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릭스 앞에서의 바울의 변론
설교 본문: 사도행전 24장 1-27절
말씀 읽기: 사도행전 24장 10-23절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가이사랴에서 바울은 헤롯왕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5일이 지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바울이 머물고 있는 가이사랴에 사는 더둘로라는 변호사가 도착했습니다. 더둘로는 총독 벨릭스에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습니다. 더둘로가 송사를 시작하는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벨릭스의 지도력을 칭송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총독의 지도력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고, 유대 사회에 많은 개혁이 일어났다고 부추겼습니다. 더둘로의 말은 무자비하고 잔인한 지도자인 벨릭스에게는 큰 아첨이었습니다. 벨릭스를 거짓말로 칭송한 더둘로는 송사의 핵심을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사회적 소요를 일으켰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나사렛 당의 우두머리이며, 성전을 더럽혔다고 비난했습니다. 만약 그 고소 내용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바울은 심각한 죄를 지은 것이었습니다. 더둘로와 함께 온 유대인들은 그 고소 내용에 동조했습니다.
관습에 따라 바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둘로처럼 벨릭스에 대한 비굴한 찬사로 변론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벨릭스 총독이 오랫동안 일하면서 유대 전통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됨을 기뻐했습니다. 벨릭스 역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긴장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벨릭스가 유대인들이 분노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12일 전에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거기에 있을 때 유대인들이 자신을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과 논쟁을 하더니 결국 도시와 회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고소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벨릭스 앞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하나 있긴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으며, 오실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간단한 변론을 통해 바울은 벨릭스에게 예수가 바로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셨음을 알렸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도 말했습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의 소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그 소망을 벨릭스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한 방법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복음에 대한 간단한 변론과 더불어 바울은 자신이 지난 12년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으며 이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다른 교회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에 대해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주님에게 개인적인 헌신을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을 고소한 사람들이 성전 뜰에서 제사를 드리던 바울을 발견했을 때에는 군중들이 그와 함께 있지도 않았고,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의 소요가 자신으로 인해 발생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 21장 27-36절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보고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왔다고 오해하고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었습니다. 처음 소동을 일으킨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지금 벨릭스 앞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미 예루살렘에서 같은 내용으로 고소를 당했지만 산헤드린은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은 유대 법이나 로마법에 저촉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변론을 들은 벨릭스는 재판을 잠시 중단시키고는, 바울을 가리사랴로 보낸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그가 재판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다시 감옥에 가두었지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혹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어디가 좋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며칠 후 벨릭스는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의로움, 절제, 그리고 심판에 관해 이야기하자 벨릭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벨릭스가 잔인무도한 총독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언젠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벨릭스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아예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마음에 기회를 봐서 다시 부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벨릭스는 자주 바울을 불렀는데 그것은 26절,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은 벨릭스도 바울이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죄를 물어 벌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단지 바울을 감금하고 있으면서 자신에게 유익한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벨릭스가 바울의 메시지를 확신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과거에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확신할 만한 사건들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잘못된 삶을 고치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편할 때 다시 듣겠다고 회피했던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벨릭스도 처음에는 바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기 원했지만 그 메시지가 자신의 죄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자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외적으로는 벨릭스는 분명 바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고, 그 증거로 바울을 계속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그는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뇌물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기도 모임에 계속 나오지만 마음은 복음의 메시지를 무시하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는 동안 죄가 사람들을 갉아먹습니다. 우리의 삶도 지금 그런 상황에 있을지도 모습니다.
바울은 그 후 2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벨릭스 후임으로 다른 총독이 부임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왜 위대한 사도 바울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2년 동안에나 감옥에 있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삶과 초대교회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실행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의 감옥 생활은 교회가 전도할 때 더 담대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빌립보서 1장 12-14절을 함께 찾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되었느니라"
감옥에 있는 동안 바울은 이와 같은 여러 통의 편지를 섰습니다. 그 편지들은 신약 성경의 주요 부분들이 되었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 옥중 서신들로부터 많은 유익한 것들을 배웁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바울은 도시를 옮겨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 갇혀 있었고, 그의 사역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과 함께 하는 조용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바울의 기도 생활은 이 시간 동안 더 풍성해졌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육체적으로는 제한되었지만, 영적으로는 풍족해졌을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바울이 그처럼 많은 편지들을 쓸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시련들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셨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편지가 세상에 영향을 이 정도로 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바울이 자신의 편지로 인해 여러분과 제가 지금 받고 있는 영적인 영향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분명히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옥중 서신을 통해 주님께 돌아오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감옥 생활은 패배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여기서 배울 교훈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곤란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관심이 무엇인지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벨릭스에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불순종을 올바르게 회복할 하나님의 능력을 소망합시다. 또한 여러분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졌던 경험이 있는지 과거를 돌아보면 깊이 묵상하고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당장에 해결해야 할 죄가 있다면 우리에게 보여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사용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모든 시련들 속에서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시고, 주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그 시련들을 사용하신다는 약속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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