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서론-III. 바울 연구의 자료

예림의집 2009. 3. 14. 19:56

III. 바울 연구의 자료

 

1. 바울서신

바울은 그의 서신 독자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으며, 가끔씩은 상당히 많은 개인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대한 학자들의 통상적인 연구는 바울이 그리스도인/사도가 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서는 겨우 한 두 페이지밖에는 할해하지 않는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의 유명한 자서전적인 증언들, 즉 갈라디아서 1:13-17, 고린도전서 15:8-9, 고린도후서 11:22, 로마서 11:1, 빌립보서 3:5-6 등에서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명예 교수이며 신약의 내용을 굳건한 역사적 토대 위에 세우는 학문적 작업을 통해 성경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점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마틴 헹겔은 그의 <그리스도인 이전의 바울>(한들출판사0에서 말하기를 "유대인 사울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 바울을 이해하는 전제 조건이다. 우리가 사울을 더 잘 알수록 바울을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에 대한 바울의 자기 증언은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바울에 대해 말하는 기록으로 보충된다.

 

2. 사도행전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바울의 역사적인 배경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바울의 생애의 상당 부분과 그의 선교 여행에 대한 많은 부분을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우리가 바울의 사역을 알 수 있는 전체적이고도 역사적인 특을 제공해준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은 회심을 하며, 사도행전 11장에서는 바나바의 권유로 안디옥으로 가게 된다9행 11:25). 그 후 바나바와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1, 2, 3차 선교여행을 떠난다. 바울의 선교 이야기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시작되어 21장에서 그가 체포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 후 바울은 벨릭스와 베스도 등 로마 총독들에게 죄수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으며, 결국 그가 황제 재판을 요청하여 로마로 보내어진다(하워드 마샬, 스티븐 토레비스, 이안 폴,<서신서와 요한계시록>, 69-70). 그리하여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바울과 기독교 선교사로서의 모습에 대해 많은 내용을 보여준다.

 

3. 신약성경 밖의 자료들

AD 160년경 정통 그리스도인에 의해 쓰여 진 것으로 보이는 <바울행전>이 있는데 이 책은 <바울과 테클라 행전>을 포함하여 다양한 자료를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은 바울의 선교여행에 관한 여러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인물들도 등장하며, 바울의 순교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하워드 마샬, 스티븐 트레비스, 이안 폴, <서신서와 요한계시록>, 69). 전승에 의하면 테클라는 바울의 여성 동역자들 중에 가장 흥미 있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영국의 윌리엄 램지는 테클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의하며, 테클라는 이고니온에 사는 유력한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이고니온에서 바울이 설교하는 것을 듣고서는 바울의 추종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박해가 뒤따랐다. 테클라는 사형집행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화형을 그 다음에는 맹수에 의한 것이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맹수에 의한 사형집행을 받을 때 이 도시를 들렀던 트리피나 여왕에 의해 구출되었다. 트리피나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사촌이었으며, 그녀의 아들 폴레몬 2세는 대략 AD 37-54년까지 본도를 다스렸다. 테클라가 트리피나와 8일 동안 지내면서 트리피나의 권속들이 회심하였다. 나중에 테클라는 남자로 위장한 채 도피하여 무라에서 바울과 다시 만났다. 바울은 테클라가 살아있었다는 것에 크게 놀랐으며,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였으므로 다시 이고니온으로 되돌아갓다. 테클라는 나중에 실루기아로 이주하였는데 거기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테클라의 무덤은 오늘날 터키의 실리프케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 순례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놀라운 동역자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바울과 테클라 행전>은 바울의 육체적 모습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고 있는 유일한 성경 밖의 문헌이기도 하다.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은 바울이 이고니온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미아스와 제노라는 두 아들과 아내인 렉트라와 함께 바울을 만나러 나왔다. 그는 바울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일 생각이었다. 디도는 바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에게 일러 주었었다. 이제까지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육체로 본 적이 없었고 단지 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루스드라로 뻗어있는 왕의 도로를 따라 길에 서서 바울을 기다리다가 거기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디도가 말해 준 묘사에 근거하여 바울을 찾았다. 그리고 바울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체격이 작았으며, 머리가 벗겨졌고, 다리가 굽었으며, 고귀한 풍채를 지니고 있었으며, 눈썹이 서로 만나고, 약간 매부리 코였으며, 은헤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때로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때로는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F. F. 브루스<바울>, 500-5001).

 

4. 결론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자료들 중에서 바울을 연구하는 일차적인 문헌은 어디까지나 바울서신이다. 그 다음 우리는 사도행전을 이차적인 문헌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외경의 문헌은 단순히 참고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사도행전을 이차적으로 참고한다고 해서 사도행전이 역사성이나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서신이 어디까지나 바울 자신이 직접 기록한 문헌이기 때문에 바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바울서신을 주된 자료로 고려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함께 참고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묘사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바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종종 실수하는 것은 바울을 사도행전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울을 부분적으로만 바라보고 바울을 제한시켜 해석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바울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아야지 부분적으로 보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바울을 사도행전의 내용으로만 이해한다면 부분적인 바울의 모습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바울서신과 사도행전 모두를 고려하여 바울을 묘사할 때 비로소 전체적인 바울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