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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 진리 50-죄

예림의집 2021. 12. 20. 09:10

기독교의 핵심 진리 50-죄

죄의 성경적 정의는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을 때 "과녁을 빗나가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빗나간 목표는 조준판의 표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변함없는 진리이신 말씀의 규범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의(뜻)를 표현하며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궁극적인 기준이 됩니다. 즉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죄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완벽한 사람은 없다." 혹은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인지상사"라는 말은 죄의 보편성을 인정한 말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구속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입니다. 죄는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규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서 부족하거나 위반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왔습니다. 이 정의에는 세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죄는 "순종이 부족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둘째, 죄는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법을 위반하다는 것은 법이 정한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침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 하지 말라"라고 선포하신 것을 하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셋째, 죄는 "이성적인 피조물에 의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도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학은, 대죄란 영혼 속에 있는 은혜를 죽이는 것이므로 고해성사를 통해

새로운 칭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소죄(경죄)는 그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구원하는 은혜를 파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신학의 소죄와 대죄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죄는 죽어 마땅하다는 점에서 대죄이지만, 어떤 죄도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대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여러 가지 죄로부터 초래되는 죄책에 대해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율법의 한 부분을 범하는 것이 율법 전채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죄에 따라 더해지는 죄책이 있습니다. 바울도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지 말라고 권고합니다(로마서 2:1-11). 우리가 범하는 죄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우리의 죄책을 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책을 모두 합한 것보다 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보고 인간을 진지하게 보기 때문에 죄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그의 거룩하심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범죄 하는 것 또한 그의 인간성을 모욕하는 것으로 결국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