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동원가 - 왜 필요한가?
산불이 났다. 겨우내 가물었던 산하가 온통 땔감이 되어 때마침 불어대는 봄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현장에는 나외에 아무도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을 무엇일까? 만사를 제치고 불끄는 일을 시작할 것인가? 하지만 환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번지는 속도도 빠르다. 그냥 외면하고 말 것인가? 어차피 내 책임도 아니고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괜히 만용을 부리다 방화범으로 의심이나 받는게 아닐까? 하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양심 문제도 있고, 엊그제 묵상한 말씀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아니었던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짐짓 모른 체했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되는 건 정말 싫다. 뭔가 하긴 해야 할텐데...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최우선의 일은 자명하다. 속히 사람들에게 알려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선교동원가(mission mobilizer)는 바로 그러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불이 난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만을 헤아리는 영혼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고, 멸망의 길로 향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분연히 일어나 선교지로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중차대한 과업의 완수를 위해 동역할 일꾼들을 동원하는 일은 더 시급하다.
저명한 선교지도자 랄프 윈터 박사는 그가 책임자로 있는 미국 세게선교센터(USCWM)의 격월간지 'Mission Frontiers'를 통해 선교동원이 남은 과업의 완수를 위한 최우선의 전략임을 거듭 강조해 왔다. 선교한국 '92 강사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한인 선교사들 및 선교단체 지도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도 전문적인 선교동원가들을 즉시 확보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국내 사역의 요청을 받고 고민 중이던 본인은 기회를 틈타 윈터 박사를 독대하게 되었는데, 그는 내가 동원사역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한 우선순위라며, 당시 선교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역중이던 한인 선교사들 중 절반은 본국으로 돌아와 동원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변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한국 선교의 열기가 가히 정점에 이르렀던 당시 상황을 간파한 그는, 그런 상황이 마냥 지속되리라는 방만한 낙관주의에 빠지는 것은 근물이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동안 우리의 선교적 잠재력을 최대한 동력화 해놓지 않으면 이내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예견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서서이 머리를 드는 요즈음이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학국교회의 성장률이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기세등등하던 선교의 열기도 어느덧 멈칫거리고 있다. 줄줄이 밀려오던 선교헌신자들의 행렬이 최근들어 부쩍 뜸해진 게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선교대회도 예년 같지가 않다. 너무 많은 참가 신청자들 때문에 누구는 받고 누구는 거절해야 할지 고심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이제는 선교한국을 비롯한 크고 작은 선교집회들을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예전같지 않다는 게 관게자들의 평이다. 쉽게 달아오른 남비가 쉽게 식듯 우리네 선교가 너무 실속없이 고속으로 부풀었다가 이제야 거품이 가라앉으며 제자리를 찾는 것인지는 모르나, 불과 십여 년 반짝거리고 스러져버리는 한국선교가 되도록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복음이 소개된 지 백 년만에 겨우 물꼬가 트이는 듯했던 우리네 해외선교가 용두사미가 되도록 강 건너 불보듯 방관하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않겠는가! 식어가는 심지를 새롭게 불붙일 용광로 같은 동원가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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