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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란

예림의집 2010. 3. 13. 16:24

설교 제목: 참된 예배란

설교 본문: 요한복음 4:22-26절

암송 요절: 요한복음 4:24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예화- 돼지의 찔림>

무더운 여름날 어떤 부자 집에 주인어른 회갑 잔치를 열게 되었는데 이 일로 그 집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의 주제는 “이번 잔치에 누가 순교를 해야 되느냐”였습니다. 제일 처음 개를 보고 말했습니다.

“야, 이 여름에 주인이 이렇게 잔치를 베푸는데 네가 보신탕으로 나가는 게 어떻겠냐?”

그러니까 개가 말했습니다.

“내가 나가는 건 참 좋은데 내가 가면 이 부잣집 이 재산을 누가 지키냐? 이 집은 누가 지키냐?“

해서 보니까 개는 안 되겠어요. 그 다음에 닭을 불렀습니다.

“닭아, 이 여름에 삼계탕이 제일 나은 것 같다 주인을 위해서 네가 순교해라”

그러니까 닭이 그러는 거예요.

“나는 안 된다, 내가 없으면 주인이 일어날 시간을 누가 알려 주냐, 주인에게 누가 매일매일 영양분을 보충해 주냐 내가 알을 낳아야지.”

그러고 보니 이것도 안 되겠어요. 세 번째 소한테 말했습니다.

“야, 네가 아무래도 갈비로 대접하는 게 제일 낫겠다, 그래도 잔치에 소고기보다 좋은 게 어디 있냐?”

그러니까 소가 그러는 거예요.

“나는 안 된다, 왜? 내가 없으면 주인집의 많고 많은 농사 누가 짓느냐”는 거예요.

마지막 돼지에게

“야, 돼지야 너는 뭐 일이 별로 없지 않냐, 삼겹살로 대접해라. 다 변명하고 다 사명이 있고 다 할 일이 있는데, 그냥 사는 게 아니에요. 그냥 먹는 게 아니에요. 돼지는 할 말이 없어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사명이 없어요. 너는 너를 위해서 살찐 것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돼지가 그러더래요.

"그럼 물 끓이소"

오늘 현대인들이 먹고 그저 살만 찌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적어도 누구를 위해서 시간을 알려 주든지, 아니 우리는 남을 위해 사는 그런 존재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름에 우리의 시간(예배)과 봉사, 물질, 몸,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이 위대한, 거룩한 이 잔치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백성이 되면 우리는 이 세상 끝날 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로 믿습니다. 그 것들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예배해 대해 깊이 생각해 봅시다.

 

<22절 해석>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서 우리의 믿음, 삶, 생명을 모두 드리는 산제사라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 찬송, 헌금을 정성을 담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 3가지는 우리의 삶이 포함되어 있고, 우리의 생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 삶과 생명까지도 이 3가지를 통해 드리는 것입니다.

22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믿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예배하는 그 대상이 신(神)인지 신(神)이 아닌지도 모르면서도 예배합니다. 복(福)을 달라고 거기다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 머리를 놓고 그 앞에 절하기도 하고 큰 나무나 큰 돌 앞에서 빌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신(神)의 이름을 외워가며 밤새도록 비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그런 예배는 백날 드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지 말고!! 아는 것을 예배하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스스로 한번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참예배자인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배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배하는 대상을 아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배하는 자가 예배하는 대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한다는 것은 참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예배자는 자신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과거에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현재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미래엔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 예배자란 이렇게 자신의 예배 대상인 하나님을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실된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릴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수한 예배가 결국은 허공만 치는 예배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신령으로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23절 해석>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참예배의 의미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참으로" 라는 개념을 공동 번역 성경은 "진실하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예배를 드리되 참되게 드리고, 진실하게 드려야 예배가 예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령은 또 뭐고, 진정은 또 무엇입니까? 신령은 “신실하게”로 진정은 “진실 된 정성을 다하여”로 풀어쓸 수 있습니다. 신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실된 마음과 모든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보건데 참예배도 있고, 참예배 아닌 것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도 있고, 신령과 진정이 아닌 예배도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예배드리는 것이 참예배일 뿐만 아니라 영적예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정리해 봅시다.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예배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뿐 아니라 성령이 임재하시는 예배입니다. 즉 속사람이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와 경배의 예배입니다. 동시에 참된 예배는 말씀의 선포 속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과 심판의 사건이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진리들이 성령의 조명아래 능력으로 임재 하는 예배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예배란, 만물을 창조하고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구원자와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스러움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찬양과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아울러 자신들의 현재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신령으로 예배하려면?

 

신령으로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 존 맥아더 목사님이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신령으로 예배하려면 우리는 성령께 사로잡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으로 예배하려면 성령께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셔서 우리 마음을 자극하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며,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 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예배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 예배를 북돋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실 수 없다. 그것이 가장 기본된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격려하고 자극하며, 독려하시고 가르치며, 우리를 깨끗케 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사역이다. 우리는 신령을 다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2:3에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령께서 돕지 않으면 누구도 예배할 수도 없다.

다시 정리하면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제일 먼저는 회개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먼저 우리를 정결케 한 다음에 아버지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 이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 아버지를 섬기고 영화롭게 할 때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르는 사람은 예배를 모릅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예배는 참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려면?

 

우리는 신령으로 예배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진정이다, 진리다, 진심으로 드린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말의 또 다른 깊은 뜻은 벵겔이라는 신학자의 정의를 빌리자면 “진정이라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를 드려야 된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나오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래서 예배는 성부 하나님이 이 가운데 오셔서 임재 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그 말씀을 듣게 하시고 감동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그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몸과 마음을 씻어 예배자로서의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배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그런 준비가 아닌 영적인 준비가 필요하고 신령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거룩하고 신령하고 신비한 것입니다. 또한 진정이란 말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려면 예수님을 통해서 예배하여야 합니다.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예배할 수 있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중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가 되시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만이 자연스럽게 진실 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이신 하나님께 나가는 방법이요 예배하는 길입니다. 신령으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모아진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24절 해석>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특히 이 영(靈)의 세계는 죄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아주 민감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상태로는 하나님 앞에 참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먼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이어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용서를 베풀어 주시면 그 후에야!! 마음에 평안을 얻게되어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영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죄 회개함

 

아무리 손을 높이 들어 펼지라도 피 흘린 손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사야 1: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고 드려지는 예배나 기도 찬송이 주 앞에 상달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합니다.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59:1-2"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

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25절-26절 해석>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메시야(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기름을 부음을 받은자=> 왕, 제사장,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메시야,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직접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고통에서 의로, 생명으로, 행복으로 인도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으로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찢으셨고, 선지자로서 그의 모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 단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은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지금 우리들을 보시며 행복해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기독교 예배가 다른 이방 종교의 예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

첫째는 말씀 선포입니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례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시고 흘리신 피를 예배 현장에서 재현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배자들의 심령에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능력을 덧 입혀주시고, 놀라운 은혜의 강물을 맛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배에 있어서 어떤 파인가?

1.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눈은 목사님, 생각은 멀리 출장중)

2.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설교는 안중에도 없는)

3.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코가지 골면~)

4.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절부절파(데이트라도 있나?)

5.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하나님 만나러 오셨나요?)

6.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무엇이 더 중요한지~)

7. 설교 시간에만 성경읽기로 시간 때우는 나홀로파(신격모독! 인격모독!)

8.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찬송의 의미를 모르는)

9.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졸음에 잠기는 기회주의파(잠은 집에서)

10. 누가 왔나, 안 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하나님께 집중 하세요!)

여러분은 어떤 유형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신령과 징정으로 예배드리는 순정파가 됩시다!

 

<결 론>

만일 여러분이 교회에 싫증이 난다면 그것은 교회의 설교가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흥미가 없거나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설교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예배에 열중할 수 있도록 목사님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간다면 당신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종종 예배장소에 있으면서도 거룩하지 않은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골방에 들어가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밀을 좋아하지만 그 밀을 빻지는 않는다. 그들은 옥수수를 얻게 될 텐데도 그것을 모으러 들판에 나가지는 않는다. 과일이 나무에 달려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따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그들의 발밑에 흘러도 그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히지는 않을 것이다."

예배는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고를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성가를 듣고 축복을 받고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가야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얻는 것이 아니라 드림으로써 완성되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언제나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 내게 주시는 말씀들을 잘 지켜 행하기 원합니다. 특히 예배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보게 하셔서 제가 더욱 예배를 사모하고 삶을 거룩하게 드리는 자 되게 하소서”라고 각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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