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탄생과 아이러니의 승리-③
나는 창세기 21:16의 "멀리"에 대한 이 해석이 궁극적으로 출애굽기 33:7, 그리고 현재 우리가 다루고 있는 본문인 출애굽기 2:4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누이가 갈대 상자에 담겨 있는 자기 동생을 지켜보기 위해 떨어져 있는 거리인 "멀리"라는 거리 역시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나타낸다. 그녀는 자기 동생의 정체가 자기로 인해 들통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만약 그에게 자기가 도와 줄 수 있는 무슨 일이 생긴다면 즉시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의 "멀리"라는 단어는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사이의 기가 막힌 균형을 나타내주기 위해 선정된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모세는 자기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기 누이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모세를 지켜보는 가운데 놀랍게도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한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하필 이때에 다른 누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대적자인 바로의 딸이 갈대 상자를 발견한다. 이제 모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모세가 히브리인 남자 아이인 것이 들통나는 순간 그의 목숨은 끊어져 죽고 말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의 정성은 결국 이 허무한 결말을 위한 것이었던가?
이 절체절명이 순간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다시 한 번 놀라운 방식으로 성취된다. 이 구절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는 간발의 차이로 구원이 주어지는 미묘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두번 언급되는 "시녀"란 말이다. 개역개정판은 이 두번의 시녀를 전부 다 같은 단어로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히브리어로는 이 두 시녀는 서로 다른 단어로 되어 있다.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라는 문구에 사용된 시녀들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아로트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두번째의 시녀, 즉 "시녀을 보내어 가져다가"란 문구에 사용된 시녀는 아마라고 되어 있다. 굳이 구분해서 번역을 하자면 첫번째의 "시녀들"이란 표현은 그냥 그대로 번역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두번째이 "시녀"란 단어는 굳이 좀 더 좋은 한국어 표현을 찾아보자면 "몸종" 정도가 될 것이다. 즉 첫번째의 "시녀들: 보다는 두번째의 시녀인 "몸종"이 심리적으로 바로의 딸과 더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두 종류의 시녀와 바로의 딸 사이의 관계의 거리는 모세의 운명과 직결된다. 만약 첫번째의 시녀들이 모세를 발견했다면 그의 운명은어찌 되었을까? 아마 이 시녀들은 히브리인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시행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모세는 바로의 딸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번째 부류의 시녀, 즉 그녀의 "몸종"에 의해서 물에서 건져졌다. "몸종"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섬기는 주인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직접적인 주인인 바로의 딸의 어떤 판단과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모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녀들"과 "몸종"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모세의 운명을 갈림길에서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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