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우물가에서(2:15후-22)

예림의집 2012. 10. 9. 18:13

우물가에서(2:15후-22)

 

  애굽에서 도망을 친 모세는 미디안 땅에 이르러 한 우물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기 아내가 될 여인을 만나고,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살게 된다. 모세가 우물에서 아내 십보라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는 우물가 이야기 타입신(type scene)을 따르고 있다(창 24장; 29장; 요 4장). "타입신"이라는 것은 에피소드에 담긴 사건들의 구성이 이미 정해진 정형화된 틀을 따라서 진행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타입신이라는 내러티브 기법을 가용하여 내레이터가 얻는 효가는 "등장인물의 묘사, 플롯의 전개, 주제의 강조"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락의 타입신은 모세의 미래의 운명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2:17에서 개역개정판은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서"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돕다"라는 번역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원문은 야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의 히필형은 흔히 "구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2:19에서 르루엘의 딸들은 모세의 이러한 구원을 아버지에게 묘사하면서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라는 말하는데, 이때 "건져내다"라는 단어는 나짤이다. 이 단어 역시 "구원하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우물가 타입신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구원자로서의 모세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르우엘의 딸들이 모세의 도움에 대해서 묘사할 때 그를 "한 애굽 사람"이라고 징한 것은 흥미롭다. 이것은 모세가 처음 갈대 상자 속에서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녀가 그를 보자마자 "히브리 사람의 아이"라고 말한 것과 대조된다(2:6). 모세는 히브리인에게 연민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의 겉모습은 어느새 애굽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탄생할 때부터 40년의 세월은 그를 히브리인의 모습에서 애굽인의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이제 그가 다시 애굽인의 탈을 벗고 히브리인들의 구원자로 환골탈퇴하기까지는 40년의 세월이 더 걸린다.

 

타입신의 전형을 따라서 르우엘은 모세를 집으로 초대하며, 거기에서 모세는 그의 딸 십보라와 혼인을 맺는다. 그리고 아이을 낳아서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짓는다. 그 이름의 뜻은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란 뜻이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나그네"라고 짓고 싶을까? 그만큼 모세는 쓰라림을 안고 살았떤 것 같다. 한 때 애굽의 왕자로서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누렸을 자신이 이제 양의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참고, 3:1). 올라간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낮아진 자리는 더 비참해 보이는 법이다. 아마 게르솜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의 이런 한탄이 담겨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