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은 주석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출애굽기 산책"이다. 산책을 할 때 우리는 맞닥뜨리는 모든 순간, 모든 광경에 다 주목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어떤 것들은 좀 더 관심을 갖고 유심히 쳐다본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정말 몰두해서 살펴본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나는 출애굽기의 여러가지 사항들을 산책하듯이 살펴 볼 것이다. 어떤 본문은 슬쩍 지나칠 것이며, 어떤 본문은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며, 어떤 본문은 정말로 세세한 분석을 가할 것이다. 아주 가끔은 나는 본문의 의미를 좀 더 생생하게 드러내주기 위해 내가 그 본문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넣는 파격을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난감한 경험들이 결국은 나를 더 깊은 감동으로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며, 이 책의 독자들 역시 그런 과정에 대한 이해가 더 깊은 감동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런 성격을 띠게 된 이유는 이 책이 지난 몇 년 동안 축적해 온 출애굽기 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2009년 5, 6월호의 ㅁ일 성경 출애굽기 본문 해설을 집필하면서 얻은 통찰들과 박사학위 논문, 거기에서 빠진 사항들을 2009년 봄 학기에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출애굽기 강의를 하면서 보충시켰다. 이처럼 이 책은 하나의 책으로 기힉되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박사학위 연구를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출애굽기를 연구해 오면서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점들이라고 여긴 것들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강의와 기존의 글들을 이런 식으로 모으고 정리해서 책의 형태로 내려놓는 지금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은사이신 김정우 교수님께서 발행인으로 주관하신 설교 및 학술 잡지인 헤르메네이아 투데이에 출애굽기 강해의 형태로 실었던 글을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계속 집필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은 그 글들을 모으기만 했어도 하나의 번듯한,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원래의 계획이나 의도처럼 살아지지만은 않는 것 같다. 때로는 말씀의 연구가 주는 기쁨보다는 삶의 무게가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더 쓰라리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마치 출애굽기 6:9의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는 구절처럼 나는 그 당시 박사 학위를 공부하느라 미뤄 놓았던 인생의 많은 숙제들을 마치 학습지진아가 후행 학습을 하듯이 서술러 살아치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특히 헤르메네이아 투데이에 출애굽기 강해 글을 싣던 기간은 가장 쓰라림을 겪는 중이었다. 그 버거움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의 큰 후외거리로 남는다.
그래도 마침내 이 책을 마무리지울 수 있게 된 것은 무척이나 기쁘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멀지도 낳은 길을 40년 동안이나 헤매야했던 이스라엘처럼 나는 헛길들을 돌아다닌 후에야 드디어 이 완성된 책이라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그동안의 여저잉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게 만들었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2009년도 봄 학기에 출애굽기 수업을 들어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MDiv. 과정 학생들과 ThM. 성경주해과정 학생들이 없었다면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출애굽기 강의할 할 때 특정 본문들에 집중해서 다루고는 했었지만 이 학기의 수업을 위해서 처음으로 나는 출애굽기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의 모든 본문을 전부 다룬 강의안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된 지금, 나중에 히브리어 배우고 나서 들으라고 강제로 수강철회를 시킨 MDiv. 1학년 학생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여러 가지 고민 속에서도 학교를 가만 두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를 사임함으로써 그들과 다시는 수업을 통한 교제를 나눌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때 강의를 하는 내내 나는 내가 강의 중에 한 말들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한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특히 광야 여정에 대한 본문을 다루면서 만약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떨어지는 순간이 닥친다면 과연 나는 이스라엘처럼 불평을 내뱉을 것인가, 아니면 강의를 통해서 내가 누누히 강조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믿고 그 순간을 묵묵히 견뎌낼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는 했다.
다른 일할 곳이 전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표를 낸 이후 나는 지금까지 벌써 일년 반 동안 이스라엘처럼 광야를 걷고 있는 중이다. 그 기간 동안의 삶을 돌아볼 때 다행히도 나는 수업 시간에 내가 강조했던 신아으이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가끔 내가 사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지만 수없이 생각해도 나는 나의 신앙과 신념에 부합하는 결단을 내렸으며, 다시 한 번 그 시기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은 같은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싱앙적인 결단이란 것은 그 결단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삶의 굴곡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그 기간 동안 기도를 통해 내 삶의 두려움과 정처없는 막연함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그 선한 손길 위에 나를 내맡길 수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영혼육이 너무나도 비참한 상태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하나님은 이 기간 내내 나의 마음을 항상 평안하게 지켜주셨다. 그 결과 나는 아무 보장도 갖지 못한 인생의 광야 속을 통과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이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더 좋은 신앙인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순결하고 성실한 말씀의 사역자가 되게 해달라는 간구만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지금 이 순간 기도하는 것은 별로 위대한 신앙이나 대단한 용기를 갖지 못한 나에게 오직 내가 감당할 만큼의 시험과 고난만을 허락하시고, 혹시 내가 감당치 못할 순간이 올 때에는 피할 길을 내주십사 하는 것이다. 나를 어머니의 태에서 조성히시기 전부터 나의 체질과 성품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정말 그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을 때 그 한계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한다면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한다(단 3:18).
이 책이 이렇게 활자화되어 햇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선 2009년 1학기 웨스트민스터의 출애굽기 과목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특히 내가 하교를 그만 둔 후에 문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여러 가지 위로와 격려를 해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들의 격려와 위로는 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보다 더 은혜로운 것이었다.
내가 출애굽기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지도해 주신 J. Gordon McConville 교수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제 이 책을 쓰고 보니 박사논믈을 쓰기 전 몇 달 동안 교수님께서 출퇴근 때마다 내가 그날, 그날 쓴 글들을 가져가셔서 검토를 하신 후에 지적사항들과 더불어 갖다 주시던 때가 생각난다. 교수님께서 그렇게 수고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극도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쉴 수가 없었다. 그 때 교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미래의 나의 제자들에게 그런 스승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왔으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헤르메네이아 투데이에 출애굽기의 처음 몇 장에 대한 주해를 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은사이신 김정우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그 때 그 글들은 오직 학술적인 글쓰기만 해왔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었다. 이 책을 좀 더 다양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면 그 때 얻은 교훈과 지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출애굽기의 본격적인 주석 작업을 마친 후에 기회가 된다면 그 때 썻던 글들에 이어서 그런 스타일로 출애굽기 강해서를 완성했으면 한다.
도서출판 목양의 정인수 집사님께도 이 책의 출판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원래는 1년전에 이 책이 정식으로 독자들을 만났어야 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1년이나 지각을 한 이 책을 집사님은 흔퇘하게 출판 허락해주셨다. 집사님과 지난 1년 동안 신학 출판에 대해 나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이 책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만들었기 바란다. 출판 전문가로서 나보다 더 많은 고견을 갖고 계심에도 나릐 쓸데없는 고집에 최대한 양보해주신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과 성기문 교수, 박유미 교수, 김성욱 교수, 장성길 교수 등 어려운 시절의 좋은 동역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내 광야 같은 여정을 걸으면서 때로 극복하기 힘든 외로움이 있을 때만다 이들은 격려와 교제를 나누어 주었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혼자라는 공포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줍잖은 가장인 나에게 허락하신 아내 박서영과 자녀들인 박하겸, 박하율, 박하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트깋 막내인 하윤이에게는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2008년 10월에 태어날 때 어간부터 여러 가지 일들과 고민들로 인해 경황이 없어서 처음 1년여의 시간 동안 하윤이를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칭얼대지도 않고 최대한 참아주었던 하윤이는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밀한 은혜에 대한 또 하나으 증표였다. 나는 밤늦게 지친 심신으로 집에 와서 하윤이가 자는 모습을 볼때, 삐쭉 내민 그 이쁜 어덩이를 보고 너무나도 행복감을 느끼고는 했다. 짧은 시간에 서둘러 낸 이 책이 나의 능력이 허락사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책이 되었다면 하윤이이 이쁜 엉덩이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을 보고 질투를 느낄지도 모를 큰 아들 하겸이와 딸 하율이의 재롱도 그에 못지 않게 기여를 했다는 점도 밝혀두고자 한다. 최근 간만에 아이들을 한꺼번에 등에 태우고 사자놀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8살, 6살 그리고 벌써 한국 나이로 4살이 되어버린 세 아이들을 한꺼번에 등에 태우기에는 애들이 너무나 무거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삶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와 가족의 삶을 보호해주셨고,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이렇게 묵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셨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는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내 삶을 통해 증명하셨다.
이 책을 이렇게 내고 보니 한 가지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출애굽기와 관련하여 더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많은 숙제를 받아든 학생과 같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더 열심히 연구하여 아주 체계적이고 깊이와 넓이를 갖춘 본격적인 출애굽기 주석을 내놓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이 머리말을 손질하고 있을 즈음 나는 은사이신 김정우 교수님께서 최근에 출판하신 시편 주석 3권을 떠올린다. 한평생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학자로서의 길을 간 그 분의 주석을 읽으며서 쇠를 천번을 접어 두드려 만든다는 일본 명검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천 번을 접었기 때문에 그 검들의 날에는 접힌 무늬가 보인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주석에 담긴 무수한 참고문헌들, 그리고 공력이 하나, 하나 담긴 문장들 속에는 이런 무늬가 보인다. 그 주석을 보고 있자니 이 책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둔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서 어찌 한 번에 명검과 같은 책을 쓰기를 바라겠는가? 이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서, 다음에 다시 출애굽기로 독자를 만날 때는 독자들이 내 책에서도 그런 명검의 무의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에 부끄럽지 않은 노력을 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2011년 2월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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