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변론
설교 본문: 사도행전 25장 23-26장 32절
성경 읽기: 사도행전 26장 24-32절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사도 바울이 짓지도 않은 죄로 인해 재판에 서는 것도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바울은 2년 동안 감옥에서 지냈지만 아직도 유죄를 선고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다섯 번째 변론을 위해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재판정에 나타났습니다. 여동생을 대동한 그는 왕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옆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신하들과 가이사랴의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날 아그립바 왕의 모습은 멋있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베스도 총독의 명령으로 바울이 들어왔습니다.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처형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기는 바울을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기로 했기 때문에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문제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한 적절한 죄목을 찾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을 아그립바 왕에게 데려와 가이사가 행할 재판을 위한 죄목을 찾고 싶었습니다. 재판을 위한 베스도의 설명이 끝나자, 아그립바는 바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가 유대인의 신념과 관습에 대해 친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회심한 과정을 이야기한 바울은 자신이 엄격한 유대인으로 자라났으며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였으며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주장을 거부할 뿐 아니라 그 교리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실제로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한때는 이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반대했으며 대제사장의 권위를 대리해서 그리스도교의 확장을 반대하는 일의 주동자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감옥에 보냈고 믿음을 지키는 신자들을 처형하기도 했으며, 여러 회당을 여행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끌어내서 처벌을 가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도록 강요했으며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다른 나라까지 확장시켰었다고 말했습니다.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이 같은 바울의 증언은 바울이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을 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분노하는 모습이 바울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따르기 전 바울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은혜에 대한 주제가 바울에게 그처럼 중요한지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은 바울의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으셨을까요? 주님은 그렇게 박해했던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놀라운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용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바울의 모든 죄를 씻어 주었으므로, 그가 주님에 대해 지은 모든 죄목은 심판 날에 계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해 바울이 어느 날 다메섹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늘에서 비치는 밝은 빛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했습니다. 바울과 동료들은 땅에 쓰러졌고 바울은 빛 가운데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4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란 소를 몰 때 사용하는 뾰족한 끝을 가진 긴 막대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회심하기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그의 삶 속에서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반에 바울은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자 바울은 싸움을 그치고 성령님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빛 속에서 누가 말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누구시냐고 묻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15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바울의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해 줄 사람이었으며, 바울의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악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적들로부터 바울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고개를 돌려 아그립바 왕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19절,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회개와 용서의 메시지를 그때부터 어떻게 전하게 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증오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그 메시지를 전할 때부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에 대한 바울의 믿음으로 인해 바울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유대인들의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위배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성경의 핵심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며, 성경은 또한 메시아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빛을 선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25절, 베스도 총독이 끼어들어, 바울에게 미쳤다고 소리쳤습니다. 왜 베스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바울이 하늘에서 오는 빛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바울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그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믿음을 모두 부정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밝혀주지 않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비록 베스도의 마음은 로마의 종교에 집착하고 있었지만, 아그립바 왕은 유대교의 믿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보다 유대교의 신앙에 더 친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가 예수의 사역에 대해 들어왔거나 예언을 믿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말은 부드러웠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가 자신이 주장하는 예언자들의 분명한 가르침을 인정하기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처럼 바울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그립바 왕은 28절,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대응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예수를 믿게 하려는 바울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왕뿐 아니라 재판에 온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한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비록 바울은 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곳에 모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길 잃은 양 떼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를 마치자 아그립바 왕은 일어서서 바울의 변론을 들으려고 온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습니다. 그는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1-32절을 함께 읽습니다.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언할 때 두려움이 없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한 사역에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셨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증언이었습니다. 바울은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선한 경주를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당당하게 재판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자신의 삶과 사역을 보고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삶을 되돌아보면서 바울처럼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봅시다. 바울처럼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부분들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우리 개인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본문에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자유롭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바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도 담대히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용서받아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면 생각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특히, 예림교회의 구성원들을 영적 리더자로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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