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선교 여행-마게도냐와 밀레도
본문: 사도행전 20장 1-38절
읽기: 사도행전 20장 7-12절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에베소에서 소요 사건이 그친 후, 바울은 그곳에서 한동안 성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로마의 식민지인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성도들을 만나 격려한 후, 그리스(엘라)에 도착해서 세 달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러고는 그리스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가려고 했지만, 자신을 해하려는 계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다시 마게도냐의 육지를 통해 돌아가기로 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여행할 때 최소한 일곱 명의 동역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이들은 바울이 빌립보서 무교절을 지내는 동안 먼저 드로아로 갔고, 바울도 나중에 드로아에서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5절에서 바울은 드로아에 혼자 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라고 했으니 최소한 바울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동행한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의 선교 여행에 일곱 사람 이상의 선교팀이 동행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선교팀은 드로아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선교팀이 드로아에 있는 동안 성도들은 모여서 함께 떡을 뗐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주님의 만찬이 매 주일 실행됐음을 증거하는 장면입니다. 성도들은 일주일의 일곱 번째 날이 아닌 첫날에 모였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유대의 전통적인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에 모였음을 뜻합니다.
비록 모임의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바울이 밤늦도록 말씀을 전했다는 상황을 보면 저녁에 모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상황은 역사적 자료들과도 일치하는데, 일주일의 첫날은 평범한 날로서 생업에 종사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종들은 주인을 섬기는 일이 모든 끝난 후에나 모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요일을 종교적 축제일로 지키는 일은 콘스탄틴 대제 때가 되어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초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일을 하고 저녁에 예배를 위해 모였을 것이고 당연히 저녁 식사(주의 만찬)도 그곳에서 함께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림교회와 한국 교회도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교회 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울이 설교하는 동안 창가에 유두고라는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상황은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을 잘 설명해 줍니다. 현대 교회에서 설교를 듣기 위해 창가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당시의 집의 구조와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1층은 주로 짐승의 우리나 창고 2층은 가정집 3층 또는 옥상에 대중을 위한 모임 장소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앉을 자리가 비좁으면 이렇게 창가에 걸터앉아 예배를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바울이 설교를 하는 동안 유두고가 깊은 잠이 들었다가 창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가서 보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의 이에 엎드려 몸을 앉자 유두고가 다시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위층 방으로 돌아가 함께 떡을 떼고 교제했으며, 바울은 날이 새기까지 말씀을 전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밤을 새울 정도의 헌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2절,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의 동역자들은 배를 타고 남쪽에 있는 아소로 갔으나 바울은 육로를 통해 아소로 갔습니다. 바울이 배를 타지 않고 따로 육로를 택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바울이 주님과 홀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을 수도 있고 그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위장전술을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아소에서 동료들을 만나 배를 타고 몇 개의 항구를 지나 밀레도로 향했습니다. 바울은 오순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빨리 가려 했기 때문에 에베소에 들르지 않기로 합니다. 대신 그는 밀레도라는 항구 도시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만나기로 합니다. 장로들이 도착하자 바울은 에베소에서 자신이 지난날 행한 사역과 함께 자신의 예루살렘 여행 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위협이 예산된다고 하여 자신의 사역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성령님은 고난과 옥살이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바울에게 일러주셨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어는 때보다도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자신은 순결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해야 할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장로들에게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라면 바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해야 할 말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떠날 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신에게 명하신 모든 일들을 다 수행했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순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8-31절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사역을 위한 지침을 주었습니다. 먼저 장로들은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이 그들의 사역을 신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28절에서 바울은 장로의 사역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임무임을 상기시켰습니다. 성령님은 장로들을 특별한 교회 지도자로 선택하시고 은사를 주셨으며 에베소의 양 떼들을 잘 돌보라고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사나운 이리들이 양 떼 속에 몰래 들어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배척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은 에베소 교회가 실제로 그런 이리들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고 증거합니다. 실제로 니골라 당원들은 에베소 교회에 들어와 거짓 교리를 가르쳤으며, 교회 안에는 사도라고 자칭하는 거짓 교사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의 예언이 적중한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며 본받으라고 권고했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들을 돌보고 필요한 것을 제공했으며, 눈물로 그들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었습니다. 바울은 장로들도 그런 사역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현대 교회의 장로들과 집사들에게 이 바울의 권고가 얼마나 큰 도전이 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긴 사역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바울은 장로들을 하나님 말씀에 의탁하고, 그 말씀이 그들을 세워서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 위대한 유산을 이어갈 사람들이 되도록 당부했습니다. 장로들의 삶을 인도하고 도와줄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원리들을 따름으로 장로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들이 교회를 섬길 때도 이 말씀의 원리가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에베소의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이 말씀의 첫 번째 사람들이 되길 소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장로들이 사역 중에 재정과 물질적인 유혹을 이기라고 권고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 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의 것을 결코 탐하지 않았으며 사역을 위해 재정적 후원을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사역에 필요한 기본 비용을 스스로 일해서 충당했습니다. 그러면서 받은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은혜로운 것임을 교회에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장로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이라면 그들 역시 자기를 희생하는 사역을 실천해야 합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일꾼들은 자기가 받는 보상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복음을 전함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디모데전서 5:17-18; 고린도전서 9:11-14).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바울의 논지는 보수를 받는 것이 사역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특권과 재정적 조건을 고려해서 사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일꾼들도 삶을 위해 보수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사역 결정의 조건으로 삼지 말기 바랍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돈(보수)에 관해서지만, 그 외에도 장로와 목회자에게는 여러 유혹들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종 그들의 직분이 존경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는 이런 이유로 직분을 택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이 이기적인 이유로 일하지 말기를 바랐습니다. 사역의 유일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책무를 교훈한 다음, 바울은 주님의 보살핌을 간구하며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번의 헤어짐은 다시 만날 기회가 희박한 상황이었기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바울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할 입장에 처할 것입니다 그의 다음 선교 여행은 쇠사슬에 묶인 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담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담대함을 갖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직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준 세 가지 도전을 다시 한번 되새기시길 바랍니다. 그중에 우리 각자에게 특히 어떤 도전이 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 생활과 사역은 개인적으로 어떤 동기로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사역이 심각한 박해와 어려움에 처할 때에도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생면을 구원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삶의 목표를 생명을 구원하는 것으로 삼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우리의 연약함과 악함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세 가지 도전들을 교훈 삼아 신실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이 있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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