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찬송은 전심으로 하는 것

예림의집 2022. 9. 12. 21:34

찬송은 전심으로 하는 것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송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면서 그 기준을 인류 성악가나 대중가요 가수들의 가창력에 두셨다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크게 낙심하여 찬송가를 폐기 처분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에는 가창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어느 수준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아울러 아름답게 불러야만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할 때에 가창력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에 방과 후 공부로 "음치탈출"을 진행했었습니다. 당시 20명의 학생이 열심히 음치탈출을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첫날 한 말 중에 하나가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악기"라는 말을 하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위안과 감사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운 목소리, 화려한 연주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남보다 가창력이 좀 더 뛰어나다고 해서 우쭐댈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찬송에 관한 하나님의 관심은 외형에 있지 않고 그 중심에 있으며, 바로 그 열정의 농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는 어떤 찬송을 해왔을까요? 혹시 겉모양은 그럴듯한데 전심으로 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지나 않은지요. 제가 처음 찬양 사역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찬송하는지, 장송곡을 부르는지 도저히 분간하기 어려운 교회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잘못된 보수 신앙관입니다. 보수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왜곡시키지 않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칭 보수, 보수를 강조하는 교회들에서 웬일인지 찬송하는 것만큼은 비 성경적으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찬송을 제법 찬송답게 하는 교회를 향하여 이단, 삼단 운운하던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입니다. 

한 번은 제가 어느 지방 도시에 찬송 세미나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교회는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교세를 자랑했고 보수적 이기로 소문난 교회였는데, 안내를 맡은 장로님의 입에서 계속해서 보수 타령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수천만 원 주고 구입한 오르간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과연 오르간 연주 소리가 성전을 진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천여 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의 서두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붕어들입니까? 왜 입은 벌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지요? 하나님이 과연 이 오르간 소리를 듣자고 이 전에 임하셨겠습니까? 생명 없는 이따위 악기에게 여러분의 사명을 위임해 버렸습니까? 어느 장로님이 저에게 보수, 보수 강조했는데 과연 이 모습이 보수적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하는 보수는 똥물보다 못한 것 아닙니까?” 교인들이 얼굴들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진짜 똥물로 변해 갔습니다. 먼저의 그 장로님은 씩씩대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것일까요? 천만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통쾌해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보수를 가장한 불신앙이요, 중병을 앓고 있는 그들의 심령 상태를 저를 통해 지적하신 것입니다. 아픈 상처를 제가 건드렸으니 그들이 당황하고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찬양의 회복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전심으로 찬송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교문화의 잔재입니다. 오랫동안 이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유교사상이 아직도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게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찬송행위, 즉 성경적인 찬송의 방법이 오히려 유치하고 경망스럽게 느껴져서 아무 쓸데없는 절제의 브레이크를 스스로 걸어왔던 것입니다.
거기다 음악적이 요인까지 겹쳐있습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찬송가는 서양 음계로 작곡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정서에 맞춰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세계화에 따라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적지 않게 이런 문화적 차이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4부 합창을 위한 편곡 때문에 대부분의 멜로디 음이 너무 높습니다. 아마 한국사람 대다수는 멜로디 음 높이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별 문제가 없겠으나 장년들에게는 이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회 때는 대부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게 됩니다. 이 문제는 찬양인도자나 반주자가 조금만 지혜를 가지면 해결 가능한 일인데,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습니다. 회중 찬송을 할 때 음이 높은 곡은 그 음을 2-3도 정도만 낮춰서 반주하면 장년층이 찬송하는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새벽기도회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튼 이런 몇 가지 요인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교회의 찬송이 침체되어 왔고 그것이 보수적인 신앙 행위로 미화되기까지 했으나 결코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만한 행위가 아니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이제는 속히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오후 예배를 열린 예배로 드리고, 창양단도 만들고, 찬송가 이외의 곡들도 예배 때 사용하는 등 찬양의 모습들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찬송의 의무를 성가대에게, 찬양단에게 떠넘기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찬양이 활성화되었다고 하는 교회들을 막상 방문해 보면 그것은 실력 있는 유명한 CCM 가수가 있거나 찬양팀이 잘 조직되어 있는 교회들일 뿐, 실상 성도 자신들은 찬양 생활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전심으로 찬양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모습들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제가 지난 25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찬양팀을 세웠지만 그들은 예배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결코 성도들의 찬양을 대신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감사, 헌신 등은 모두 하나님과 나의 개개인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가 대신해 주거나 대표해 주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모두 인정을 할게! 당신 말이 다 옳아.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찬양하란 말인가?”그 대답은 이미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들의 친절한 찬송 교사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시 86:12)” 바로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전심의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모세를 통한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섬김에 관한 한 기본 강령이요, 찬송할 때 절대 요소가 됩니다. 예수님을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38).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전심으로 찬송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고 그것을 항상 기억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누가복음 19장 37절에 보면,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죄악에서 건져내어 영생의 반열에 세워주신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주님을 전심으로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25년 전 제가 이 길로 처음 들어설 때에 많은 사람들, 특히 가족, 친지, 벗, 선배들, 같은 동료들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었습니다. 기도 잘못해서 미친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미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은 것뿐이다. 내가 나아갈 길을 확실히 찾았고 그래서 그 길을 출발하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맞이하여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 19:37, 38)."라고 찬송했던 것처럼 체험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에게서는 항상 감격적인 찬송이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반사적인 신앙행위로써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서나 찬양팀을 모집할 때에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구원받았는가를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가창 실력은 당신 자신보다 제가, 그리고 하나님이 더 잘 아시니까 굳이 어느 CCM 가수 흉내나 내지 말고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노래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그런 마음 자세를 기뻐 받으시고 아울러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제가 모든 단원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노라고 말하면, 그동안 기가 죽어 제대로 찬양하지 못하던 팀원들이 금방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결코 뛰어난 가창력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원의 열정, 그 감격을 받으십니다. 기쁨의 고백을 들으십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구원의 기쁨을 장송곡 하듯이 표현하겠습니까? 다음 구절을 함께 마음에 세기며 큰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시 138:1).

아직도 여러분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모두 인정할게! 당신 말이 다 옳아.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찬양하란 말인가?" 그 대답은 이미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들의 친절한 찬송 교사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시편 86:12). 바로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전심이라는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모세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신명기 6:5).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섬김의 기본 강령이요, 찬송할 때 절대 요소가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7절과 38절,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전심으로 찬송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고 그것을 항상 기억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누가복음 19장 37절에 보면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체험이 깃든 찬양이 되어야 함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죄악에서 건져내어 영생의 삶으로 이끌어주심을 생각하면 주님을 전심으로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0년 전 제가 이 길로 처음 들어설 때 많은 사람들, 특히 가족, 친지, 벗, 선배들, 동료들이 저를 이상하게 여기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기도를 하다가 잘못해서 미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미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은 것뿐이다. 내가 나아갈 길을 확실히 찾았고, 그래서 그 길을 출발하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맞이하여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누가복음 19:37, 38).라고 찬송했던 것처럼 체험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에게서는 항상 감격적인 찬송이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반사적인 신앙 행위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입니다. 기쁨과 감사의 표현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서나 찬양팀을 모집할 때에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구원받았는가를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노래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가창 실력은 당신 자신보다 제가, 그리고 하나님이 더 잘 아시니까 굳이 어는 CCM 가수 흉내나 내지 말고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노래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그런 마음 자세를 기뻐 받으실 것이라고 다독입니다. 아울러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제가 모든 단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노라고 말하면, 그동안 기가 죽어 제대로 찬양하지 못하던 팀원들이 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매번 강조해 말했듯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결코 뛰어난 가창력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원의 열정, 그 감격을 받으십니다. 기쁨의 고백을 들으십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구원의 기쁨을 장송곡 부르듯 표현하시겠습니까? 다음 성경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큰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 하리이다"(시편 138:1). 사실 "전심으로"라는 말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전심으로"가 다를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