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바울 연구의 올바른 자세와 신학 공부의 본질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스케치를 잘 그려놓아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생긴다. 잘못된 스케치에 훌륭한 그림이 나올 수가 없다. 건물을 지을 때에도 먼저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좋은 설계에 의해 좋은 건축물이 나오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바울의 생애와 그의 신학, 그리고 그의 복음의 메시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처음 기초를 잘 놓아야 한다. 그 기초는 많은 신학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 지식을 쌓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 하는 일이다. 이것이 목회자, 신학도, 혹은 평신도 성경공부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신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수많은 내용들을 공부하고, 또한 성경의 지식적인 내용들을 습득하는 것도 신학공부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신학공부는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세상적인 생각이나 가치관 또는 잘못된 사고들, 나의 과거의 경험들 등 이 모든 것들을 '성경 적합적인 사고방식'으로 점차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함으로서 서서히 자신의 관점과 시각이 변화되고, 조정되고, 또한 여러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판단을 하고 아울러 성경적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다. 즉 신학을 공부함으로써 나의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이며 목적이다. 그러므로 신학공부는 일종의 '필터링'(filtering)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사고와 가치관과 경험들 등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필터로 걸러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대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 오염 물질이 많으면 그만큼 걸러 내는데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더 강력한 필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여튼 신학공부를 하면서 사건과 사물과 인간과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또한 이러한 것들을 해석하는 틀의 전환이 이루어쟈야 한다. 이는 과거 하나님을 몰랐을 때의 세상적인 관점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고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되어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해석의 틀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해석의 틀을 개발시켜 주는 것이 신학이라는 학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너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전환은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한다든지 혹은 40일 금식기도를 몇 회 실시했다고 해서 단번에 성경적 사고방식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영적 체험과 영성의 관계이다. 영적 체험은 순간적이나, 영성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 바다를 건너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당한 영적 수준을 가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였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영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40년 동안의 광야 시험을 거쳐야만 하였다. 신학적 사고 형성도 신학교 졸업과 함께 완성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어떤 체험을 하고 신학에 입문하였어도 그 사람이 성경적 사고를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연단과 시험을 거치고 또한 각 사람의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영적 체험은 순간적이지만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성향이나 가치관 혹은 해석학적 틀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단순히 신학교 몇 년 다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해석학적 틀이 고쳐지고 수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경 적합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화되고, 이름바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형성되는 것은 마치 치아를 교정하는 것과 같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조여야 치아가 교정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신학적인 사고 및 성경적인 사고 형성은 단 시간에 혹은 어느 한 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일 그리고 성경적 사고 형성은 벼락치기가 되지 않는다. 신학은 영적인 한탕주의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공부는 겸손하게 그리고 인내하면서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긴 여정의 학문이며, 또한 그 종착역도 알 수 없는 심오한 공부이다.
한편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4-5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학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옳다고 여긴 생각들과 가치관들을 성경과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때 자신의 생각과 지식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정말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일은 자신 스스로 부인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임이니라" 고 말씀하셨다9마 16:240.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현장에서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신학 공부하는 일에도 역시 적용될 수 있다. 신학공부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신학공부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시느이 생각이 성경과 다를 때에는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내려놓고 성경의 내용을 믿음으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신학공부가 가능하다. 이렇게 겸손한 자만이 신학공부가 진실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학은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수록 하나님의 지헤와 지식의 부요함에 대해 가히 짐작이나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큼 깊으며 풍성하다는 것을 바울처럼 깨닫게 된다(롬 11:3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세상적인 학문을 공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우리가 바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또 개인적으로 그룹으로 바울에 대해 또는 바울서신에 대해 공부한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울에 대해 탐구할 내용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내용들과 대부분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그 판단 기준도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살펴서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해온 것이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경의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바울 연구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는 본질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말할 내용이 있다. 이것은 우리들이 많이 생각하고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신학교를 졸업하여 현장에 가서 사역하는 전도사들이 흔히 말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현장에 가보니까 쓸데가 없더라!"는 말이다. 아마 이런 말들을 들어왔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신학을 배우고 바울을 배우는 목적이 흔히 말하듯이 목회현장에서 써먹기 위하여 공부하는가? 이것은 신학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왜 신학 공부를 하는지 하는 그 본질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학교는 현장에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되버리면 신학교에서 아무리 잘 가르쳐도 현장 사역에 가봐야 1-2년을 버티기 힘들다. 신학교는 사역의 자료, 사역의 기술을 가르쳐 사역 테크닉에 능숙한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성경적 원리를 가르치며 신학적 사고의 틀과 성경적 사고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어떤 상황과 사건에 대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들을 적용하도록 훈련을 받는 곳이지, 교회 사역에 직접 적용되는 기술적인 것을 가르친다든지, 혹은 현장에서 곧장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만일 현장과 직결되는 실용적인 교육에 치중한다면 신학교는 더 이상 신학교가 아니라 직업학교나 기술학교가 되어버린다. 신학교는 전도사나 목회자 자격증을 주는 전문학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운전면허학원이나 신학교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신학교에서 성경적 진리를 익히고 신학적 뼈대를 굳건하게 세워 각 사람이 처한 다양한 사역 현장에서 성경적 원리를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부분을 분명히 알고 정리해 놓아야 신학 공부를 하면서, 혹은 현장 사역을 하면서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신학 공부를 하는 목적과 본질에 대해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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