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확신
성령님께서는 중생한 자들 속에 거하시는데, 이렇게 우리 속에 내재하시는 것은 이제 우리가 그분의 소유임을 암시하는 하나님의 "인치심"을 뜻합니다(고린도후서 1:22). 바꿔 말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9)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객관적인 징표 외에도,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성애를 우리에게 실제로 확신시켜 주십니다(로마서 5:5). 이것뿐만 아닙니다. 성경님께서는 우리의 현재의 특권을 인치시고 증거 하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속에 대한 보증이 되십니다.
"보증"(에베소서 1:14)이란 뜻의 헬라어는 "아라본(arrabon)"인데, 오늘날에 와서 이 단어는 결혼 서약을 가리키는 야혼 반지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1세기경에는 할부의 첫 지불금 내지는 보증금이라는 상업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영을 주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에 대한 첫 보증금을 공탁금으로 걸어 두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정해진 과정에 따라서 충만한 구원이 장차 소유가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상징,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 내적인 확신을 주는 "증거".
그리고 최후의 상속을 서약하는 "보증"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여러 면에서 예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소위 "성령 세례"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최고의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순절파 교회들이나 은사 운동, 즉 신 오순절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먼저 믿을 때 성령의 "은사"를 받지만, 그러나 흔히 "방언의 은사"로 나타나는 이차적이고 후속적인 체험, 일면 "성령 세례"를 필요로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이와 같은 이 단계신 체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에 의한 중생의 축복이 제일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성숙으로 나아가는 성장 과정이 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을 좀 더 깊고 풍성하게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종종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신선한 체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좀 더 생생한 깨달음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들을 가리켜 "성령 세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라는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단 일곱 번만 등장합니다. 그중 여섯 번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는 세례 요한의
말씀을 인용한 구절이며, 실제로 이 약속은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표현에서는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이 말씀은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는 것을 실감 나게 보여 주는 시각적인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