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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외부 에너지의 유입입니다.

예림의집 2009. 5. 23. 14:30

[생각]은 외부 에너지의 유입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즉, 생각은 자신의 내부의 작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은 사람의 외부에서 사람의 속으로 들어옵니다. 사람은 그 생각을 받아드립니다. 즉, 사람의 뇌는 외부 에너지의 수신 기구이며 자가 발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몰론 유다가 사탄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지만, 그 생각의 근원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주님께 간곡하게 위로하고 권면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마 16:22)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 과연 베드로가 사탄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유다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사탄은 베드로에게도 살짝 생각을 넣었을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탐욕의 형태로, 베드로에게는 인간적인 동정과 애정의 형태로 온 것이 다를 뿐입니다. 왜 사탄은 각 사람에게 다른 생각을 넣을까요? 그것은 각 사람이 잘 속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는 아내에게 사탄이 미움과 원한의 생각을 넣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부모의 편애 속에서 자란 형제들에게 미움의 생각을 넣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도박의 유혹이나 어떤 중독 증상을 집어넣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섹스 중독이나 연애 중독, 의존 중독, 소유 중독에 빠지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각 사람을 파괴하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가장 잘 먹혀들 수 있는 생각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사탄만이 생각을 넣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는 처음으로 주님의 신성을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마 16:16) 이 대답에 대하여 주님은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마 16:17) 즉, 그 깨달음도 베드로의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러한 깨달음, 지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도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본인의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영, 그러한 지식, 그러한 생각을 넣어 주실 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은 본인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충분히 입증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단순히 수신자에 불과하다면 사람은 로봇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사람의 역할은 바로 이 생각들을 분별하고 선택해서 자신의 속에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과 삶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각이 어둠의 세계로부터 왔든지 빛의 세계로부터 왔든지 그것을 받아들인 본인의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패를 일으키는 균도 있고, 유익을 주는 균도 있고, 깨끗한 음식을 좋아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밤에 활동하는 동물도 있고, 낮에 활동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동물도 있고, 빛을 좋아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악한 생각과 죄를 즐기는 사람이 있으며 거룩함과 의로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있으며 남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향을 따라 외부의 에너지, 외부의 생각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며, 날마다 천국 쪽으로, 혹은 지옥 쪽으로 가까워 가게 됩니다.

 

우주 안에는 다양한 수많은 계층이 있습니다. 사랑의 계층, 미움의 계층, 진리와 지혜의 계층 등 수많은 생각, 상념, 영적에너지가 단계별로 움직입니다. 사랑의 계층도 아주 초보적이고 유치한 사랑,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적이고 생명적이며 영적인 순수한 사랑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에너지의 계층 속에서 자기에게 맞는, 자기가 좋아하는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여 살게 됩니다. 즉, 그가 죽는 순간까지 외부에서 유입되는 생각 에너지로 살며 자신의 운명을 형성해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과정은 외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그 외부의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자신의 집을 짓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의 집을 짓고 - 그것은 집이라기보다는 감옥이지만 - 어떤 사람은 사랑과 기쁨의 집을 짓습니다. 그것은 집이라기보다는 궁궐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 원망으로 점철된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살며, 거짓과 자기기만, 혼돈의 집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은 외부 에너지의 유입이며 날마다 자신의 인생을, 인격을, 운명을, 영원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생각은 손님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집에 함부로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의 집에 오는 손님을 신중히 고려하고 분별해서 초대를 해야 합니다. 귀한 손님만을 초청해서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의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풍성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중요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