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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뒤덮인 세상

예림의집 2022. 3. 19. 12:21

어둠이 뒤덮인 세상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출애굽기 10장 21-29절)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리시는 재앙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그 여파로 인해 애굽 백성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의 신하들과 바로에게까지 심한 영적 타격을 입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이 다시 완악해지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흘 동안 어둠이 애굽 땅을 덮어 버렸고, 그 어둠이 너무 짙어서 사흘 동안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재앙도 고통스러웠지만, 어둠이 주는 공포는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사흘 동안 어둠이 임했다고 했지만, 당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어둠이 언재 끝날지 모르는 공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공포스러운 것은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어둠이 덮었을 뿐 히브리인의 거주지에는 빛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분명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사흘 동안 깜깜한 어둠이 뒤덮여있을 때 과연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에게는 이미 먹을 음식이 없었고 기르던 가축도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 능력에 대해 그들은 그들은 무기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은 히브리 하니님의 진노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었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다시 불러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지만 24절, 소와 양은 데려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바로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한 마리의 가축도 남겨둘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 동물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발견됩니다. 애굽 땅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참했고, 그들의 나라는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몇 달 동안 계속된 어려움으로 인해 설사 하나님의 이 끔찍한 심판에서 벗어난다 해도 원래 상태로 복구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소요될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께 바칠 희생제물까지 남겨두고 있을 정도로 고센 땅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은 12장에는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낭비라고 판단했던 유다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4-5절입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사실 유다의 본심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지금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이냐는 ㄴ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임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관대해져서 굶주리고 있는 애굽 사람들에게 고기와 곡식을 나누어주었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도 민감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일 년 치 품삯에 해당되는 값비싼 향유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의 발에 부은 여인을 옹호하셨습니다. 모세 역시 당시 고통받는 애굽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서 사도들은 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들을 어떻게 돌아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선한 일을 한다는 명분 아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쉽게 저지르곤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가축을 남겨두고 떠나는 긍휼도 베풀 수 있었겠지만, 그는 26절,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모세처럼 우리도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사역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져야 할 것입니다.

얼마 후 또다시 마음이 완악해진 바로가 모세에게 화를 내면서 여기서 나가 다시는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나면 죽여 버릴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도 다시는 바로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는 머리는 뉘우치고 회개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그 자신이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바로를 설듯하는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바로는 자시느이 완악한 마음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단 한 번의 재앙만이 남았습니다.

 

첫 번째 재앙부터 아홉 번째 재앙을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은 어떻게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그가 죄를 짓도록 종요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삶에서 선한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바로의 마음의 죄악을 내버려 두심으로 그가 완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머리로 회개하는 것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회개가 단지 지적인 회개라는 것은 그가 계속해서 그의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홉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할 때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배우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악한 상황을 선한 것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들을 통해 주님이 가르쳐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을 알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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