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구속사적 영웅의 등장(2:23-25)
아들의 출산과 작명에 대한 언급 이후로 내레이터는 다시 한 번 40년의 기간을 거너뛴다. 출애굽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결코 무대 중심에 서지 않으셨다. 아니 숨어계셨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독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하나님과 역사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숨어 있으시되 결코 활동하지 않으신 분은 아니시다. 1:20-21에서 산파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야기와 2:5의 두 종류의 시녀에 대한 분석에서 이미 어느 정도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숨어 있는 중에도 정작 필요한 일은 전부 다 해오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띠지 않는 그 순간에도 역사의 경로가 당신의 의지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으셨다.
사도행전 7:30은 "사십 년이 차매"라는 말로 모세의 이 40년의 세월의 경과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차매"라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는 폴레로오라는 단어의 수동태이다. 이 단어는 "(예언들을 통해) 정해진 끝(혹은 목적)에 이르게 하다, 성취하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단어는 사전들이나 주석들이 흔히 해석하듯이 막연히 "시간이 경과하다"란 의미가 아니라 훨씬 더 의미가 충전되어 잇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전혀 안 계시고 활동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역사의 매 순간을 주관하고 계셨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40년의 세월을 지나 진정한 역사의 영웅이신 하나님께서 베일을 벗고 등장하신다. 모세가 한숨을 쉬면서 흘러보낸 40년의 세월의 틈을 뚫고 진정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23절은 "애굽 왕은 죽었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떤 학자는 삼상 16:1-3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불필요한 죽음을 당치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출애굽기 4:19에 하ㅏ님은 모세에게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안심시키신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인 다음이다. 바로의 죽음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므로 아마 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굳이 여기에서 나오는 이유는 옛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4-2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보고 움직이기 시작하시는 것을 네 문장으로 표현하고 잇다. 원문을 살리기 위해 사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보셨고
하나님이 아셨다(사역).
이 네 문장 모두에 "하나님"이란 주어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통상적인 히브리어 문장 속에서는 이처럼 주어가 동일한 경우 주어는 한번만 표시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보시고, 아셨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본문에서는 매 동사마다 "하나님"이란 주어가 반복된다. 이러한 독특한 표현양식을 통해서 내레이터는 "하나님"이 이제 "정말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본문은 히브리어 문장을 살려 읽으면 "하나님"이 "벌떡" 일어나서 역사 속으로 성큼 성큼 들어오시는 느낌이 확 살아난다.
필자가 이 책의 기초가 될 글을 쓰던 당시 개역한글판 성경은 이 네 번의 하나님을 한번만 번역하였다. 다행이도 개역개정판 성경은 이 중대한 오류를 수정하여 하나님이란 단어를 네 번 다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성경의 번역자들이 본문의 수사법적인 요소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고려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본문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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