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탄생과 아이러니의 승리-④
모세의 운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지경에 놓여 있었는가 하는 것은 6절에서 바로의 딸이 모세를 보는 순간 바로 히브리인의 아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원택대로 하자면 히브리인 남자 아이인 모세는 그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모세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먼저 느꼈다.
4절에서 "멀리"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재치있게 활약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녀는 바로의 딸이 모세에게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그의 히브리적 정체를 인식하는 순간, 머리 속에 다른 어떤 생각이 스며드릭 전에 그 장면 속으로 뛰어들어와 "히브리 유모"를 구해주겟가도 제안한다. 바로의 딸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모세는 기가 막힌 티이밍의 연속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아무리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고 해도 바로의 딸의 성품이 연민과 자비로움을 갖추지 못했다면 모세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성품은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드러난다. 첫째,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히브리 여자 아이가 갑자기 자기 앞으로 튀어와서 "히브리 유모"를 구해줄 것을 제안할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둘째, 바로의 딸은 모세가 히브리인 남자 아이라는 점을 파악하고도 자신이 아이을 보고 느낀 연민의 감정에 순응한다. 창세기 43:33-34에 의하면 애굽인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때 모세에 대한 그녀의 연민은 돋보인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히브리인 남자 아이들과 관련하여 내린 칙령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살려준다. 넷째, 앞의 창 43:32-34의 내용을 고려할때 히브리인 아기를 애굽인 유모에게 맡기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바로의 딸은 히브리 아이 모세를 히브리 유모에게 맡김으로써 이런 위험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배려를 한다.
결과적으로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다시 돌려 받았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그 아이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아이를 갈대상자에 고이 넣어서 떠나보냈었다. 그러나 그 떠나보낸 아이가 그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너무나도 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가장 극적인 것은 아직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의 딸의 말이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9절)." 그녀의 이 말을 통해서 지금까지 바로가 펼쳐왔던 모든 악한 책략은 완전히 와해됐다. 그는 히브리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물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오히려 히브리인들의 구원자가 돌 남자 아이가 살아남는 통로가 되었다. 게다가 이제 자기 딸의 결정으로 인해서 그는 자기의 원수가 될 아 남자 아이를 자기 돈을 들여가며 키우게 되었다.
이처럼 어떤 등장인물이 자신이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소위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고 부른다. 이 극적 아이러니의 실현을 통해 바로는 자기 가슴에 꽃힐 비수를 스스로 갈은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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