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구원론의 주제
구원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새 창조로서의 구원을 다룬다. 구원을 새 창조로 이해함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새 창조라 함은 처음 창조와 대비하여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의 영역에 살고 있고 창조의 영역에 대하여 알고 있고 우리의 삶은 창조 안에 있는 삶이다. 창조의 영역 안에 삶도 있고 죽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보다 나은 삶, 보다 행복한 삶을 원하고 이를 추구한다. 특별히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죽음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많은 고통이 제거되길 원한다. 즉 사람들은 구원을 원한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지니고 있고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구원을 희망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사람들의 이런 고통과 구원의 희망과 관계 있는가? 우리가 새 창조로서의 구원을 말할 때 구원이란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고통에서의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이 새 창조라 함은 우리가 창조의 영역 안에서 이미 알고 있으나 누리고 있지 못한 삶을 얻는 그런 경험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고 이놔는 전적으로 다른 영적 차원의 사실이란 말이다. 물론 구원을 얻은 자는 현실의 삶에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인생의 곤란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거싱 구원의 본질이 아니다. 구원이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나타난 새로운 실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보이는 삶의 영역에서의 경험으로 판단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창조에 속한 것들이다. 보이는 면에서 얼마나 크고 좋은 변화를 가져왔느냐 하는 관점으로 구원을 평가하려 하면 우리는 구원을 이 세상에 속한 것들과 혼동하게 된다. 구원이란 영적 사실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핵심으로 갖는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새 창조가 나타났고 그와 연합하는 자들이 이 새 창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창조에서 새창조로 자신의 삶의 영역을 바꾼 자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가장 중요한 구원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구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특별히 무언가 남다른 성품과 인격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서의 구원은 사람들에게 감추인 것이다. 구원은 그런 의미로 계시의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계시이듯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구원도 계시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눈에 보이고 그들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그러나 구원의 사실은 그렇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오히려 보이는 영역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행복을 바라고 그것을 그리스도에게서 기대하지만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에게 고난과 죽음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한 자만이 부할에 연합한다. 이런 의미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구원의 개념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그리스도의 구원은 전혀 구원이 아니다. 오히려 심판이고 죽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원은 바로 십자가에 참여함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찬조에서 새 창조로 전환할 때 이런 죽음의 경험을 하게 된다. 창조에서 새 창조로 넘어가는 것은 단지 삶의 부정적인 것이 극복되고 삶에 평화와 자유가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하여 죽고 이제는 전혀 새로운 삶에로 옮기는 것이다. 이런 구원은 경험적으로 보아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죽음과 고난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새 창조의 사작이 있다. 여기에 전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주어지게 된다.
이렇게 구원을 이해하면 구원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삶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의미하고 우리의 현재적인 삶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이렇게 전적으로 영적인 사실이고 또한 경험적으로 보아 오히려 죽음을 전제하는 것이나 동시에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구원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할 때 이것은 영적인 사실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나 이 연합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 구원의 현재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삶이다.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그 연합에서 나오는 풍성한 삶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 안에 있다는 것은 그가 십자가와 부활로 가져오신 새 창조의 삶의 모든 다양한 국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게시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니므이 거룩,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새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체험되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은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새 창조는 창조와 다른 차원의 영역이고 우리가 새 창조의 영역에로 옮겨져 거기서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 이 땅에서 의 삶의 경험과 다른 것을 주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삶 못지 않은 실질적인 경험을 준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변화와 경험이 동반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드러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만을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도 현실적으로 경험한다. 십자가에 연합함이 있는 곳에 부활의 생명이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죄 사함으로 인한 펴화와 자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의 거룩함과 사랑이 현실적인 어둠을 정복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한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생명의 현재적인 채험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지만 그 안에서 또한 부활의 놀라운 생명이 역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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