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모세를 부르심

예림의집 2009. 4. 20. 23:35

모세를 부르심

모세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광야 깊숙한 곳에서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소위 고등교육을 받고 궁중의 안락과 쾌락에 익숙했던 자로서, 그 당시 가장 비천한 직업 중의 하나인 양치는 일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그를 울적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양치는 일은 아주 천하게 여겨졌었습니다. 이렇듯 모세는 자기에게 닥친 불행과 비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비하 시키며 침울해져서 하마터면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일도 아닌, 장인을 위해 일해 주는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 때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2).

주님께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행하신 일은 그에게 자신을 직접 나타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에게 말슴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확신했습니다(5-6절 참조). 이것이 당신의 마음속에 제일 먼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찾아와 이러저러한 일을 봉사하도록 부탁한다면, 먼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를 확인하십시오. 당신이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할 때까지는 예나 아니오 어느 쪽이든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즉각적으로 알기도 하며, 어느 경우엔 하나님께서 분명한 뜻을 보여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즉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당신에게 밝히 보여주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아주 능숙한 방법으로 그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뜻을 타나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분명한 뜻을 보여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뜻을 밝히 알도록 해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게 훈계하리로다"(시 32:8).

이 한 구절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대명사 내가 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나온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인도는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확신은 사죄의 확신처럼 성경상의 기본 원리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유의해 보십시오.

  "내가 가르쳐 보이리라, 내가 주목하리라, 내가 훈계하리로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갈 길을 가르쳐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시편 48:14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약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이 약속의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의 인도자 되신다" 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과 크신 능력으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당신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강력한 진리였습니다. 그가 정령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마치 다음과 같은 경우와도 같습니다. "모세야, 네가 누구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가 자격을 갖추었건 못갖추었건, 또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네게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고 약속한 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나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며 나는 네게 나와 함께 그 일을 이룰 특권을 주겠다. 너는 나의 구속 사업에 귀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주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도자의 위치로 부르실 때 반드시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스스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자들을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부족하고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약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음의 바울의 간증은 이것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 이는 내가 약할 그 대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많은 살마들이 이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애한 사도 바울고 그렇게 느꼈다는 말씁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확실히 더해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부르심을 살펴 볼 때 얻게 되는 다음의 교훈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합당치 못하다고 깨닫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또한 절대적이으로 충분하신 하나님의 원천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루시는 다음 단계입니다.

모세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답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4-15).

그리스도인이 된 지 얼마 안되었을 당시 나는 그 대답에 대하여 오랫동안 의문을 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로서 나타내신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다음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당신도 어떤 특별한 상황 가운데서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게 된다면 바로 모세처럼 힘과 격려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진리에 초점을 맞추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합니까? 스스로 있는 자, 바로 그분이 당신의 승리가 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십니라"(벧전 5:7). 우리를 항상 괴롭히는 어떤 죄로부터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스스로 있는자, 그분이 당신의 승리가 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이ㅔ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이런 식으로 우리의 필요를 계속해서 나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필요든지 완전하게 충족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으나 결국 그는 깨달음을 얻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