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출사표(3:7-10)
모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킨 하나님은 이제부터 당신께서 모세를 통해 하실 일을 천명하신다. 하나님의 출사표는 크게 7-8절과 9-10절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두 부분은 그 내용이 거의 같다. 7, 9절은 이스라엘의 고나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을 담고 있고, 8, 10절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담고 있다.
우선 7, 9절의 말씀은 2:23-25을 연상시킨다. 차이점이 있다면 2:23-25은 내레이터의 객관적인 서술인 반면에 3:7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반응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 느끼시는 반응은 "정녕히"라는 표현에 반영되어 있다(히브리어로는 "보다"라는 동사의 부정사 절대형이 사용됨). "정녕히 보았다(라오 라이티)"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고토을 목도하고 눈이 부릅뜨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제 3장의 입장에서 보신 것이 아니라 스슬 체휼하듯이 보신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마음판에 새기듯이 생생하게 목격하신 것이다. 둘째, "내 백성"이란 표현 역시 하나님의 주관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내 백성" 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내 백성"이란 용어는 출애굽기 전체를 통하여서 아주 중요하다(5:1; 7:4, 16; 8:1, 20-23; 9:1, 13, 17; 10:3).
이스라엘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인식은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을 촉발한다. 8절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1인칭으로 서술하고 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사역의 대리인으로 모세을 보내실 것을 선언하신다. 비평학자들은 하나님이 직접 구원을 하시겠다고 하는 8절과 모세를 대리자로 보내시겟다는 10절이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너무나도 편협하다. 사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이란 것이 대게 이러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구원 사역을 위해 인간 대리자를 세우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와 인간 대리자를 사용하신다는 두가지 언급은 출애굽기 전체를 통하여 흐르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사역을 하는 주체가 하나님과 모세 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 둘을 향한 이중적인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출애굽기 14:31과 19:9 등은 이 두 가지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듯이 그 종 모세를 믿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니의 출사표에 나타난 사항 중 한 가지 더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으로부터(from)'의 성격을 가질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것을 향한(to)'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구원은 빈 공간을 향한 단순한 해방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구원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투기"나 다름 없을 것이며, 해방은 "불안(Anges)"의 토대가 될 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런 막연한 열린 공간이 아닌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가고자 하신다. 이 아름답고 좋은 땅으로의 인도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창 15:18-19)의 완성ㅇㄹ뿐만 아니라 새 창조를 위한 토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주의 동산(창 13:10)과 같은 이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쓸 사명을 갖게 될 것이다.
모세가 어느날 하루 동안 경험한 사건은 그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다. 애굽 왕자에서 어느 광야 미디안 부족의 양치기가 되었던 모세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양치기이자 지도자로 거듭난다. 광야의 보잘것 없는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아무리 평범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평범한 떨기나무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모세의 삶을 바꾸었듯이, 평범한 모세 역시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인류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기는 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성도는 평범 속의 비범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과, 놀라운 새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는 맘으로 우리의 평범을 사랑해야 한다. 평범은 비범의 숨겨진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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