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예림의집 2012. 10. 12. 10:10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성경 연구를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이 신학자는 또한 조직 신학의 분야에도 개척자적 업적을 이룩하였다. 대부분의 초대 기독교 신학은 이단 사상들을 반박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오리겐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을 위한 전반적인 지성적 기본 골격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그의 사역 초기에 이미 <제일원리(Fist Principles)>를 저술하였으나, 그후 이를 다시 개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저서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층들을 겨냥하여 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사상들과 개념들을 취급하고 있다. 오리겐은 농부들의 소박한 신앙을 무시하지 않았으나, 동시에 기독교가 문명과 문화의 형성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성에도 스스로의 존재를 정당화 시켜야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의 기초는 항상 가통릭 교회에서 전파한 복음이었다. 그러나 아직 교회에서 명백하게 저으이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보다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이 상당히 과감하였으므로, 그의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후세인들도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하였다.

  오리겐의 시야는 마치 그 끝이 없는 듯 보인다. 그는 사탄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언젠가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시 회복할 때가 올 것이라고 까지 가르쳤다. 이때 지옥은 텅텅 비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주장 때문에 그는 많은 비판과 경원을 받게 되었다. 물론 교회 역사상 많은 인정많은 이들이 언젠가 언젠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모든 죄많은 인간들의 반역 위에 승리할 것을 꿈꾸었다. 그런데 오리겐의 실수는 이러한 꿈을 교리로 정립시키고자 한 데 있었다. 정통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꿈을 교리로 전환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상은 항상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결과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찰스 윌리엄스가 그의 저서 <비둘기의 하강(Descent of Dove)>에서 시사했듯이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기어코 지키시는 분이시고,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존재라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영구적인 배반과 부인은 가능한 사건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옥 역시 항구적인 것이다. 오리겐은 이 점에서 지나치게 나간 것이다. 그는 단지 인간의 소원 사항을 교리로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리겐의 모든 소원과 사색은 254년 그 끝을 맺게 되었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시 오리겐은 특별한 표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투옥되어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게 되었다. 당국자들은 그의 생명은 겨우 붙어있게 하면서 가능한 한 최악의 고통을 가했다. 251년 데키우스의 공포의 시대가 끝나고 오리겐도 석바오되었다. 그러나 이미 가해진 고문은 이제 이 백발의 노학자를 끝내 살려두지 않았다. 그는 삼년 후 두로(Tyre)에서 69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오리겐의 광범한 지성과 클레멘트의 포용성은 항상 정통 기독교 학자들과 신자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대상이었다. 헬라적 환경에 기독교를 적응시켜보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과연 지나친 실험이었을까? 헬라 철학의 용어와 개념들은 기독교 본연의 영역까지 침입하여 원래 복음을 사로잡아 버렸는가? 신시란 기도교인들은 심각하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아는 바대로 이 세상을 향한 사랑은 계시된 신앙의 신조들을 오염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오리겐이나 클레맨트가 신앙을 변절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들이 비록 그의 청중들의 정신적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가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의 몸을 취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도 역사 속에서 모든 인간들과 문화와 형상을 취하였다.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했던 바울처럼 클레멘트는 거듭하여 강조하였다. "헬라인들을 구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우리들도 헬라인들이 되어야 한다. 각자들이 익숙해 있는 지혜의 세계로 우리들은 뛰어들어서, 그들이 자기들의 사상 체계를 통하여 가장 용이한 길을 통해 진리에의 확신과 신앙에 이를 수 있도록, 그들이 요구하는 형태의 지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평가해 볼때,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기독교를 위해 인문주의를 간직해 주었던 인물들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들 뒤를 따랐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아타나시우스, 닛사의 그레고리, 요한 크리소스톰등-의 생애와 사역이 가능하도록 그 길을 닦았다. 그리고 이들은 고전 문화의 정수가 교회 안에서 그 거처와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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