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현존에 들어가기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출애굽기 24장 1-18절).
우리는 앞의 몇 장을 통해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셨고, 모세는 이 규례들을 차례대로 백성들과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라고 하시면서 시내산 꼭대기에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분의 현존 앞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1절에서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 나답과 아이후 그리고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산꼭대기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는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1절, 아론과 나답과 아이후와 칠십 명의 장로들은 "멀리서 경배" 해야 했고 오직 모세만이 여호와의 현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에 가따이 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면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수를 이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긍휼과 자비까지 베풀어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거나 그분의 현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과 하나님과의 참된 친밀함을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론과 그의 두 아들과 칠십 명의 장로들은 산에 오르는 것까지는 허용되었지만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의 현존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 모세가 그의 형 아론인 칠십 명의 장로보다 더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현존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대리인의 역할로 모세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었지만 단지 그가 하나님의 특별 대리인으로 선택되었을 뿐입니다.
때로 우리는 왜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할 때도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선택을 우리는 종종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놔두고 그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현존 앞에 나아가기 전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3절, 하나님이 그의 종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4절, 이 율법들을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모세는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다음 젊은 이스라엘 청년들을 뽑아 번제를 드리게 했고, 화목 제물로 여호와께 소를 바쳤습니다. 화목제를 마쳤을 때 모세는 제물의 피를 모아서 그중 절반은 그릇에 담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 위에 뿌렸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는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들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언약서는 4절에서 모세가 적어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그분의 율법과 규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언약서를 읽은 다음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에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을 공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언약 책에 있는 말씀에 복종하겠다는 백성들의 대답을 선포한 다음 모세는 남은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며 8절,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피를 뿌리는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성립된 언약을 봉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언약의 책에서 읽은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법적으로 준수해야 했습니다. 이 준요한 의식이 끝난 다음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이후와 칠십 명의 장로들은 산으로 올라갔으며, 10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10절은 그들이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한" 무언가를 보았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걸어오신 길을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안전히 압도당했습니다. 그러나 1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그들을 치지 않으셨고 그들은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걸어오신 길을 본 것만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이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더 가까이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돌판을 가리키셨습니다. 율법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계명들을 돌판 위에 새겨놓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장로들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번에는 부하인 여호수아와 함께 갔습니다. 모세는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부하면서 14절, 아론과 훌이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지만 15절에서는 모세만이 꼭대기에 덮여있는 구름을 향해 올라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으로 내려와 육일 동안 산꼭대기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가 부르신 것은 16절, 칠 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이 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만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사나 말씀으로 그분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그들이 경험한 것은 만나와 희생 제사와 그들이 들은 율법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장로들 또한 백성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그들은 산으로 올라오라는 부르심으로 인해 그분을 좀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걸어가시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걸어가시면서 그분의 모습을 좀 더 드러내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현존의 한 부분을 경험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장로들이 경험했던 것은 제사나 말씀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현존의 확실한 증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으로 걸어가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마음을 드러내셨고 그에게 그분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모세가 경험했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깊이는 그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모세는 하나님의 현존을 두려워했습니다. 타오르는 불꽃에 다가가는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장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걸어오시던 자리를 보았을 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워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올라가서 타오르는 불꽃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있는 훨씬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돕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아래와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이사야 6:5). 그러나 신약에서는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주님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봅시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요한계시록 1:17). 하나님은 여전히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분의 현존은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히 주님의 영광을 폄훼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이 경이로운 특권임을 잘 알 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 영광을 본 후에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거룩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그분의 인격을 경험할 수 있는 율법(성경)이나 제사(예배)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이것은 소홀히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더 온전한 관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칠십 명의 장로들을 그분의 현존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그분의 현존을 더 깊이 경험케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가 주님의 존전으로 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 회개해야 할 것,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을 드러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알기 위해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예림교회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가운데 훨씬 더 위대한 방법으로 주님을 경험하는 데 방해가 도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깨닫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ε♡з교회 사역...♡з > 말씀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막 (0) | 2022.09.03 |
---|---|
성소에 배치되는 성물 (0) | 2022.08.28 |
절기와 제물 (0) | 2022.08.13 |
정의와 진리와 공평 (0) | 2022.08.06 |
사회적 임무와 영적인 임무 (0) | 2022.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