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①

예림의집 2022. 9. 17. 10:27

예측할 수 없는 예배자①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은 십자가에 차츰 다가가는 주간이었고, 긴장감으로 예수님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가혹하고 부정적인 태도들에 둘러싸였으며 배신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 압박은 날마다 가중되었습니다. 곧이어 겟세마네와 골고다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괴로운 가운데에서도 "쓰디쓴 사막에서 달콤한 오아시스 같은" 아름다운 행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이라 부르는 사람의 집에 계셨고, 그때 갑자기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녀는 옥합을 깨뜨려,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머리 위와 발등에 옥합의 향유를 전부 쏟아부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미친 일이었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여긴 한 가지 이유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향유는 한 번에 전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씩 떨어뜨려 일정하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행위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분에게 이것은 시기적절한 헌신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특별한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냉소적인 종교적 태도에 물들지 않은 한 여자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종교적 태도들과 마주쳤지만, 그런 태도들 때문에 영향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규칙들"을 알지 못했던 한 여자의 경배였습니다. 예수님의 영화로움을 보기 원했던 예측하지 못한 때 묻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예배자인 우리도 우리의 경배에서 이런 종류의 예측 불가능성을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항상 신선하고 놀라운 측면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생명의 표시입니다. 경배는 서로 대면하여 즉흥적인 방법으로 사랑이 오고 가는 흥미진진한 만남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배는 대화이며,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으며 끝없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만날 때,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생명력을 빼앗아 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절대 하나님과의 연애 감정이 무뎌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우리의 경배가 연인 간의 애정 사건보다 더 이론적이어서는 안 됩니다.(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