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고난 그리고 나를 향한 아버지 뜻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 아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은 안 해도 겉으로는 그렇게 웃고 있어도
가슴에는 아픔 하나씩 묻어 두고 살지않나하고 생각했어요.
나만 아프지 않음을 알고는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기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밤을 달래고 새벽을 기다리며 삽니다.
때로는 영육이 지치는 아픔에 몸서리치지만
아깝던 욕심에 교만을 버리면서 은혜로 만들어 지는
인내에 머리를 숙인다오. 이것이 주님과 나 사이에 오가는
청년 때 얻지 못했던 하늘에 보화입니다.
기나긴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보화가 아니던가!
이것도 주님이 주시는 은총이기에 힘이 들어가는
아픔의 눈물을 억지로라도 삼키며 감사와 사랑을
하늘의 양식으로 나누어 갖고 싶습니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없듯이
오늘도 아픔을 안고 힘들어 하는 지친 영혼들을 생각해 봅니다
살아오면서 한 가지 알아진 것은
눈 비 바람 부는 내 아픔도 다 내 것은 아니며
이웃의 아픔도 모두가 다 그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다만 내가 그들의 아픔에 참여하고
그들이 나의 아픔을 알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꼬옥 보듬어 줄 때
또 한 생명이 살아 계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됨으로
기쁨과 감사함이 내 속에 채워지지요.
이 또한 아픔과 고난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다 그렇게 살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 나고 있는
사건과 환경 그리고 아픔은 고난을 위함이며
고난은 죽음을 위함이라오. 곧 못된 자아의 정과 욕심을
죽이라 함이며 죽음은 부활을 곧 새로운 피조의 삶을 위함이라는
하늘의 깊고 높은 오묘한 뜻이지요.
고난속에 한 생명이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될 때 쯤 되면
그 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 위해
고난 속에서 아파하며 방황하는 불쌍한 또 다른 영혼들에게
주신 믿음 앞세우고 만나줘야 되겠지요.
오늘밤도 착하고 충성된 영원한 종의 신분으로
생명의 주님을 부르면서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리는 큰
소망을 가져 보았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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