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팡이(4:20)
앞에서 살펴본 마지막 말씀을 통해 모세에게 사역의 동반자로 아론을 허락하시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함게 하심과 이적의 권능을 확인시켜주는 지팡이까지 허락하시자 모세는 드이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다.
20절은 애굽을 향해 가는 모세의 모습을 그리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언급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자았더라." 사실 이 지팡이는 모세가 들고 다녔던 그 자신의 지팡이였다(참고, 4:2).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여서 사역지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내레이터는 이것을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부르고 있다. 유대교 해석자들은 이 표현 속에서 이 지팡이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아담부터 계속 전수되어 모세에게 이르렀다는 전승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이 전승은 어쩌면 오경 자체의 연대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칠십인경은 4:20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손에 받은 지팡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은 이런 전승을 반영하고 잇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은 이런 유대교의 전승들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내러티브 기법상 이 표현은 모세의 달라진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모세의 지판이은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냥 그의 지팡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것은 이적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모세 역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냥 미디안의 한 양치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그는 자기 형과 애굽 왕 바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4:16; 7:1; 14:31; 19;9; 참고 11:3).
이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표현이 소명을 받아들인 이후에 모세의 달라진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내레이터가 오경 내에서 다시는 이 지팡이를 이런 칭호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비록 17:9에서 이 칭호가 다시 한 번 언급되지만 그것은 모세가 출애급 이후 처음으로 이방인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를 격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칭호를 사용할 때 뿐이다. 그 외에 이 칭호는 4:20에서 그의 달라진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사용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지팡이가 다시는 이런 칭호로 내레이터에 의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지팡이가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지팡이는 그냥 흔한 지팡이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분이었다. 이 지팡이가 이적을 일으키는 경우는 오직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그런 용도로 쓰시고자 할 때 뿐이었다. 그 외에는 이 지팡이는 그냥 나무로 된 하나의 지팡이일 뿐이었다.
이 점은 모세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지명하고 사용하실 때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이 땅의 많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권능을 자기 자신의 권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사역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자기의 권능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자의 사역이 된다. 지팡이가 결코 교만할 수가 없듯이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는 자들도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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