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성경이 생겨나기까지의 역사

예림의집 2009. 3. 13. 17:21

*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성경이 생겨나기까지의 역사

1. 신약 성경 원본 기록과 그 보존 과정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은 여러 사람의 글이 모인 것으로, 그 여러 글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저자들은 각기 교양과 신앙 경력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영감을 통하여 각기 성경을 쓸 때, 특정 장소와 시간에, 자기들이 얻을 수 있는 종이(파피루스 papyrus)와 붓과 잉크를 가지고 썼다. 그들이 글을 쓸 때, 그 글이 성경의 일부분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며, 또 그들이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며, 종이나 붓이나 잉크는 값이 비싸고 귀한 것이어서, 특별한 각오와 결심이 없이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즉 더 비싼 가죽 종이(皮紙 parchment, vellum)를 용지로 사용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영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만큼 귀중한 글을 쓴다는 의식도 없었기에, 그 당시 보통 얻을 수 있는 용지인 파피루스(papyrus =paper)를 사용했던 것이다.

파피루스라는 종이는 애굽 나일 강 가나 습지(濕地)에서 많이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植物)의 내피를, 펴서, 가로 한 겹 세로 한 겹 놓고, 눌러서 말린 것으로, 그 지대의 사람들이 고대로부터 흔히 사용하던 필기 용지였다. 긴 글을 쓸 때에는 보통 일 척(一 尺) 평방 가량의 것을 몇 개라도 이어서 긴 두루마리를 만들어, 거기에 쓰고, 그것을 두루마리로 말아서 수신인(受信人)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코이네(koine=?????) 헬라어라는 평범하고도 통속적인 사람의 말로 기록된 동시에,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필기 용지인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기록됐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파피루스는 이른바 초지(草紙)여서, 그리고 한국이 자랑하는 한지(韓紙)와 같이 견고하고 지구성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끊어지고 꺽어지고 부스러지기가 쉬웠다.

가령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전서를 써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을 때의 일을 상상해 보자. 그 편지는 매 주일마다, 아니 매일 그 교회 회원들에게 읽혀졌을 것이고, 따라서 오래지 않아 그 편지는 때가 묻거나, 부러지거나, 끊어지거나 해서, 그것을 새 용지에 옮겨 써야 할 처지가 됐을 것이다. 그것을 옮겨 쓰는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정성을 다해서, 원본과 차이가 없는 것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헬라어 문자가 대문자들만 있었고, 띄어쓰기라는 제도가 없었다. 그리고 활자판이 아니고 손으로 쓰는 것이어서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옮겨 쓰는 사람이 원본을 100%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이 연약한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아무 손상도 받지 않고 그 원본이 고스란히 오늘까지 보존되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원본을 그대로 보존하시지 않으신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도 바울의 편지가 왔다는 소문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데살로니가에 온 바울의 편지를 읽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그 편지를 베껴오도록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단계에서만 보더라도 원본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필사본이 다르고, 빌립보 교회가 만든 필사본이 또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약 성경 27권의 글이 우선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고, 오래지 않아 그것들의 필사본이 만들어져야만 했고, 원본들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원본의 대를 잇는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점점 많아져서, 각 교회에서 원본 대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신약 성경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신약 성경의 일부분 또는 몇 책이 함께 필사(筆寫)되어(어떤 것은 복음서만, 어떤 것은 바울서신만, 어떤 것은 사도행전만, 어떤 것은 계시록만, 어떤 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같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역시 그 용지의 나약성과 보존 기술의 취약성 때문에, 아깝게도 거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었다. 필사본 중 가장 낡은 것이 2세기 상반기(A.D. 125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P52가 있고, 오늘까지 발견된 98개의 파피루스 사본들 중에는, 제2세기의 것이 한두 개(P90 ,P98) 더 있고, 나머지는 제3세기로부터 제8세기 어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많은 교회가 이렇게 파피루스 사본을 성경으로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필사본이 만들어지면서 낡은 것은 자연히 사라져간 것이다.

현존하는 90여 개의 신약 성경 파피루스 사본들이 내용에 있어서 꼭 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다소간의 차이와 불일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곧 필사자인 인간들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인간의 실수와 때로는 고의적 변개(變改)로 인해서 성경은 초창기부터 원본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비록 사소한 것이지만)전달되어 온 것이다.


2. 대문자 사본(Uncials)과 소문자 사본(Minuscules)

성경의 귀중성을 깨닫는 교회들은 파피루스 사본들의 나약함과 지구성이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구성이 있고 견고한 가죽 종이로 파피루스를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제4세기부터는 가죽으로 된 용지를 사용하여 성경을 필사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는 것보다 몇 배의 지구성과 편리함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가 300개나 되니, 그 수효로 보아서도 98개에 불과하는 파피루스 신약 사본보다 훨씬 지구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문자 사본은 용지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좀체로 그것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며, 대문자를 가지고 썼기 때문에 단위 지면에 기재되는 내용이 비교적 적으므로 비경제적이었다. 이것이 지금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가 적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교회에서는 계속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에서는(아마도 부유한 교회) 대문자 가죽 사본을 사용하였다. 결국 두 가지 종류의 사본이 공존하는 시대가 제 7세기 내지 제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수가 점점 늘고, 성경을 필요로 하는 교회나 수도원이나 개인들이 급격히 많아졌기 때문에, 소문자와 필기체가 고안되었고, 가죽 종이를 사용하되, 많은 내용을 빠른 시간에 필사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450년에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즉 제9세기 이래 15세기 중엽까지, 많은 소문자 사본이 만들어졌고, 특이 교회가 많은 지방에서는 많은 소문자 사본들이 필사되어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그 지방이 가지고 있던 사본들이 대거 필사(筆寫)되어, 비슷한 종류의 사본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800여 개의 소문자 사본들은 제9세기 이후의 것들로서, 원본으로부터 따진다면 몇 십대 후손인 사본들을 필사한 것들이며, 서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뿐 아니라, 고대 사본들과 비교한다면 많은 변개(變改)가 있음을 볼 수 있다.


3. 성경일표(聖經日課表 Lectionaries)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예배의식도 발전하였고, 성경을 균형 있게 봉독하기 위하여, 성경의 여러 부분을 매일 또는 매 주일로 나누어 읽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루하루 읽어야 할 성경 부분들을 일별(日別)로, 또는 주일별(主日別)로 나누어 기록한 것을 "성경일과표"(聖經日課表 Lectionary)라고 한다. 예컨대 대강절(待降節 Advent) 첫 주일에 사2:1-5; 시122; 롬13:11-14; 마24:36-44를 읽기로 하고 그것들을 한 종이에 모아서 필사본을 만든다. 이런 일과표가 역시 사본의 일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과표도 약 2,000개가 남아 있어서 원문 비평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것들도 역시 그 각자가 필사되던 시대와 장소에 있던 사본들을 전사(轉寫)한 것으로서, 그것들의 대본(臺本)의 경향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으며, 필사 과정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4. 교부들의 인용구

많은 교부(church fathers 敎父)들이 글을 쓰면서 자기들이 볼 수 있었거나,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사본의 내용을 인용한 것들이 있다. 비록 짤막한 인용일지라도 그들의 인용은 역시 그가 사용한 사본의 필사본으로서, 본문 비평가들이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에 일조(一助)가 될 수 있다. 교부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장소와 시대를 반영하며, 그 지대에 유포됐던 사본들의 성격을 보여주거나 암시해 줄 수 있다. 교부들은 자기가 가진 사본을 자기의 글에 인용하면서 실수로 잘못 전사할 수도 있고, 고의로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5. 고대 역본들(Ancient Versions)

성경이 처음에는 원어로 유포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신자들의 모국어 또는 상용어(常用語)로 번역되는 일이 생겼다. 구약 성경이 기원전 3세기부터 애굽의 알렉잔드리아의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부터 구약 성경이 아람어로 옮겨져 타르굼(Targum)이 생긴 것도 그 예이다.

기독교가 로마 사회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자연히 성경이 각 지방의 언어로 번역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선은 선교사들이 각 지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코이네 헬라어보다도, 더 친숙하고, 더 알아듣기 쉬운 지방말로 성경을 옮겼던 것이다.

우선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시리아(Syria)에서 시리아어 번역이 시도되었고, 다음은 라틴어, 그리고 이집트의 콥틱어로 번역되었다. 그 뒤를 이어 고트(Gothic)역, 아르메니아역(Armenian), 죠지아역(Georgian), 에티오피아역(Ethiopic), 고대 슬라브역(The Old Slavonic), 아라비아역(Arabic) 등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런 고대 역본들은 역시 그 번역이 이루어진 시대와 장소에서 얻을 수 있었던 사본들을 대본으로 해서 번역된 것이므로, 그 역본들을 검토하면 그 배후에 있는 사본들의 성격과 경향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고대 역본들은 원본을 찾아가는 노력에 많은 도움을 준다.


6. 신약 성경 사본들의 지방적 경향


기독교가 지중해 연안 각 지방으로 번져 나갈 때, 자연히 신약 성경도 사본이 되어 각 지방에서 읽혀졌다. 교회가 왕성하여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성경의 수요(需要)도 늘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본을 만드는 일도 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발전사(發展史)를 개관할 때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북 아프리카(칼테지), 로마, 마게도니아(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에베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으며, 교회 활동이 그런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고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발전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 지방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던 사본들도 자연히 그 지방에 어울리는 성격을 지니게 됐다고 보인다.

초창기부터 원본 성경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지방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공통되는 것은 필사자들이 다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필사자의 실수나 고의적 변개에 의해서, 사본들이 예외없이 원본과는 차이가 있는 것들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5,500여 개의 신약 사본들이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소위 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해서 절대 다수의 신약 사본이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그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잔틴 계통의 사본들도 서로 어느 하나도 꼭 같지를 않은 것이 사실이어서, 어느 하나는 원본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필사한 사본은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조금씩은 다 원본에서부터 이탈되고 달라졌다고 말해야 양심적이다.

다만 그 많은 사본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며, 경향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것들을 분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본문 비평가들의 결론이다.

최근의 결론을 소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약 사본의 본문형태(text-type)가 네 가지로 크게 나누인다는 것이다.

(1)애굽 형(알렉잔드리아 형),

(2)서방 형(Western)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3)(전부터 일컬어) 가이사랴 형이라고 하는 것,

(4)비잔틴 형(Byzantine) 등이다.


엘돈 제이 엡(Eldon Jay Epp)은 다른 기호를 가지고 그것들을 나타낸다. 즉

(1)A-텍스트("수락된" "accepted"= Byzantine),

(2)B-텍스트(Codex B =P75 -B, 혹은 이집트 형),

(3)C-텍스트(B와 D 중간 =P45 -Codex W(종전의 가이사랴 형),

(4)D-텍스트(Codex D, 혹은 서방 형"western")로 분류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A-텍스트(Byzantine)는 제4세기부터 나타난 것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고대 파피루스 사본이나 대문자 사본이 하나도 없다.

즉 제4세기 이전에 필사된 파피루스나 대문자 사본 중 A-텍스트를 뒷받침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다른 세 타입의 텍스트들(B, C, D 텍스트)은 A.D. 200년 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파피루스 사본들이 그것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1) 거의 초기부터 신약 성경 사본이 지방에 따라서 특이한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고, 대별하면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2) 그리고 B, C, D 형의 본문이 A형의 본문보다 먼저 생겨난 것이라는 것, 즉 A 형의 본문은 연대적으로 가장 뒤에 형성된 것임을 말해 준다.

그 네 가지 형의 본문들 중 어느 하나, 즉 A형은, 일부 무비판적인 맹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원본으로부터 조금도 변개된 것이 없이 순정(純正)하게 남아 있다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원본에서 이탈했고, 그 변개의 도수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가장 변개가 심한가, 그리고 변개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원본에 가까운 본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한 일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성경의 원본을 보존하실 능력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원본들을 남겨두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일부 맹신자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당신의 말씀을 무흠하게 보존하셨을 것이고, 비잔틴 텍스트(Byzantine Text, Majority Text)가 바로 그것이라고 억지를 쓴다.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는 거짓말을 가지고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성경 사본은 필사자들의 각별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원본으로부터 다소간의 변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5,500여 개의 신약 사본들이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서로 다르며, 따라서 원본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런 대로 가장 원본에 가까운 것이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귀중성을 느끼는 필사자들이기에, 일부러 어떤 부분을 빼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실수로 빠뜨리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는 필사자가 설명을 붙이거나, 의견을 붙이거나 해서 점점 길어지고 늘어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 그래서 원문 비평의 가장 초보적 원칙은 "짧은 읽기(reading)가 긴 읽기보다 우수하다"이다. 그리고 난해한 부분은 필사자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바꾸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읽기가 쉬운 읽기보다 우수하다"는 원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리고 사본은 그 대 수(代 數)가 늘수록 점점 더 원본으로부터 멀어지고 변개가 늘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본의 연대를 무시할 수 없다.

즉 오래된 사본일수록 가치가 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비평 원칙들을 적용하며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 형, 즉 애굽 형(Neutral text, ?, B, Sahidic, Boharic 등)의 본문이 가장 권위가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Western text와 Caesarean text도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면서 상당한 변개와 첨가를 가지고 있지만, 제4세기 이후에 생겨난 비잔틴 텍스트(Byzantine text)는 가장 많은 변개와 첨가를 가지고 있어서, 최악의 사본군(寫本群)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 제 2부에서 계속 됩니다 - (글쓴 이: 박창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