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실 때에 가장 심여를 기울이셨던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자들 부르시고 세우신 것은 확실하지만 신학교를 세우고 별 달리 가르치신 기록은 없다. 예수님을 따라 다리고 그분의 하시는 일을 듣고 또 무리를 가르치실 때 함께 듣고, 예수님과 숙식을 같이하며, 함께 살았던 것 외에는 특별히 수업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들 중에 성경과 신학에 관한 부분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전반적으로 배어 있고, 실천신학에 관한 부분은 예수님의 삶 자체를 그 내용으로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학이나 목회학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설교학이나 상담학을 따로 가르치신 적이 없다. 그런데 기도는 가르치셨다. 물론 제자들의 요구에 의해 가르치기는 하셨지만 그 사실은 다른 모든 것보다도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였기 때문이라고 충분히 주장할 만하다.
제자들 역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전도학이 필요했을 텐데 전도학도 설교학도 상담학도 아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만일 제자들의 요구가 바르지 못했다면 주님은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다른 것을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를 가르치셨다. 제자들의 요구대로 기도를 가르치셨다. 그것은 기도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신학교들에서는 기도를 다른 과목들처럼 교과목에 편성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기도는 한 학기 동안 가르칠 만한 내용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가르치지도 않아도 다 잘하기 때문일까? 거것도 아니면 기도에 대해서 다른 학과목들처럼 전문적으로 가르칠 사람이 없었던 탓일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히 기도를 가르치셨을까?
지상생애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걷고 계셨다. 그때 뒤따르던 제자들 사이에서는 옥신간식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하실 때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낙 하고 자리다툼을 했던 것이다. 세상 말로 하자면 권력투쟁이다. 이 권력다툼은 이버닝 처음이 아니다. 아마도 열두 사도가 다 같이 예수님을 함께 따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권력서열에 대한 욕구는 각기 달랐던 것같다. 어쩌면 베드로는 예수님 바로 다음 자리는 당연히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했을지 모른다. 야고보와 요한은 좀 불안했던지 마리 로비를 했다. 이미 어머니를 내세워 친인척 인사 청탁을 한 바 있는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기도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막 10:3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다. 그들은 서슴없이 구하기를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죄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때는 이미 주께서 고난받으시고 죽게 될 것에 대해 세 번째 말씀하신 바로 직후이다. 그리고 이미 이런 것은 기도하지 말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이후이다. 또한 주님이 지금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고 계시던 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생각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지금 너희가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오히려 낮은 자리를 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의 자리를 구해야 한다."
"너희 중에는 르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3-45)."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직업 보았고, 또 기도에 대하여 특별히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지금까지 기도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십자가를 향해, 죽음을 향해 마지막 걸어가시는 바로 그 길에서 자기들의 욕망릉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일까? 무엇이 예수님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기도만 하게 만들었을까? 바로 그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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