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첫번째.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 1.

예림의집 2008. 9. 2. 21:25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 1.

 

이 세상은 깨지기 쉬운 사랑, 즉 차버리는 사랑, 시들어진 사랑, 이혼하는 사랑, 이기적인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는 다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경이로움에 진심으로 감격하고, 불타는 사랑이 있기에 소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고, 어떤 환경이라도 이겨냅니다. 이 사랑은 그 사랑에 반응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스스로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불멸의 헌신으로 죽음을 맞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모입니다. 이제 주의 부활의 능력으로 살고 있는 그들은 억누를 수 없어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어 드리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성경은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들로 가득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기가 꺾이거나 낙담하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리 활량한 시절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라도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선택하기로 결정한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 자세를 좋아합니다.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뭉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2:17-18)"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 역시 결코 하나님을 경배하기에 좋은 조건 속에 있지 않았지만, 극복하기로 결심합니다. 노래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당신은 그들이 감방에 그냥 앉아만 있더라도 그들을 용서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체포되었고, 매맞고, '심하게' 채직질을 당했고, 발에 차꼬가 채워진 채 가장 깊숙한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바울과 실라는 자기들 안에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기들의 영혼이 낙담하지 않게 하려고, 자기들에게 남은 모든 것으로 경배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무화과나무도 없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도 않지만, 하박국과 바울과 실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원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항상 찬양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황들을 좋게도 변하고 나쁘게도 변하지만, 하나님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19세기 미국 찬송가 작사가인 화니 크로스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아기였을 때 일어난 사고로 삶이 변해 버린 이야기였습니다.

 

태어난 지 약 6주가 되었을 때,

난 병이 들었고 눈의 시력이 너무 떨어져서,

나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내 눈에 습포를 댔다.

그들의 지식과 기술 부족으로 나는 영원히 시력을 잃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들의 얼굴이나

들판의 꽃들, 또는 푸른 하늘이나 아름다운 황금빛 별들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곧 나는 다른 아이들이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알았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다'라고 부르는 작은 보물을

내 마음에 담아 두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실제로 화니 크로스비가 이 찬양의 가사를 썼을 때는 겨우 여덟살이었습니다.

 

난 얼마나 즐거운 영혼을 지녔는가!

비록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난 이 세상에서

만족하려고 결심했네.

 

얼마나 많은 복을 내가 누리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이 복이 없으리.

내가 장님이기에 울고 한숨짓는 일

난 할 수 없으리, 하지 않으리.

 

그리고 이 만족하는 예배자는 대략 8,000곡의 찬송가 가사를 썼습니다. 이런 수천 개의 곡들은 단지 그녀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향해 타올라 꺼질 수 없었던 불의 결과였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화니, 당신은 장님이 아니었기를 원하죠?" 그녀는 늘 말하던 대로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장님이어서 좋은 점은 내가 맨 처음 볼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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