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망한 예배자 1.

예림의집 2008. 9. 26. 22:58

이사야 6:1-5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엿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슴이로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망한 예배자가 된다. 종종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화함과 위로를 경험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만남은 전혀 다른 종류의 만남이었고, 거룩한 순간은 불안과 자기 반성으로 나타났다. 선지자는 전능하신 주님을 만나고, 결코 이와 같은 만남의 순간은 다시 없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그 빛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깨지고 놀라고 떤다. 그러나 이러한 깨짐은 파멸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를 더 강하고 더 순수한 예배자로 다시 회복시키려고 그를 모조리 드러내셨다. 이 회복된 예배자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라고 마음에서 부르짖는다. 물론 경배에는 기뻐하고 만족하며 평안하기까지 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이 절말 우리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시는 때도 있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거룩하신 조명 아래 두시고, 거기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보다 더욱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이것을 '하나님의 면밀한 사랑' 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항상 온유하시고 결코 잔인한 행동을 하지 않으시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강인한 사랑으로서 종종 호독하기도 하다. 그분은 거룩한 백성을 강조하신는 거룻한 왕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또 단지 그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을 훌련시키시는 완전한 아버지시다.

 

최근에 나는 미국에서 열린 워십 투게더(Worship Togerther) 집회에 예배 인도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평상시처럼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생각하며 내 마음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예배 인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인도한 1부 예배에서 최상의 준비를 했다.

회중 가운데 섰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내 마음에 새롭고 강력한 방식으로 임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드럽게 위안을 주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그간 알지 못했고, 이제서야 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언짢게 했던 작은 무언의 태도들과 행동들이 내 마음의 표면에 떠올랐다. 자존심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지원을 대부분 거부하면서, 하늘 아버지의 승인을 구하고 있었다.

'왜 나는 에배 인도자로서 여기 이땅에 있는가?' 난 궁금했다. '나는 지금 무대를 벗어나, 단지 회중 속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에만 합당해야 한다.' 나는 망한 예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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