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정교회를 말하다

역사적 조망-최근의 가정교회 운동③

예림의집 2021. 11. 30. 11:47

역사적 조망-최근의 가정교회 운동③

 

다음은 "영국"입니다. 1970년대 영국에서는 신약성경의 원리로 교회의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는 신자들의 영적 은사들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없다는 각성에서 이 운동은 출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가정과 야외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을 위해 개인들의 가정을 사용한 이유는 신학적인 확신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하자, 가정교회가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체육관, 시민 회관, 그리고 빌린 강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따라서 가정교회를 개척하기보다는 교회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영적 은사의 재발견은 교회를 질적으로 새롭게 했지만 교회 구조 자체는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얼마 안 가 많은 교회들이 옛날 방식대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에 가정교회를 포함한 소위 "새로운 교회"들은 38퍼센트나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증가는 영국에서 지난 10년간 다른 개신교 복음주의 그룹 중에서 수적 증가세로는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다음은 침례교가 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영국의 모든 복음주의 중 3분의 1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브라질"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브라질에서는 "그리스도인 기초공동체" 그리고 "교회 기초공동체"라고 불리는 다양한 로마 가톨릭 가정교회가 지난 4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1945년에 파시즘이 전복되었고, 그 후 정치 개방이 뒤따랐기에 대중 운동의 출현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1960년대 초 군사 쿠데타가 성공하고 모든 형태의 공중 집회와 정치적인 불협화음이 차단됨으로써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 "변화 수용"의 결과로, 사람들을 모으고 지원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하도록 토론의 장을 제공했습니다. 이것이 브라질에서 작은 기독교 공동체들을 탄생시킨 모판이 되었습니다. 노인, 실직자, 토착민, 소작농, 노동자, 넘쳐나던 도시 거주자, 기회를 잃어버려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난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탄생한 것입니다. 이들 모임은 사회의 주변인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진정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렸습니다. 이런 모임은 대략 40명 정도로 구성되었고 보통 성직자나 훈련된 평신도가 인도했으며 기존의 지역 가톨릭 교구와 연대하여

지원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기초공동체는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으며, 가난, 노동자 문제 그리고 여성의 지위 등을 포함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적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모임은 신앙과 삶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실험의 성경이 강했습니다. 브라질에서 이 기초공동체는 1960년대 시작된 이래 급격히 성장했으며, 1974년에 4만 개의 모임, 1985년에는 10만 개의 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2007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00만 개의 기초공동체가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