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재판과 죽음
웅장한 저택 속에서, 상헤드린은 일체 정의의 시늉마저 포기한 채, 예수님께 불리한 증언을 할 두 사람의 증인들을 조작해 내었다. 법정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발하고, 사형을 선고햇는데,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멸시했던 로마인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동이 트자 유대인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야바의 저택에서 나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유월절 명절 동안 머물고 잇었던 성채 안토니아로 데리고 갔다. 산헤드린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으므로, 이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처형을 의로해야만 했던 것이다.
의회원들과 그들의 죄수가 아래 쪽 성채의 포장된 마당에서 기다리는 동안, 안토니아의 화려한 내실로부터 빌라도를 불러내기 위해 사자가 보내졋다. 몇 분 후 총독이 나타났다. 그는 전형적 로마의 관습대로 흰 겉옷 위에 붉은 토가를 걸치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로마 신민임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의도를 물어본 후, 로마 총독은 상황을 살펴보았다. 대제사장들은 별로 중요할 것도 없는 사소한 종교적 분쟁 때문에 그를 찾아온 듯 했고, 명절 기간 중 예수를 처형할 경우, 적어도 사소한 소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반면, 그가 이 문제를 무시해 버렸다가는 만약 이 갈릴리 인이 실제로 로마에 대한 반역자인 거싱 후에라도 밝혀지게 된다면 그의 지위가 위험해질 것이었다. 한편 안토니아 밖에 모여든 흉포한 군중들은 그의 결단을 재촉하고 잇었다. 혹시 황제의 비위를 거슬릴 것을 염려했던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병사들에게 내어주었다.
처형대가 예루살렘 밖, 골고다라고 불리던 언덕에 닿았을 때, 병사들은 에수님과, 또한 함께 처형 받기로 된 두 명의 강도들의 몸에서 옷을 볏겨내어 이것을 나누어 가졌으며, 그 동안에 십자가를 조립하게 하였다. 그 후 죄수들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병사들이 커다란 쇠못으로 그의 손목을 십자가에 박고, 그의 발목들을 한데 붙이고 다시 이를 쇠못으로 박는 동안 침묵으로 이를 참아내었다. 그들이 십자가를 바로 세움에 따라 예수님의 체중은 십자가로부터 그의 다리 사이로 삐저나오게 되어 있던 나무 쐐기에 의해 지탱 되었다. 그 후 로마 병사들은 십자가 위에 그의 죄목을 적은 명패를 걸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 고통스런 죽음이었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해가 뜨겁게 내려 쪼이고, 곤충들은 사지에 달려드는 가운데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다. 호기심 찬 구경꾼들이 그의 고통을 구경하고, 죄패를 읽기 위해 가끔 멈춰서곤 하였다. 점차 그는 힘을 잃어갔으며, 그의 몸은 고통과,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었다." 절망에 찬 그의 추종자들 일부가 그의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이거싱 곧 신기하고고 계시적인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는 점차 생명을 상실해 가는 가운데, "완성되었다"고 소리지르시고 숨을 거두시었다. 몇 시간 안에 친구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의 뜰로 옮겨 갔다. 이곳에 그는 큰 암석을 깍아 만든 묘실을 가지고 있었다. 묘실 안쪽에는 역시 돌로 만들어진 평상이 있었는데, 그는 그 위에 시신을 올려놓았다. 그 후에 큰 돌을 굴려 입구를 봉한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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