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 2.

예림의집 2008. 9. 7. 21:14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 2.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응할 때 불평하고 괴로워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지만, 그년는 만족과 찬양의 길을 선택했다. 날마다 우리의 길에 놓인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이 두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에 직면하고 있다.  괴로움은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어져 버린다. 괴로움은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문구를 잊어버리게 하고, 그분은 신실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만족은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들을 끝없이 공급한다.

그리고 주님을 찬양할 끝없는 이유가 있다. 난 언젠가 피트 워터맨이 세상의 대중 음악에서 사랑 노래들에 관해 하는 말을 들었따. 그는 냉소적으로 단지 '사랑해요', '미워해요', '떠나가요', '돌아와요'의 네가지 노래들만 작곡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경배곡들을 작곡한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마음에서 얻을 수 있는 자작곡의 재료들이 그보다 더 많다는 것에 감사한다! 난 절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 없다. '그래, 하나님은 너무나 많이 감춰져 있어...난 다음에 무엇을 작곡하지?' 눈부신 주님의 영광과 놀라운 주님의 마음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에게 영원토록 새로운 노래들을 부어 줄 것이다.

 

아가서의 마지막에 억누를 수 없는 경배에 대한 환상적인 선포가 나온다.

  "...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아 8:6-7)

너무나 자주 내가 드리는 경배는 복잡하고 투쟁적인 이 세상에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불이 심지어 가장 강한 반대 물살에서도 꺼지지 않고 씻겨 내려가지 않는 곳, 즉 결코 사라져 버릴 수 없는 경배 가운데 있기를 열망한다. 불을 끄는 사람들은 불이 계속 해서 타오를 때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 요소, 즉 열과 산소와 연료 중에 하나를 차단한다. 다시 말해 불을 끄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타고 있는 물체에 물(혹은 이런 종류의 어떤 물질)을 끼얹어 식히거나, 산소의 유입을 막거나,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지닌 경배의 마음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타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고자 열망하지만, 그 방식들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타게 하는 어떤 것을 잃을 수 있다.

 

먼저, 물이 불을 끌 수 있는 것처럼, 또 그렇게 삶의 무거운 압력과 시험들이 경배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저하시킬 수 있다. 곤고한 시간에 다소 '열정이 식고', 경이감과 신뢰감을 잃기가 너무 쉽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신 잉를 묻고는,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가 다시 경배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우리의 경배를 느슨하게 풀어 버린다. 아니면 우리는 더 이상 경배하는 것처럼 '느끼지' 못하기에, 경배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힘든 상황들로 인해 경배를 벗어 던진 많은 예배자들을 보아 왔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더 강하지는 않았지만 전처럼 그렇게 강하게 타오르는 경배의 마음을 드러냈던 사람들도 보아 왔다.

 

'항상 신뢰하고, 항상 소망하고, 항상 인내하며' 삶의 폭풍우를 여전히 불타는 마음으로 통과하는 그런 부류의 예배자가 있다. 이런 예배자는 이따금씩 단순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사방에서 힘들게 어려움을 당하고, 지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선택에 직면한다. 우리의 시선을 환경에만 고정하든지, 아니면 심지어 이 선택이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께 매달려 그분께 경배하든지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내하는 경배자의 제물을 사랑하신다. 비록 많은 문제들이 억누른다 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훨씬 더 압도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