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기독교 서적의 목록

예림의집 2012. 9. 19. 16:33

기독교 서적의 목록

 

  이러한 요소들과 또 다른 요소들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는 자연스럽게 정경에 속하는 기독교 서적들의 목록들을 작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보다 신속하게 앞당기도록 하였던 몇몇 특정 사건들이 있었다.

 

  A.D. 140년경 흑해 연안 시노페(Sinope) 출신의 부유한 선주로서, 여러 곳을 널리 여행한 경험이 있는 마르키온(Marcion)이라는 자가 로마에 도착하였다. 마르키온은 비록 감독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였던 영지주의 교사 케르도(Cerdo)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존재인 반면 그리스도 신자들의 하나님은 계시된 존재라고 케르도는 주장하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단지 정의만을 추구하는 존재인대 반하여, 새 언약의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키온은 이러한 케르도의 구별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분노에 가득한 존재이자, 악의 창조주라고 정의하였다. 이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인들만을 사랑하고 있따. 그는 다른 모근 인류는 파괴시켜 버리고자 한다. 반면에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다 사랑하고 포용하는 은혜와 사랑의 근원으로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였다.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구약 전체를 부인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독자들을 차별하여 우대한다고 생각하였던 마태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등의 신약 성서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자기의 주장에 반한다고 생각되었던 목회서신(디모데서들과 디도서) 등 기타 신약의 책들까지도 부인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 남은 것은 누가복음 일부(탄생 사건의 기록은 제외)와 바울의 10개 서신들 뿐이었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만이 예수님의 복음을 오염시키지 않은 유일한 사도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처럼 오류에 찬 마르키온의 주장을 로마 교회는 엄하게 정죄하였고 그는 A.D. 144년 교회로부터 추방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마치 정통 교회와 비슷한 외양을 갖춘 마르키온 파의 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목사와 의식들을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성찬식 때 포도주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의 금욕적인 생활 태도에서 연유한 모습이었다. 일부 마르키온 파의 교훈은 여러 영지주의자 집단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반대로 영지주의파들도 마르키온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어쨌든 마르키온의 영향은 이탈리아 전체와 아르메니아, 아라비아, 이집트 까지도 파급되었다. 특히 동방에서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영향력을 생사하였는데, 다마스쿠스 인근 지방의 경우, 4세기까지도 마르키온 파의 촌락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마르키온의 출현이 정통 교회에 이중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즉 바울의 형상을 딴 신약의 주장과, 구약 성서의 전면 부정의 모습이다.

  바울에 대한 마르키온의 존경은 거의 우상 숭배에 버금하는 모습이었다. 마르키온은 바울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율법에의 대적자이며, 복음의 대변인이었다. 그야말로 교회내 최고 지존의 인물이었다.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께서 천국으로부터 이 땅에 두번 하강하셨다고 생각하였다. 한번은 고난당하고 죽기 위해서, 두 번째는 바울을 부르시고 그에게 진정한 그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하여. 천국에서 바울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마르키온은 생각하였다.

  복 아프리카 출신의 법률가 터툴리안이 통탄한 대로, 이제 바울이 이단자들의 사도가 된 모습이었다. 물론 마르키온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바울의 가르침들을 자기 입장에 유리하도록 외곡시켰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교회의 고민이 전혀 경감된 것은 아니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마르키온의 주장을 일체 인정치 않으면서 바울의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마르키온의 잘못된 주장 때문에 전혀 무시해 버리기에는 바울이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너무나 심대하였다. 바울 사도의 서신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그냥 포기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목회서신들과 다른 서신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을 다시 회복시켜 이들을 한데 묶고, 사도행전을 교량으로 하여 네개의 복음서들과 연결시키는 길을 택하였다. 교회는 바울이 설파한 하나님의 은혜를 귀중히 여기는 동시에, 구약을 저버리는 것은 자살적인 행위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옛 언약의 배경 없이 새로운 언약이 그 의미를 충분히 가질 수 있겠는가?

 

  구약을 계속 간직함으로써, 교회는 두 가지 중요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첫째로, 교회는 기독교인의 신앙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양자 모두 조화를 시텨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마르키온의 신앙은 너무나 쉽고 값싼 것이다. 그는 구약을 제거시킴으로써 오직 사랑을 기독교의 중심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의 요구를 무시하는 사랑은 진정한 기독교의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마르키온이 존경한다고 했던 바울이 외친 사라으이 모습도 아니었다. 바울은 십자가를 통하여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뿐만이 아니라, 그의 엄격한 공의의 모습을 함께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그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자들을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이 되셨다고 가르쳤다(롬 3:25, 26). 바로 이것이야말로 마르키온이 미쳐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의 모습이었다.

  둘째로, 교회는 구약을 계속 간직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위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기독교는 단지 과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거나, 혹은 단지 예수라는 이름의 역사적 인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교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역사 그자체 속에서,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하나님 자신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인간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오셨다고 미든 신앙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교이다. 또한 이는 곧, 기독교인들의 신앙이란 인간 존재의 온갖 고민들과 의문들에 직면하면서도-우리 인생들 속에서 던지는 모든, "하나님, 왜 이러한가요?"하는 질문들- 하나님께서 무언가 우리들을 위해 선하고,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고 포기하지 않고 의지하는 것이다.

 

  만약 이단자 마르키온이 교회로 하여금 신약 성경(New Testament)을 작성해야 한도록 이끌었다면, 또 다른 말썽꾸러기 몬타누스(Montaus)는 이 성경을 온료시켜 더 이상 추가하지 못하게 조처하도록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역사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구  (0) 2012.09.25
하나님으로부터의 생생한 음성  (0) 2012.09.19
외경의 문제  (0) 2012.09.19
지식의 위험  (0) 2012.09.14
[스크랩] 지식의 인간들  (0) 201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