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4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5. 17. 13:10

예림의집 2544번째 이야기

날마다 감사

집과 가정..!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심지어 폭풍우가 몰아쳐도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집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두 발 뻗고 언제든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또한 이 집에서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비록 연약한 부분이 있어 가시로 서로를 찌를 때도 있지만, 웃는 날이 더 많은 행복한 가족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낮아 풍족한 양식을 먹을 수 있다면 또한 감사합시다. 이 땅에 배고픈 자가 적지 않은데 끼니마다 걱정하지 않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시다.
무엇보다 이 집을 통해 온 가족이 함께 누리고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알기에 모든 감사를 올려드립시다. 주님 고맙습니다. 좋은 집, 좋은 가족, 좋으신 하나님!

 

예림가족 이야기

마법처럼 그 순간이 따뜻해집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산책을 나섰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날아와 제 코끝에서 맴돌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저만치에 있는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그곳의 그 아카시아 나무는, 그 꽃향기를 뿜어내어 오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있으니, 그 존재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청소도 싹 했겠다. 커피 내리고 고구마 구워 먹으면서 책 읽어야지.." 고요한 시간을 보낼 생각에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마침 승강기도 1층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청소부 아주머니가 보였습니다. 아주머니는 키가 닿는 데까지 손을 뻗어 벽을 닦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짝거리는 바닥에 발자국이 찍힐까 봐 까치발을 하고서 올라탔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쓰고 높은 곳을 닦던 아주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우리 집이 있는 9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쉬지 않고 벽과 거울, 손잡이를 닦았습니다. “여사님 덕분에 승강기에서 빛이 나요.”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네? 정말요?”
승강기를 탈 때마다 든 생각을 무심결에 말하자, 아주머니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습니다. “저는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제가 잘 못하는 줄 알고..” “네? 전혀 아닙니다! 얼마나 깨끗한데요. 진짜예요.” 마침 문이 열려서 내리려는데,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집에 들어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아주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별것 아닌 저의 말을 기쁘게 받아주어 고맙고, 지금까지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을 건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습니다. 기분 좋은 한마디에, 마법처럼 그 순간이 따뜻해집니다.(이은주)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 했다고 해서 세금을 물리거나 경찰이 잡아갈 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이처럼 서로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칭찬과 격려의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칭찬에 너무 인색합니다. 격려보다는 비난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악플로 인하여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루 한 마디 이상, 칭찬과 격려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였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

 

단장 칼럼

한 부부 이야기


그 부부 역시 우상 숭배 영의 영향력 아래에서 관계를 시작해 나갔습니다. 그들 두 살마의 이야기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가 우상 숭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알기 쉽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16살이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의 고등부 모임에 있는 여자애들을 죽 둘러보다가, 무득 그녀야말로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나는 날부터, 긍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그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작업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그녀를 방에서 마주치게 되면 정렬적인 눈길을 보냈고, 그녀의 머리 스타이로가 입고 있는 옷, 재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습니다. 점차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함께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그녀가 즐거워할 만한 일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그녀를 아낀다고 그녀가 생각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그는 그녀를 아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기쁘게 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아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가 그녀와 함께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습니다. 그는 그녀야말로 그의 남성다움을 돋보이게 해 주는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응원부 단장이었고, 그가 본 여자들 중에 제일 예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학교와 교회 안에 있는 여자애들 중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라면 그의 환상적인 내조자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 그가 영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외에도 그녀는 그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으며, 그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의 뿌리는 우상 숭배였습니다. 그가 그녀를 원했던 이유는 그녀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뿐, 그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향해 그토록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다가가게 만든 근본 동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역시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내일 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결혼과 재혼에 대한 사도적 권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린도전서 7장 25-40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사도 방울은 임박한 환난을 고려해 처녀에게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명합니다. 결혼은 죄짓는 것이 아니지만 육신에 고난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다 지나가기에 성도는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바울은 과부가 결혼할 수는 있으나 주님 안에서 할 것이며,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전합니다. 바울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속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의 때의 환난가 곤고와 핍박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독신으로 살 것을 장려했던 것입니다.


독신의 유익(25-35절).
바울은 주님의 명령은 아니지만, 사도적 판단으로 권면합니다. 그는 처녀와 총각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 상태로 있기를 권합니다. 물론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바울은 26절 "임박한 환난"으로 인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29절의 "그때가 단축 하여진 고로"와 31절의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라" 등의 묘사는 당시 고린도 성도들이 경험하던 어떤 위기 상황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종말의 지식을 지닌 성도라야 지나가 버릴 이 세상의 외형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혼은 창조 질서에 속한 일이기에 죄가 아닙니다. 바울은 주님을 향한 헌신에 집중하는 측면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낫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흐트러짐 없는 마음입니다. 35절의 "흐트러짐 없이"와 27절의 "마음을 정하고"는 같은 의미입니다. 창조 원리에 따라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온전히 사람이 선택해야 하는 몫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니 성도의 헌신은 온전한 드림이어야 합니다.


결혼과 재혼(36-40절).
36-38절은 해석이 다양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아버지가 혼기가 찬 딸을 결혼시켜야 하는가?"라는 내용에 대한 지침으로 이해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약혼한 남자가 약혼녀와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침으로 봅니다. 개혁 개정 성경은 후자를 따릅니다. 약혼한 남녀의 경우 주님을 섬기고다 독신을 결심하면 그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39-40절에 걸쳐 과부의 재혼에 대해서도 지침을 줍니다. 과부는 재혼할 수 있으나 주 안에서만 해야 합니다. 즉 믿는 성도와 재혼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재혼의 경우에도 주님께 헌신하는 측면에서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복이라고 권면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기적 동기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그분만을 사랑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삶,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결혼보다 독신을 권한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반면, 어떻게 하면 결혼 후에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을지 묵상합시다. 또한, 결혼 여부와 상관이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깊이 묵상하시길 권면합니다!


"우리에게 속히 오시리라 약속하신 주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오늘을 신실하게 살되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준비하는 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즐거움이나 소유의 넉넉함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해 고민하고 절제하며 충성을 다하게 하시옵소서.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젊은 시절의 헌신


제가 청년 시절부터 30대 중반가지 머물렀던 교회는 제자 훈련을 잘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소그룹이 활성화되었고, 일대일 양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이 수고하고 애썼는지 모릅니다. 결혼이나 생업보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저 역시도 수고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힘을 다해 공동체와 지체들을 섬겼지만, 선배들의 헌신을 보면 기가 죽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선배들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누군가가 수고하는 일이 없이 공동체가 자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형님, 누님들이 "아이고,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로 다시는 못 돌아간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헌신하던 젊은 그 시절을 기억하며 은혜와 감격이 충만합니다. 힘을 다해 보니 우리 구주께서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질고와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아,
십자가에 죽으신 그 진리가 더욱 가슴에서 요동쳤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를 돌보지 않은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으시고 그 인생 전체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은혜에 감격해서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쳐 힘을 다해 수고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읽는 설교 골로새서/ 화종부 목사)

 

생각 다스리기

생각이 바뀌면 삶이 즐겁습니다①


이 시대는 물질 중심의 시대요 영적으로는 아주 낙후된 시대이므로, 사람들은 영적 사고, 내면의 사고에 서투릅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에만 민감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중심 동기가 더 중요시됩니다. 똑같은 액수의 헌금을 하더라도 그 헌금으로 심판을 받는 이가 있고 상급을 받는 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손으로 사람을 대접해도 그 상급은 중심의 동기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의무감에서 대접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대접하는 사람도 있으며, 상대를 이용하려고 대접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를 사랑하며 대접하는 사람도 있으며, 주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계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지만, 영계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흥에 대해서도 비슷한 오해를 합니다. 교회 건물이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쌍이고, 유명해지면, 그것이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이 건물 짓기에 목숨을 거는 것도, 그 외형을 보고 모여드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얻기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흥이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부흥이란 내적인 마음 상태의 변화입니다. 곧, 생각의 변화가 참된 부흥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유명하고 부흥한 듯이 보여도, 내적 생명이 바뀌지 않으면 영원한 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며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부흥입니다. 항상 남을 비판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말로써 사람을 섬기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부흥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 자기 가족, 자기 고민으로 씨름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아파하고 중보 한다면
그것이 곧 부흥입니다. 거칠고 사나운 사람들이 내면으로부터 온유하고 겸손해진다면 그것이 곧 부흥인 것입니다. 부흥이란 내면의 변화, 생명의 성숙이지 결코 외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땅과 물질계는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으나 하늘과 영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중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의 영혼은 지옥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계속..!)


기도의 횃불

기도와 찬송에 응답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게 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것을 소원으로 삼게 하시고, 언약해 주신 영생을 사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라고 한 다윗처럼 우리도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내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지내는 시간에 부르짖음과 찬송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저의 삶의 내용은 기도와 찬송으로 지냄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거룩함을 부르짖는 간구와 하나님을 구하는 찬양으로 표현하게 하시옵소서. 아울러 시시로 감사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찾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를 섬기게 하시며,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어 하늘의 영광에 주목하는 기쁨에 감격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찬송하고, 공동체와 함께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넘어지거나 자빠질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을 믿으며 소망을 갖습니다. 세상의 삶이 때로는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제가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는 결코 낙심하지 않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에 옥 터에 지진이 나고, 그들을 매었던 것이 풀렸던 것과 같은 기적이 역사를, 우리에게도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옵소서. 이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시며, 하나님께 동역자로 지내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가 대신해서 해 줄 때, 어떤 자녀든지 그는 자신보다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짐을 가지고 기도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게 하시옵소서. 찬송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림을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셔서 일을 해주신다는 것에 소망을 두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일을 해 주시기를 기다리며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중에, 기도하게 하시며, 찬송을 부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기도와 찬송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전적으로 기도에 의존하기..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동시에 그분은 기도로써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도 기도 없이는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그들은 영적 원수들을 물리치기 위해 전적을 기도에 의존했습니다. 기도하면 언제나 활활 타는 불이 임합니다. 이 불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혀를 풀어주고, 복음 증거의 입을 열어주며, 선행의 큰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탁을 들어주실 준비를 항상 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겠다는 놀라운 열정이 생길 것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