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평신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사역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었다.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구역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데 소수의 평신도를 참여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평신도가 말씀 사역에 봉사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일에는 거의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가 겉으로 판단해서 믿으밍 좋고 은사가 있어 보이면 무조건 일을 시키는 형편이었다. 그 결과 교히 안에 문제도 많이 일어났고, 대다수의 평신도가 아까운 젊음과 은사를 낭비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다.
사역훈련이란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 중에서 여러가지로 보아 말씀을 가지고 다른 형제들을 섬길 수 있는 자들을 선발해 준비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예수처럼 되게 하고, 예수처럼 살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세워주는 데 그 초점이 있지만, 사역훈련은 교회 안에서 교역자의 지도 아래 말씀을 가지고 다른 형제(자매)를 섬길 수 있는 '작은 목사'를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교역자의 분신(分身)이 되어 목회를 돕는 평신도 지도자를 발굴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다. 제자훈련을 받은 자가 빠짐없이 말씀 사역에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받은 다음 각자의 은사에 따라 어떤 일에 봉사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해야 할 영역은 얼마든지 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다양한 지체를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사역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특별한 신분이나 된 것처럼 교만해서는 안된다. 단지 말씀 사역이 가장 근본적인 영역이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어서 다른 영역에서 봉사하는 자들보다 더 많은 준비와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 사역에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조금이라도 성경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가르치면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씀 사역이다. 그러므로 남보다 더 많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말씀 사역을 잘할 때는 어느 영역의 봉사자도 맛볼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병들었던 영혼이 새롭게 되고, 가난한 영혼이 하늘의 부요함을 맛보는 기적들이 말씀 사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에 부름을 받은 자는 남다른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훈련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에 지나지 않는 자기 자신을 귀한 사역에 불러 주신 주님게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훈련을 받을 동안 더 큰 말씀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성령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기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야 하고, 어떤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격과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바울처럼 부단히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 전에 굼을 꾼 메시아 시대의 대장부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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