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과 경배 인도법
찬양예배는 예배전체가 한 곡의 찬송 같은 느낌을 주도록 해야만 한다. 따로 떨어진 한곡 한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배로 느껴지도록 곡의 연결과 말씀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1. 선 곡
찬양예배 전체가 한 곡의 찬송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선곡이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진행을 위해 선곡시에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들을 살펴보겠다.
가. 가사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참된 찬양예배는 경배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찬양의 연결이 메시지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어떠한 것을 바라시는지 잘 분별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인도자, 또는 회중이 원하는 주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말씀을 전할 사람과 먼저 한 마음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찬양의 주제는 승리, 기쁨 등인데 말씀이 회개여서는 곤란하다. 서로 기도하며 함께 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찬양은 설교가 아님을 잊어선 안된다. 찬양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으로는 말씀의 주제와 충돌을 피할 정도면 족하고 적극적인 경우도 말씀과 잘 어울리는 찬양이면 좋지만 그 메시지가 너무 강하게 나타나서도 곤란하다. 그리고 메시지는 전개 부분에서 넣는 것이 좋다. 절정은 순수한 찬양이 되는 것이 좋다. 주제를 정한 뒤에는 전체의 전개를 구상해 보아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예배의 형태이다. 그것은 예배의 형태에 따라서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찬양예배 진행의 기본 형태를 편의상 표현해 보면 도입 - 전개 - 절정 - 결말로 생각할 수 있다.
절충형은 도입 - 전개 - 절정으로 찬양은 일단락 되고 결말의 자리에 말씀이 들어가는 형태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찬양으로 결말까지 간 뒤에 말씀을 선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입, 전개, 절정, 결말은 무엇인가? 도입은 찬양예배 시작부분으로서 순수한 찬양곡들을 부르는 것이 좋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전에 올라갈 때는 찬양하며 올라갔다고 한다. 이 원리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처음 시작은 고백이나 간증 같은 내용이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곡들이 좋다. 그리고 찬양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신앙수준이 전체적으로 매우 헌신된 분위기라면 모르되 처음에는 가사도 너무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헌신이나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이 너무 강한 가사는 도입부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 도입부는 회중을 예배로 이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 찬양의 주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떤 인도자를 보면 도입부에서 새 찬양을 배우기도 하는 데 첫 곡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앞에도 말했지만 처음은 순수한 찬양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도입부에서 어느 정도 찬양을 한 뒤 전개로 넘어가기 직전에 배우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새 찬양을 배운다는 것은 찬양의 흐름을 끊을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배 시작 전에 새 찬양을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입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찬양을 몇 곡 부른 뒤에 회개를 촉구하는 찬양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곡을 불러야 한다는 원칙이 꼭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작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높이는 곡으로 시작하되 회중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찬양으로 인도해 들이는 것이 도입부의 역할이다.
전개는 상당히 자유롭다. 이미 도입부에서 부른 찬양들로 마음이 열려 있으므로 다소 부담스러운 곡을 불러도 좋고 가벼운 곡을 부를 수도 있다. 전개는 어떠한 곡이든 부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시편의 찬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하나님을 높이는 말로 시작해서 간구, 탄원, 감사, 고백 등을 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을 높이고 끝난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도록 해야하는 부분이 절정이라고 생각할 때 전개는 절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과정으로서의 역할만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한 메시지를 담고 싶다면 이 전개 부분에서 전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전개의 부분에서 그날 찬양의 메시지를 나타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교제의 찬양도 전개 부분에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전개 부분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찬양예배에 적합치 않은 가사를 가진 곡들도 그날의 메시지에 도움이 된다면 한곡정도는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조금 다른 얘기지만 하덕규집사님의 '쉼'이라는 앨범은 좁은 의미의 가스펠 송이다. 그런데 이 앨범의 구성을 보면 한곡 한곡만 보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느끼기 힘드나 전체를 보면 그 앨범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어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찬양예배의 곡들 또한 한곡 한곡으로 이해되지 않고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곡의 내용이 무엇인가도 중요하지만 이 곡이 이 흐름에 적당한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단 가사가 역행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찬양 - 회개 - 간구 -고백 - 감사 - 찬양 - 경배 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앞의 순서는 점점 깊은 단계의 찬양으로 나가는 것이다. 회개, 고백, 간구 등의 순서는 바뀔 수도 있으나 나머지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곤란하다. 하나님께 점점 더 깊은 찬양을 드려야지 깊은 찬양을 드린 뒤에 가벼운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흐름에 맞지 않는다. 물론 중간에 한 두 가지를 뛰어 넘는 것은 상관없다. 그리고 완전히 경배의 단계에(이것은 전개가 아닌 절정에 속한다.) 들어간 뒤에는 다시 정리의 단계로 조금씩 가벼운 곡을 부를 수도 있다. (물론 인도자가 뛰어날 경우 한번의 찬양 예배에서 여러 차례의 절정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의 찬양을 부른 뒤 감사의 찬양을 부르고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회개의 노래를 한다면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적당치 않음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찬양인도자들이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예배를 인도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절정은 온전한 경배로 들어가는 것이다. 절정부의 앞부분은 순수한 찬양곡들이 좋으며 중간에 헌신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곡을 부르고 완전한 경배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중간에 헌신을 촉구하는 노래도 철저히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 속에 헌신과 결단을 요구하는 가사가 섞여 있는 곡을 쓰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은 별로 없고 헌신과 결단을 강조하는 내용만이 들어있다면 전개부에서 사용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절정에선 피하는 것이 좋다.(이것은 권장 사항일 뿐 반드시는 아니다. 목적은 우리 자신이 온전히 주님께 무릎꿇고 순종하게되는 경배에 있는 것이다.) 만일 회중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교회 담임교역자의 지도 방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절정의 마지막에 방언찬양을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회중 중에 연약한 자가 많거나 지도 교역자의 지도방침에 어긋난다면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좋다.
방언찬양 :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알고있는 찬송을 방언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중예배에 있어서 방언찬양은 단순히 가사만 방언으로 바꾼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찬양의 절정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찾을 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가사 알지 못했던 곡조의 노래가 나온다. 회중들이 제각기 다른 말 다른 곡조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한데 어울려 아름답고 웅장한 코러스를 만들어 내는 데 이러한 찬양을 하는 모임들이 있다. 어떤 모임에선 에베소서 5장 19절에 나오는 신령한 노래는 방언 찬양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의 할 점은 방언 한다고 해서 방언찬양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한때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언찬양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져서 방언을 구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방언을 받은 뒤에도 한동안은 방언찬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필자가 방언찬양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찾었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말부분은 사실 없어도 되는 부분이다. 절정에서 온전한 경배를 했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흥분되고 기쁨이 충만한 마음을 세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라앉히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절정 뒤에 말씀이 이어진다면 결말 부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말씀 선포자가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충형의 경우는 결말이 필요 없다.(찬양을 말씀 뒤에 몰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일반형의 경우에는 말씀 뒤에 다시 절정 - 결말로 이어지는 형태와 그냥 결말로 가는 형태가 있는 데 전자의 경우는 선포된 말씀에 근거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과 헌신의 경배가 이어진다. 그리고 결말을 맺는 것이다. 후자는 말씀선포가 마쳐질 때의 기도로 절정을 끝내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하는 것이다.
나. 음악 선곡에 있어서 음악적인 요소와 음악적인 연결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시작은 너무 빠른 곡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모인 사람들이 모두들 아주 성령 충만하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인위적인 성령 충만을 연출할 위험성이 있다. 즉 빠르고 즐거운 찬양은 자연스럽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져서 나와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기쁨이 차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러한 빠른 곡이 회중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즐거운 찬양이 마음 문을 여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이 아닌 신나는 노래로 인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련회라든가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있는 성령 충만한 모임이라면 처음부터 빠른 곡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로 시작할 때 너무 느린 곡, 또는 무거운 분위기의 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 않다. 자칫하면 그렇지 않아도 세상에서 지친 상태로 온 성도들을 더 지치게 할 수도 있다.
찬양예배에 있어서 곡의 음악적인 진행은 보통속도의 곡으로 시작해서 차츰 가볍고 밝은 곡으로 진행한 뒤 힘찬 곡으로 그리고 깊이 묵상할 수 있는 느린 곡으로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음악만을 생각한 이론이다. 가사와의 관계를 생각해야만 한다.
가사도 진행이 자연스러워야하고 음악의 진행도 자연스러워야한다. 찬양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한곡의 찬송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빨라지고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물론 극적인 전환(강조를 위해서 때론 필요하다)도 한 두번 정도는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을 갑자기 바꾸는 전환은 자주 있어선 곤란하다. 그리고 가능하면 음악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한곡 같은 느낌이 계속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음악이 계속이어 지면 인도자의 짧은 메시지나 기도시간도 찬양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찬양 한곡 한곡 끊어서 부르지 않고 계속 이어서 부르는 것이 더 은혜롭다.(이것은 경험적인 것일 뿐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끊이지 않고 찬양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코드 진행과 편곡에 있다. 예를 들어 C코드로 된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음악을 끊지 않고 바로 E코드로 된 곡을 불렀다고 하자. 노래가 이어졌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까? C코드에서 E코드로 바뀌는 순간 음의 높이 차이 때문에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린다. 이것은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코드의 진행이 어떻게 될 때 자연스러운가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한다.
C코드의 기본 진행은 C - F - G7이다. 그러므로 C코드의 곡에서 F코드 곡으로의 연결은 매우 자연스럽고 음잡기도 쉽다. 물론 G코드로의 연결도 괜챤지만 F코드로의 연결만큼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그리고 C코드와 Am코드는 장조와 단조의 차이지 기본적으로 같은 조표를 지니고 있다. 즉 음계의 위치가 같다.(무슨 뜻인지 모르시는 분은 피아노나 기타를 치는 분에게 물어보시길...) 그러므로 C코드에서 Am코드로의 전환도 매우 자연스럽다.
그리고 Am코드에서는 Dm코드와 Em코드가 자연스럽고(C에서 G로의 변화처럼 Am에서 Em로의 변화도 Dm로의 변화처럼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여기서 약간의 응용을 한다면 C코드에서 Dm코드로의 변화도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잘 모르는 분을 위해 각 코드에서 변환할 수 있는 코드를 적어보면 위의 [코드 변환표]와 같다. 여기서 C에서 Cm로 변환하는 것은 같은 으뜸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앞에 곡의 마지막음과 뒤에 곡의 첫 음이 같다면 상당히 자연스러울 수 있다. 특히 기타 반주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피아노에서는 약간 부자연스럽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너무 복잡하므로 설명을 피한다. 이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코드진행 외에도 같은 곡을 반음 또는 한음을 올려서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사와 곡조가 같은 상황에서 반음, 또는 한음을 올리면 그것은 같은 노래라는 느낌은 깨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한번의 찬양인도에서는 2번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코드의 진행뿐만 아니라 곡의 빠르기도 곡 진행의 연결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곡의 속도 변화가 너무 심하다면 그것 역시 한곡이라는 느낌을 줄 수 없다. 점점 빠른 곡으로 점점 느린 곡으로 이동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빠른 곡과 느린 곡 사이의 중간 곡을 배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단조로된 빠른 곡이 매우 유용하다. 원래 단조는 느리고 가라앉은 분위기인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단조로된 빠른 곡도 많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 민속 찬양들) 이러한 곡은 속도를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 온 땅이여 주를 찬양은(Em코드) 매우 빠른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을 느리게 불러 보라 색다른 느낌이 날 것이다. 그 나름대로 새로운 맛이 느껴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여호와,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주께 노래로 찬양하리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단조로 된 빠른 곡은 아니지만 빠르게 불러도 좋고 느리게 불러도 좋은 곡들이 있다. 이러한 곡을 많이 알아두면 매우 편리(?)하다. '살아 계신 주'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 회중 선곡할 때 고려해야할 또 한가지는 회중이다. 아무리 좋은 찬양도 회중이 따라 부르기 너무 어렵거나 회중의 정서에 맡지 않으면 적당치 않다. 특히 주의 해야할 점은 젊은이들은 별문제가 안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빠른 곡을 따라 부르기에 숨이 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김음이 많이 사용된 곡은 잘 따라 부르지 못한다. 인도자는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또 보수적인 교회의 경우 어른들은 예배시간에 복음성가를 부르는데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경우도 많이 있다. 혹 거부감은 없을 지라도 복음성가는 거룩한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이러할 때는 억지로 복음성가를 부르려고 하기보다는 찬송가를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찬송가에서도 힘찬고 무척 신나는 리듬을 가진 곡들이 많이 있다. 거기에 복음성가를 섞는 데 처음에는 빠른 곡, 신나는 곡은 넣지 않고 거룩하고 은혜롭게 여길만한 곡들 위주로 한다. 이런 식의 찬양 예배가 계속되면 날이 갈수록 교인들의 반응이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그러면 조금씩 원하는 복음성가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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