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면류관을 받으신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면류관을 받으셨을까요? 우선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면류관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의 모습으로, 권능과 영광의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7:5; 골로새서 1:15-17). 예수님께서 면류관을 받으신 또 다른 이유는 이 땅에서 당한 수치와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면서 모든 수치와 고난과 죽음에서 벗어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마태복음 26:64; 사도행전 2:22; 빌레몬서 2:9-11; 사도행전 2:9).
우리 인간들과 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유도 있습니다.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계획의 첫 번째 단계라면,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두 번째 단계입니다. 주님의 계획은 인간과 세상 만물을 이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 이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2:5-18). 사람은 온 땅과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죄 때문에 그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잃어버린 권한을 되찾고 본래의 창조 계획을 깨닫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 우리처럼 육체를 입어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경험하셨으며, 더러운 죄에서 비롯된 죽음의 고통까지 맛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로 올라가시면, 모든 만물은 주의 발아래에서 행복한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모든 인간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의미만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좀 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개인이 구원받는 건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으로 모든 자연도 회복하게 됩니다(로마서 7:19-20; 사도행전 3:21). 나아가 자연의 회복은 다시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면류관이 "통치"를 의미한다면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지 않을까?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은 무엇을 다스리시는가? 그분이 다스리시는 영역은 너무도 광범위해 죄로 오염된 우리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면류관을 쓰신 통치자는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존재를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다"(에베소서 1:20-22; 히브리서 2:6-8). 모든 존재가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고 말씀 아래 무릎을 꿇습니다.
이오 관련해 빌립보서는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잇습니다(빌립보서 2:9-11). 바울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하늘에 있는 자들", "땅에 있는 자들", "땅 아래에 있는 자들" 이렇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땅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땅 아래에 있는 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의외로 다가옵니다. 땅 아래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악한 영들의 세계가 아닙니까! 성경에는 어둠의 세력 또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에베소서 6:12; 골로새서 2:15), 이는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골로새서 2:10; 에베소서 3:10; 고린도전서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