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1장. 오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예림의집 2009. 3. 11. 18:49

오경이라는 말은 다섯을 의미하는 '펜테'와 책을 뜻하는 '투코스'라는 두 헬레어가 합쳐진 것으로 다섯 권의 책이란 뜻이다. 이 다섯 권의 책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경을 읽을 때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답변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따라 독자들은 성경의 의미를 찾아낸다. 이것은 성경 읽기에 있어서 독자의 차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차원에서의 성경 읽기는 주관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미 어떤 테두리(예컨데 교리) 안에서 성경을 읽는다면 그 위험성이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의 차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우리가 성경에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성경 읽기에 있어서 독자의 차원이 아닌 저자/편집자의 차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오경의 저자/편집자가 원래의 청중을 대상으로 전달하려던 어떤 의미(대개는 한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오경을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먼저, 오경은 역사다. 오경은 주로 역사와 율법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그 밖에도 족보, 노래, 시, 예언, 목록 등 다양한 양식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복합적인 구조물이다. 그 중에 오경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역사다. 이 것은 계시가, 기본적으로 역사를 통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오경이 우선,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경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대상을기록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다. 도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탄생하기 이전부터 우주 만물이 발생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태고의 역사이다. 창세기 1-11장(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창11:26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이 태고의 역사는 '원(原) 역사'(primeval history)라 불린다. 이 역사는 어느 한 민족(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다. 여기에서 저자/편집자는 우주 만물, 특히 인간의 기원, 죽음의 문제, 민족의 기원 등, 모든 인류와 관계된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편저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답변이 아님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창세기 1-11장이 다루고 있는 시간의 합이 구약의 나머지 부분이 다루고 있는 시간의 합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은 본문의 저자가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 가운데 극소수의 정보만을 기사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저자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만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하는 창 1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어두운 그림들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동산에서 일어난 반역(창 2-3), 형제를 살해한 가인의 오만함과 뻔뻔스러움(4:1-16), 라멕의 노래 속에 표현되어 잇는 복수심(4장), 홍수를 통해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천사의 타락과 인류의 보편적 타락96-90, 하나님이 설정해 주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인간들의 무모함(11장) 등, 창 1-11장은 죄악으로 인해 전 인류가 맞이해야 할 어두운 운명을 그리고 있다.

결국 창 1-11방을 통해 저자는 "인류가 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려 한다. 하나니므이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행사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특권과 의무를 부여받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책임을 수행하기보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반역을 끊임없이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창 1-11장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유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이 창 12장부터 제시되어 있다. 창 12장부터 창세기가 끝날 때까지 다루는 이야기들을 사실 네 명의 인물들(족장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족장 사(族長史)라 부른다. 이 족장 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을 이루어 나가시는 역사의 기록이다. 창 1-11장이 인간 역사에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했다면, 창 12장부터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족장 개인이 겪은 다양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서로 무관한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 나가시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기들, 그리고 약속의 부분적 성취들과 관계있다. 족장들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이며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게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이루어 나가시며 계속해서 그 약속들을 아브라함의 자송을 통해 이루어 나가신다. 이 일은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될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약속 안에서,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시는 그 날을 바라보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