원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구원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러 말로 피차 권면하라”

-같은 한 구원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다.

-포도송이나 다이아몬드 같이.

-구원의 표현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러나 동일한, 다양한 구원이다.

②지나친 단순화

-구원서정의 논의가 단순화 작업일 수밖에 없지만, 입체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나, 하나가 구원서정의 중요하지만 너무 몰입되어 전체 그림에서 이탈되어 나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다.

-전체(그리스도)에서 너무 이탈되어 버릴 수 있다.

③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론적 논리의 지배

-17C 개혁 전통주의 신학은 상당이 사변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체계가 상당히 영향을 주던 시기.

-택함이 소명을 낳고, 소명이 칭의를 낳고, 칭의가 회개를 낳고,

-원인과 결과로 보는 자체가 그리스도에서 떨어져 나온 별개의 논의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못하면서 별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④지나친 주관화

-구원서정 논의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 차원의 구원을 관찰하고 적용, 상담, 지도하는 정황에서 시작되었다.

-구원론이 학문화 되는 것은 종교개혁 이후에 교인들을 교육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좀 더 바람직한 질문은 “내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에 내가 지금 어떤 구언의 은총을 누리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함이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 없는 은혜, 은혜만을 위한 은혜가 될 수 있다.

-구원사역을 지나치게 주관화 시키는 데서 오는 경우이다.

-내가 추구하는 은혜가 실지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지 의식되어야 한다.

-그 은혜를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느냐, 높이느냐, 그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다음 주 부터는 대안을 찾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