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교재

예림의집 2009. 5. 6. 17:03

사도 바울은 그가 도왔던 교회의 하나인 빌립보 성도들에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일찍이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삼하 22:33)라고 찬양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모든 힘의 원천이 되십니다 하지만 전원을 연결시켜 주는 스위치와도 같이, 실제 하나님의 무한한 힘의 원천을 우리의 삶에 끌어 슬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유대 땅 언덕에서 목동 일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니모가 개인적으로 교제하며 보냈던 수 년의 기간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가 되게 하는 중요한 준비기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궁중에서 수금을 타며 직접 사울왕이 통치하는 것을 볼 기회도 있었지만 그에겐 하나님과 보냈던 시간이 그 어떤 사람하고의 시간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으로 볼때 그는 군대를 지휘한 경험도 없었고 나라를 통치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한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어떤 수련을 받아 본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소유, 그가 가진 학식의 전부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것은 사탄이 가장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영역입니다. 사탄은 당신이 지도자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이나 "주간 경영(Business Week)" 잡지 등을 구독하는 일에 대해서는 관대한 여유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교제를 통하여 더욱 더 그 분을 알아 가고자 하게 되면, 사탄은 그의 총력을 기울여 방해공작을 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당신이 세운 계획은 엉망이 되어 버리고 급한 일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하게 되다가 나중에는 분주하다는 핑계로 주님과의 교제를 점점 등한시하게 될 것입니다. 왜 사탄은 그렇게도 맹렬하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합니까? 그는 우리 영혼의 적이며 주님과의 교제제는 지도자의 삶에 있어서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과의 충실한 교제를 통해 얻을 수 잇는 영적인 유익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다음의 질문을 해 보도록 하십시오. 이 땅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43:7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기 자었고 만들었느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 나오는 이 말씀을 암송하나 그 말이 실제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전에 신학교 학생들과의 모임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들 중 한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학생은 야릇한 표정으로 즐겁다기보다는 부끄럽다는 듯이 쓴 웃음을 짓더니, 이윽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습니다. "글쌔요,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요." 상상해 보십시오. 장차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될 신학교 학생이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니 말이 됩니까?

내가 갓 주님을 알고 나서 배웠던 간단한 교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태초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는 자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자신의 형상을 좇아 인간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과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긴밀한 교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으며 자연적으로 그 긴밀한 교제도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륜을 따라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한 단호한 조처를 취하셨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자 중에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 모든 면에서 평생 동안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던 의인이 있겠습니까? 예,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가운데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게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그러므로 만약 내가 나의 궁극적인 인생 목표,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성취하려면 내 자신도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차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삳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시이니라"(롬 8:29). 이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겠습니까? 나의 인격이 다른 사람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이 가능합니가? 그것은 그 사람과 늘 함께허며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당신은 50년 동안 동거동락하며 금혼식을 맞게 된 부부의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 두 사람은 행동이 서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취미도 거의 같고 음식의 기호도 비슷합니다. 심지어는 얼굴 모습까지도 서로 닮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으려면" 우리는 그와이 개인 교제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지도자, 즉 "가까스로 유지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생활을 하는 지도자만이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교제를 통하여 귀히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로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겔 22:20) 하나님게서는 저 멀리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아직 복중에 있는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과 긴밀히 교제하고자 힘쓰는 자들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자신과의 교제의 삶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고 사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풍성한 능력과 지혜를 퍼부어 주시며 그의 삶을 친히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