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가정교회②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과 교회 설립"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 전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이 왕조 시대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의 시대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카스피 해 남동쪽에 스파르타 왕국과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 그러한 번영과 안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인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사도행전 21:39; 22:3). 바울의 부모는 디아스포라 회당의 멤버였고(빌립보서 3:5), 다소의 시민권(사도행전 21:38)과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전 16:37-38; 22:25, 28). 이것은 바울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족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인 다소에서 태어난 바울은 코이네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기 서신에서 유대인의 성경을 인용할 때,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이용했습니다. 그는 스토아 사상에 익숙하여 대중 철학에서 예를 들기도 했고, 디아트리베(diatribe) 스타일을 구사할 줄도 알았으며, 그리스-로마 수사학에도 정통했습니다. 바울의 생활 무대는 대도시였습니다.
당시 도시는 경제와 문화가 번영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개척 정신이 왕성하고, 직업에 대하여 유연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해 개방적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많고 세계주의자였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또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보통 이름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셈어식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로마식 이름입니다. "사울"은 전자에 속하고, "바울"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는 어렸을 때 경건한 부모를 따라 정기적으로 회당에 다녔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랍비가 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바리새파 유대교를 공부했습니다(사도행전 23:6; 빌립보서 3:5). 예루살렘에서 받은 정규 교육은 바울에게 율법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큰 진보를 가져왔습니다(갈라디아서 1:14; 빌립보서 3:5-6). 조상의 율법에 대한 열심 대문에, 바울은 율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원시 교회를 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회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 그룹을 진멸하고자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갈라디아서 1:13).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은 갑작스럽게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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